안철수의 ‘통 큰 양보’는 오만방자의 산물
자기중심적 사고·이기주의·소통 난망이 숙제
안철수는 겸손하라…교만은 패망의 선봉
단일후보야말로 승리 담보할 것이라는 희망은 상식
정치무대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가장 주목받은 것은 2011년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였다. 사퇴한 오세훈 시장 후임자를 뽑는 선거에 안철수는 그 무렵 단연 스타였다. 당시 여론조사 지지율(85%)은 경쟁자 박원순(5%)을 압도했다.
안철수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한 의사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었다. 말 그대로 혜성 같았던 안철수는 서울시장을 가볍게 거머쥘 것으로 여겨졌다. 정말 뜻밖에도 안철수는 사실상 그저 챙긴 거나 다름없는 시장 자리를 선심 쓰듯 박원순에게 양보해 버렸다.
그의 파격에 한동안 다들 의아해했지만 ‘통 큰 양보’ 쯤으로 정리되며 잠잠해졌다. 입방아의 압권은 “간이 배 밖에 나왔다”는 것이었다. 여론조사 지지율에 고무돼 대선 직행을 해도 승산이 있겠다는 오만방자의 산물로 봤기 때문이다.
그때 안철수가 성급한 과욕을 자제하고 거의 굴러 들어간 서울시장을 겸손하게 받아들였으면 역사는 판이하게 펼쳐져 왔을 것이다. 필시 안철수 개인은 탄탄한 정치 이력을 쌓을 것이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도래하지 않았을 수 있다. 김칫국이 개개인과 나라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게 됐다.
안철수의 정치 여정에서 두 번째 피크는 2016년 6월 제20대 총선(서울 노원구병)에 단기필마로 뛰어들어 당선된 것이 꼽힌다. 의학 경영학 석학으로, 교수로, 성공한 벤처사업가로화려하게 명성을 쌓은 이력에 아직은 참신성이 남았음을 방증한 것이었다.
이후 정치 민심은 안철수를 호평하는 것에 점점 인색해져 갔다. 구상유취(口尙乳臭) 정도는 진작 나왔다. 2012년 정계 입문 후 9년 남짓 동안 5차례 우왕좌왕 들락날락한 그의 행보를 빗대어 창당 달인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따라붙었다. 이런 평가는 대체로 팩트에 근거한 비판이다.
이를테면 “주요 변곡점마다 현재의 정권에 도움을 줬다. 쉽게 물러서고 유불리를 계산했다(나경원).” “변한 줄 알았더니 그대로다. 대선후보인지 시장 후보인지, 부산 대구는 왜 다니나(조은희)!” 등이 그렇다. “정치인 안철수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반성과 참회(장진영)”라는 신랄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돌이켜 보면 안철수 평판은 심은 대로 거두고 있는 셈이다.
정치인 안철수에게는 자기중심적 사고, 이기주의, 소통 난망 등 맥을 같이 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는 것이 숙제다. 줄기차게 대권만 외쳐온 그의 서울시장 출마 선언이 생뚱맞은 인상을 준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서울시장이 그의 궁극 목표일 리는 물론 없겠다. 전략적 우회 따위는 접어두고 당장의 현실적인 주제 파악, 그리고 30% 가까운 여론조사 지지율이 우선하여 작용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여기서, 먼저는 정치인 안철수 자신, 나아가 대한민국과 국민 그중에서도 나라 걱정으로 잠들지 못하는 많은 애국시민의 안녕을 위해 드리는 몇 가지 주문이 있다. 사람이면 다 공감하는 야권 후보 단일화 이야기다. 시끌벅적하지 않은 선거판이 있었겠냐만 서울시장 야권 후보 단일화 염원은 전례 없이 간절하다. 시쳇말로 역대급이다.
정권 세력의 철저한 무능과 폭정 폭주에 대한 다수 국민의 인내가 한계를 넘었다는 데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단일후보야말로 승리를 담보할 것이라는 희망은 상식이 됐다. 결과를 뛰어넘어 서울시장 선거 후보단일화 과정의 세밀한 고비마다 안철수 정치의 운명을 가늠할 기회가 다가올 것이다. 경험적으로, 지지율 선두란 한갓 신기루로 사라질 수 있음을 안철수 역시 외면은 할 지언 정 모르지 않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일화 이후를 낙관할 수 없을뿐더러 안철수의 ‘중도는 다 내 것’ 또한 기약이 없다.
그래서인데 한없이 겸손하여지라고 조언해 드리고 싶다. 보기 나름이겠으나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 말도 있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것은 더는 신앙의 전유물이 못 된다. 만에 하나 지지율 1위에 호흡이 가빠져 오로지 본인으로의 단일후보 굳히기가 전략이고 전술이라면 정말이지 그건 아니다. 어디를 봐도 박수받기는커녕 분쟁은 깊어가고 그 목표가 성공할 가능성도 작다는 건 삼척동자쯤이면 안다.
경쟁을 내려놓으라는 말이 아니다. 정치판에서 자주 목도해 온 야바위급 아귀다툼에서 그렇고 그런 분이 또 생기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잠시 안심될 수는 있겠으나 그의 정치생명, 더 현실적으로는 구별된 안철수의 품격에 돌이키지 못할 상처가 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는 저간의 부정적 평판을 일거에 불식할 여러 찬스와 맞닥트릴 것이다. 사실 절제와 양보의 순간들은 이미 널려 있다. 치열하되 신사로 경쟁하면 그 자체가 비전이고 승리다. 천려일실 죽 쒀서 뭣 주지 말라는 부탁, 귀 있는 자들은 세상의 소리를 들을지어다.
글/한석동 전 국민일보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