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다"
"韓美·美日 고위급 회담서
北 건드리는 얘기 나오지 않게 하라는 취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개인 명의 담화에서 대남기구 폐지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관련 언급을 '거꾸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의 정세현 수석부의장은 17일 김여정 부부장이 대남기구 폐지와 관련한 "협박성 발언을 했다"면서도 "거꾸로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정 수석부의장은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상황이 되면 (대남기구를) 없앨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걸 그대로 놔둘 수도 있다는 식의 얘기를 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정 수석부의장은 김 부부장이 대남기구 폐지에 대해 "최고 수뇌부, 김정은에게 이미 보고된 상태라고 했다"며 "아직 결론은 안 났다는 얘기"라고도 했다.
앞서 김 부부장은 개인 명의 담화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금강산국제관광국 등 대남기구 폐지는 물론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가능성까지 시사한 바 있다.
그는 김 부부장이 한미연합훈련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남북관계에 있어 '3년 전 봄날이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한 대목 역시 "단정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다"며 대남 대적사업 일환으로 각종 조치가 잇따랐던 지난해 6월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해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뒤 △금강산·개성 일대 군부대 배치 △대남전단 살포 △비무장지대 감시소초(GP) 재건 △접경지역 군사훈련 재개 등 '4대 군사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수석부의장은 북측이 "4대 군사행동에 나서겠다며 엄포를 놨는데 보름가량 지나 김정은 위원장이 '그런 짓 하지 말라'고 중지시킨 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여정 부부장이 예고한 대남기구 폐지 역시 '말 폭탄'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수석부의장은 김 부부장 담화가 미국 외교·국방 장관의 아시아 순방 일정과 맞물려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연합훈련이 지난주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합훈련에 대한 비난은 '연결고리'에 불과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정 수석부의장은 "오늘 미국 외교·국방 장관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과 일본의 외교·국방 장관 넷이서 '2+2 회담'을 하고 한국에 들어와서도 2+2 회담을 하게 돼 있다. 아마도 그 내용이 북쪽에 대해 군사적으로 적대적인 얘기들이 나올 거라 예상되기 때문에 (북한이) 미리 쐐기를 박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을 상대로 더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군사행동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작한 지 7일이 지난 한미 군사훈련을 물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그는 "북한이 작년에는 (연합훈련 개시) 열흘 전부터 (연합훈련을) 문제 삼았었다"며 "금년에는 조용히 지나가다가 아무래도 두 사람(미 외교·국방 장관)이 북한에 대한 불리한 얘기를 한국 측에 강요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김여정 담화로) 쐐기를 박은 것이다. '(북한을) 건드리는 쪽으로 얘기가 안 나오기를 바란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결국 한미·미일 고위급 회담에서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압박 메시지'가 나오지 않을 경우, 북측이 김 부부장 담화를 통해 언급한 대남기구 폐지를 시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