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美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 낮아
합의금액·납입방식 두고 양사간 진통 예상
LG에너지솔루션(전 LG화학 전지사업부)과 SK이노베이션간의 소송전이 LG의 승소로 확정되면서 양사의 합의금 규모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이 남아있지만 추가적인 '소송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양사가 가급적 빨리 합의하는 것이 이득이다. 다만 이번 합의가 각 기업의 사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합의금액과 납입방식을 두고 상당한 진통이 오갈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간 영업비밀 침해 판정 관련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판결문이 이달 말께 공개된다. 이에 따라 양사간 합의도 이 이후로 속도가 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양사는 배터리 기술 유출 여부, 피해 사실 등을 놓고 공방을 벌여왔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핵심 인력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배터리 핵심 영업비밀이 유출됐다고 주장했고 SK이노베이션이 이를 부인하면서 햇수로만 3년간 법적 다툼을 벌였다.
ITC가 최종적으로 LG의 손을 들어주면서 앞으로의 협상 및 소송전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ITC는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및 관련 부품·소재에 대해 10년 동안 미국 내 수입 금지를 명령했다. 다만 미국 고객사들의 피해를 고려해 포드와 폭스바겐 일부 차종엔 각각 4년과 2년의 유예기간을 허용했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중인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뼈 아픈 판결이다. 기존 고객을 잃는 것은 물론, 사업지속성 측면에서도 타격을 입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3조원을 투자해 배터리셀 공장을 건설중이다. 제 1공장은 내년부터 상업생산을 시작한다. 여기서 생산되는 배터리는 폭스바겐 ID.4에 탑재된다. 2023년부터 가동되는 2공장은 포드 F-150 전기트럭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폭스바겐과 포드에 부여된 유예기간이 종료되면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사업에 제동이 걸린다. '소송리스크'를 겪었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녀 향후 잠재 고객을 찾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현재로선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기대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 마저도 성사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ITC가 최종 판결을 내릴 당시 포드·폭스바겐에 공급되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에 대해 한시적으로 유예 조치를 내림으로써 거부권을 행사할 명분이 약해졌다는 이유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평소 불공정 무역관행 개선, 지식재산권 보호 등을 강조해온데다 자국 기업이 아닌 외국 기업간 분쟁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평가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연방항소법원에 항소하는 것도 대안 중 하나이지만 결론이 나오기까지 '수입금지' 처분을 안고 가야 하는 것이 큰 부담이다. 최종 판결이 SK이노베이션에게 유리하게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힘들다. 결국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LG에너지솔루션에 손을 내미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다.
이번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는 별개로 특허침해 소송 등 국내외 10건의 소송이 잇따라 진행중이다. 소송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 누적과 수 백억원 단위의 소송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합의에 나서는 것이 낫다.
결국 관건은 합의금 액수와 납입 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은 ITC 판결 직후 "SK이노베이션에서 ITC의 최종 결정을 존중하고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진정성 있는 합리적인 제안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SK가 LG의 기술을 탈취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합의금액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업계 의견 등을 종합하면 LG측이 원하는 배상액은 2조8000억원대인 반면 SK는 이에 훨씬 못미치는 수 천억원대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소송 결과로 합의금은 바뀔 수 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측은 미국 영업비밀보호법 판례에 따라 경쟁사의 부당이득, 미래가치 등을 근거로 합의금을 산정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 영업비밀보호법은 손해배상액은Actual Loss(수주금액 등 실제 피해), Unjust Enrichment(R&D 절감 비용 등 부당 이득), Future Royalty(향후 수주액 등 미래 가치) 등을 고려한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수 조원대의 합의금을 한꺼번에 감당하는 것은 부담이다. 만일 양사가 합의금을 조 단위로 책정하는 데 동의할 경우 일시금 지급 보다는 일정 기간을 두고 나눠 지불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납입 방식을 두고 SK측이 상장을 앞둔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의 주식 절반을 LG가 투자하는 형식으로 LG측에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합의 내용도 관심이다. SK이노베이션이 기술 탈취 결과로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게 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앞으로 사업을 전개할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므로, 가급적 사과 보다는 배터리 산업과 고객 권익 보호 차원에서 합의하는 데 보다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양사 합의를 위해 두 기업 총수들이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계열사 선에서 좀처럼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던 만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직접 만나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이 시나리오 역시 구 회장이 만족할 만한 카드를 최 회장이 제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합의가 향후 배터리 산업을 좌우할 만한 사건인만큼 현실적인 대안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