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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올드무비㉙] 어른이 울고 나오는 애니메이션 ‘소울’


입력 2021.02.08 05:00 수정 2021.02.07 20:06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와 '22'(왼쪽부터) ⓒ 이하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올드 무비는 아니다. 불과 지난해 5월, 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물게 제73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바 있는 신작이다. 심지어 국내에선 현재 극장 개봉 중이다. 그러함에도 소개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자마자부터.


애니메이션이니까, 하고 초등생 보여 주러 극장 갔다간 아이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어려운 수학, 과학, 경제가 나와서가 아니다. 인생 좀 살아 본 사람에게 공감이 큰 영화다. 나는 어떻게 태어나 지구에 왔고, 지금 잘살고 있는 건지 상상의 나래도 펼쳐보고 되짚어 생각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울’(SOUL, 영혼)에 공명할 것이다.


오른쪽부터 색소폰, 드럼, 콘트라베이스, 피아노를 연주하는 오르테아 밴드 단원들 ⓒ

메시지만 좋다면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 책을 통해서도 인생에 관한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할 수 있다. 학교에서 비정규직 교사로 밴드 수업을 지도하면서 재즈 뮤지션을 꿈꾸는 조 가드너가 주인공이다 보니 음악은 또 얼마나 좋은지, 잠시 눈을 감고 노래 없는 재즈 연주에 흠뻑 빠질 수 있다. 피아노와 색소폰, 콘트라베이스와 드럼이 어우러진 연주가 기가 막힌다. 조 가드너의 피아노 독주, 오르테아 윌리엄스의 색소폰 연주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를 추억으로, 인생으로, 무아지경의 세상으로 안내하는 ‘소울’의 음악은 세계 각국의 영화제에서 음악상 후보에 오르고, 제46회 LA 비평가협회상과 제33회 시카고 비평가협회상에서 음악상을 수상했다.


키 큰 제리들, 중앙엔 '22', 조, 테리(왼쪽부터) ⓒ

영상도 너무 아름답다. 영화를 보면 알 것이다, 이 영화가 실사가 아니라 왜 애니메이션이어야 했는지. 제리들이 아기 영혼을 돌보는 태어나기 전 세상, 죽은 이후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통해 ‘머나먼 저 세상’으로 향하는 과정, 영혼의 세상과 육체의 세상 사이 사막과도 같은 중간계를 세트 촬영이나 컴퓨터그래픽으로 근사하게 실사영화로 완성할 수도 있었겠지만 ‘소울’보다 아름답기는 어렵지 싶다. 조 가드너의 영혼 친구이자 또 한 명의 주인공 ‘22’를 비롯해 너무나 앙증맞은 태어날 영혼들, 그들이 세상에 갈 준비를 마칠 때까지 도와주고 기다리는 제리들(여러 명인데 이름이 모두 제리), ‘머나먼 저 세상’으로 가는 영혼의 숫자를 세는 테리 등 영혼의 존재들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게 ‘진리다’. 특히나 선으로 표현된 제리와 테리는 매우 신선한 외형의 캐릭터인데, 애니메이션이 제격이다.


당신의 '불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를 말하는 영화 '소울' ⓒ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사실 세상 그 누구든, 몇 살이든 살면서 무엇을 누렸든 죽는 순간엔 아쉬움이 클 터. 조 가드너 역시 그랬다. 꿈을 향해 걷기만 했지 도달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데, 하필 꿈이 드디어 이루어져 색소폰 명연주자 도르테아 윌리엄스의 오디션에 합격해 첫 무대를 앞둔 날, 그만 맨홀에 빠지고 말았다. ‘머나먼 저 세상’으로 가는 계단, 조는 이대로 계단을 밟아 떠날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 내 영혼을 어디에 있는지 모를 내 육체를 찾아 되돌려 넣고 싶다. 도망치고 내달리다 태어날 영혼이 있는 세상에 불시착하게 되고, 마음씨 좋고 멀리 보는 제리들의 도움으로 당장 계단으로 되돌려지지 않고 ‘22’의 멘토가 된다.


