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서 대실패로 끝난 이강인 제로톱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예선 앞두고 불안감 증폭
10년 전 삿포로 참사에 이은 요코하마 참사였다. 0-3 대패. 김승규 골키퍼의 슈퍼세이브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점수차가 벌어질 수 있었다. 점수도 점수지만 선수 선발부터 전술과 경기 내용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소득 없는 경기를 치른 것도 드물다.
사실 이번 한일전은 많은 우려와 걱정 속에 개최됐다. 코로나19로 인한 확산세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일본 원정 일정을 잡은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팬들의 싸늘한 시선과 벤투호의 주축이 될 유럽파들의 대거 결장이 겹쳤기 때문이다. 사실상 1.5군이 채 되지 않은 스쿼드로 일본을 맞아 최상의 경기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예상대로 한국은 졸전을 펼쳤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실망스러운 플레이로 무너질 줄은 어느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이날 파울루 벤투 감독은 4-2-3-1 포메이션에서 이강인을 최전방 원톱에 놓는 파격적인 전략을 꺼내들었다.
결과적으로 대실패였다. 이는 이강인의 장점을 죽이는 꼴이었다. 볼키핑력, 탈압박, 경기 조율과 패싱력에 일가견이 있는 이강인을 2선에 포진함으로써 최대한 활용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강인은 상대 수비수의 압박에 시달렸고, 항상 등진 상태에서 공을 받는 모습을 남발했다.
전체적으로 후방 빌드업이 원활하게 전개되지 않으면서, 상당 시간을 하프 라인 밑에서 공을 소유하고 패스를 돌리는데 바빴다. 이에 롱패스를 전방으로 배달하는 패턴으로 변화를 꾀했지만 173cm의 단신 이강인에게 제공권 장악을 요구하는 것은 모험수였다.
벤투 감독은 경기후 기자회견에서 "이강인 제로톱 전술은 우리의 큰 전략이었다. 상대 수비라인의 균열을 깨고 상대 수비가 우리를 강하게 전방압박 할 때 발생하는 빈틈을 2선 윙어들과 남태희의 뒷공간 침투로 노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반전에 공을 받으러 내려오고 중앙에서 공격을 전개하면서 원했던 전략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실패를 인정했다.
심지어 이강인을 제로톱으로 45분만 뛰게한 뒤 교체 아웃시킨 점도 의아했다. 차라리 이강인을 2선으로 내리고, 부진했던 남태희를 빼는 전략도 가능했다. 결과적으로 무모한 실험이 소중한 45분을 날려버린 셈이다.
벤투호는 이번 한일전을 앞두고 지난 월요일에 처음 소집했다. 고작 3일 간의 훈련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전술을 일본전에서 강행했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선택이었다.
벤투 감독의 의아스러운 실험 운영은 비단 처음이 아니다. 2019년 1월 사우디 아라비아전, 9월 조지아와의 평가전에서 황희찬을 각각 왼쪽, 오른쪽 윙백으로 실험한 바 있다.
황희찬의 주 포지션은 최전방 공격수다. 윙포워드 위치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많지만 주로 측면보다 중앙을 더 선호한다. 심지어 수비적인 역할이 많이 요구되는 윙백은 황희찬에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힌 것과 다름없었다. 결국 두 차례 황희찬의 윙백 실험은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물론 감독이라면 평가전에서 전술 실험을 통해 다양한 플랜 B를 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실험을 하더라도 실현 가능성을 두고 타진해야 하는데, 벤투 감독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변칙 전술을 구사하며 비판을 받았다.
더구나 이번 일본전은 단순한 평가전의 의미를 넘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다. 이제 무모한 실험을 할 단계는 지났다. 오는 6월 A매치 데이에서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4경기를 치러야 한다. 이후 곧바로 아시아 최종예선으로 돌입한다.
그동안 벤투 감독은 자신의 철학을 고수하며 ‘마이 웨이’를 걸어왔다. 마치 방향성을 잃기라도 한 듯 ‘아니면 말고’ 식의 실험은 지금부터라도 지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