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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광우의 싫존주의] 은행을 죄인 만드는 사회


입력 2021.03.03 07:00 수정 2021.03.02 17:22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불황 속 호황의 역설…여론도 주주도 정부도 '냉담'

감정적 비난 멈추고 포스트 코로나 연착륙 준비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속 조용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은행들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픽사베이

"요즘 같아서는 어디 가서 은행원이라는 말도 잘 못하겠다."


그래도 금융사들은 이만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를 잘 넘기고 있지 않냐는 물음에 한 시중은행 임원이 푸념처럼 내뱉은 말이다. 이제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어디 하나 은행 편은 없다는 하소연이다.


가장 먼저 마음을 돌린 건 서민들이다. 사실 은행들은 코로나19 속에서 조용한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연일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는 소식에도 은행원들은 축배를 들지 못한다. 누군가의 불행을 기회로 삼고 있다는 손가락질이 무서워서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 보면 억울한 구석이 없지 않다. 최근 은행들이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건 대출이 늘어서다. 그리고 이런 빚에는 부동산과 주식을 조금이라도 더 사들이려는 개인들의 투자 수요가 녹아 있다. 은행이 막을 수 없는 대중의 욕망이다.


물론 코로나19로 경제적 위기를 맞은 이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빌려가기도 한다. 그래서 은행들은 자금난을 겪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대출 상환 기한을 연장해주고, 이자도 당분간 내지 말라고 한다.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어찌됐든 금융의 공공성을 감안한 움직임이다.


아울러 얼마 전 은행들은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에게도 연신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어느 때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충분히 과실을 나누지 못해서다. 금융당국이 코로나19에 따른 위기관리가 필요하다며 금융권에 배당 자제령을 내린 탓이다. 그러나 주주들에 대한 사과의 말은 어디까지나 은행의 몫이었다.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기가 눌리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의 요구에 지난해부터 시작된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납입 유예 조치로, 은행들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리스크가 누적돼 가고 있다는 우려가 상당하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3월까지로 못 박았던 해당 정책을 오는 9월까지 다시 연장하겠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 금융지원이라는 취지를 앞세운 이 같은 정책에 은행이 반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전통적인 관치 금융 문화에 더해, 과거 글로벌 외환위기 시절 국민들의 세금으로 망해가는 은행들을 살려 놨다는 명분은 치명적 아킬레스건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난을 같이 극복하자는 정부의 압박에 반기를 들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이제는 냉철한 시선을 되찾아야 할 때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감정도,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이어지는 정책도 모두 내려놓고 코로나19 이후의 연착륙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은행의 역할은 누구보다 막중하다. 시장에서 넘치는 곳은 조절하고, 부족한 곳은 메꾸는 자금 공급자로서의 몫은 은행만이 감당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이다. 이때 객관성을 잃은 편견이 작용한다면, 아마 우리 경제는 코로나19 당시보다 더 큰 위기에 직면할지 모른다. 은행을 죄인으로 만든 사회에서 시장 경제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는 법이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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