‘22’는 수천 년간 지구로 가 태어나지 못했다. 가슴에 있는 7개의 칸, 6개는 성격이고 하나는 ‘불꽃’인데 그것이 다 채워져야 태어날 수 있는데, ‘불꽃’이 영 채워지질 않고 있다. 아르키메데스부터 칼 융, 테레사 수녀와 링컨, 무함마드 알리와 마리 앙투아네트 등이 멘토로 붙여졌지만 ‘22’ 가슴의 ‘불꽃’을 채우지 못했다. 매사 삐딱한 ‘반골’ 기질의 영혼, 겉으론 ‘난 태어나고 싶지 않아!’라고 거부하지만, 속으론 ‘내가 태어날 자격이 있을까’ 자신 없기도 하다. 유명 석학과 위인들도 피워내지 못한 ‘22의 불꽃’, 과연 조 가드너가 해낼 수 있을까. 제리들이 조를 ‘22’의 멘토로 붙인 건 정말 착각과 실수였을까 멀리 보는 그들다운 ‘신의 한 수’였을까.


영화는 이 다음부터가 재미있습니다. 알멩이는 영화관에서 ^^ ⓒ

일단 조와 ‘22’가 의기투합할 지점은 명확하다. 우선 ‘22’의 불꽃까지 가슴의 7칸을 완성한다, 지구에 가는 통행증과도 같은 가슴의 표가 완성도면 태어나고 싶지 않은 조는 그걸 떼서 조에게 준다, 조는 지구에 가고 지구행 티켓을 잃어버린 ‘22’는 태어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 생긴다. 둘의 협업은 우여곡절을 끝에 티켓 완성까지 이뤄진다, 그런데 조만 지구에 오는 게 아니라 ‘22’도 같이 오게 되고, 둘의 영혼은 ‘제자리가 아닌’ 곳에 들어간다. 뒤바뀐 영혼이 빚어내는 에피소드들이 꽤 재미있다. 뜻하지 않게 지구에 온 ‘22’는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조는 과연 오르테아 밴드의 첫 무대에 설 수 있을까.


피트 닥터 감독은 그렇게 우리에게 두 가지 ‘소원’을 이식하는 데 성공한다. 조가 다시 살아나 오르테아와 연주하게 되기를, ‘22’가 기나긴 방황을 끝내고 지구에 태어나기를! 그렇게 우리에게 목적과 의미를 주입해 놓고는 뒤통수를 한방 세게 친다, 제대로 친다. 삶은 목적과 의미가 중요한 게 아니란다. 제리 중 한 제리가 “멘토들이란” 하며 혀를 끌끌 찬다. 순간 멍해진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일상에서 목적을 세우고, 목적을 향해 가고, 목적으로 가는 길에서 벗어나진 않았는지 중간 점검하며 살려고 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를 덜 게으르게 한다고 여기며 부지런히 살고 있다. 그런데 아니란다.


'까르페디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것 ⓒ

적잖이 충격적이다. 이제까지 봐왔던 영화들이, 해피엔딩을 보여 주는 장밋빛 영화들이 다 ‘거짓말쟁이’로 느껴졌다. ‘이렇게 솔직한 영화를 봤나’ 놀랍기도 하고 ‘끝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확인하기를 바란다. 한 가지만 말하자면 우리가 쉽사리 이루기 힘든 ‘위대한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영화를 보며 그때는 감동 속에 박수하지만, 내 삶과 동떨어진 결말에 뒷맛이 찜찜한 가운데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지’라고 생각했던 당신이라면 ‘소울’은 그런 경험을 주지 않는다. 단언한다.


평범한 나, 특별할 것 없는 오늘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될 것이고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영화와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맛볼 것이다.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 영화가 이뤄낼 수 있는 가장 경이로운 순간을 ‘소울’이 해냈다. 조 가드너를 연기한 제이미 폭스의 목소리를 듣노라니, 그가 불세출의 가수, ‘영혼의 음성’을 지닌 레이 찰스를 연기한 영화 ‘레이’(2004)가 보고 싶어졌다. 한 영화가 또 다른 영화를 부르는 일, 좋은 영화가 부리는 마법이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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