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로 급락한 문 대통령 지지율
해거름에 이른 ‘문재인 보유 정권’
콘크리트 지지층 40대도 등 돌려
벚꽃이 화사하다. 서울의 벚꽃 개화일은 지난 24일로 작년보다 3일 빨랐다는 기상청 발표다. 평년(1981~2010년 30년 평균)에 비해서는 무려 17일이나 앞섰다. 우울을 달래주려고 벚꽃이 걸음을 재촉한 것 같아 더 반갑다. 그런데 빨리 피면 빨리 지는 게 자연의 이치다. 벌써 보도엔 꽃잎이 하얗게 깔렸다. 며칠 지나면 그나마 말라서 바람에 날려 가버릴 터이다. 목련도 만개하기 무섭게 시들고 있다. 심하게 멍들어서 지는 갈색 낙화가 애처롭다.
인간사의 이치도 다를 바 없다. 흥망성쇠의 순환은 역사의 철칙이다. 문재인 정권이라고 그걸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들이라고 모르겠는가. 다만 자신들의 권력만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34%로 급락한 문 대통령 지지율
2017년 7월 5일 G20 정상회담 참석차 베를린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만찬 회담을 가졌다.
“국민의 41% 지지를 받고 당선됐는데, 지지하지 않은 나머지 유권자는 어떻게 끌어안을 생각이냐?”
메르켈이 그렇게 물었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다.
“무엇보다 전체 국민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빠른 성장의 후유증으로 나타난 경제적 불평등부터 해소해야 한다. 독일이 통일 후 사회계층 간 불평등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을 이룬 사회적 경제모델 등을 참고하겠다.”
질문의 뜻을 잘못 이해했는지 아니면 불평등 해소와 독일식 국민통합 추구가 바로 그 답이라고 여겼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강경화 외교부장관(당시)이 양해를 구하면서 끼어들었다.
“문 대통령께서 41%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지만, 취임 후 국민적 지지율이 80%를 웃돌면서 사실상 국민통합에 성과를 내고 있다.”
거드느라고 했지만 오히려 더 멀어진 답변이었다. 두 사람 공히 ‘초심’을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나마 근접한 답변은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 있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이런 표현도 썩 좋지는 않다. ‘대통령의 국민’이 아니라 ‘국민의 대통령’이라는 인식이 결여됐다. ‘진정한 국민 통합’ 운운한 것도 실현이 가능할 수 없는 정치적 레토릭일 뿐이었다).”
‘여론 지지율 80%’는 강 장관만의 말이 아니었다. 정권 사람들 모두가 그 수치에 환호했다. 그건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마법의 주문’이었지만 ‘교만의 함정’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여론 지지율이 지금은 30%대로까지 떨어졌다(한국갤럽이 지난 23~25일 사이에 실시한 조사에서 긍정평가는 34%에 그쳤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래도 상대적으로는 여전히 최고 수준이다. 그 때문에 이들은 겸손·도덕·정직의 재무장에 실패하고 있다(애초에 그런 덕목을 갖추고 있었는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해거름에 이른 ‘문재인 보유 정권’
정권의 자기성찰을 가로막은 결정적 계기는 작년 21대 총선에서의 승리였다. 더불어민주당의 상상을 뛰어넘은 압승에 정권 구성원 모두가 만취했다. 대의민주주의의 원리와 의의는 뇌리에서 하얗게 빛바래 버렸다. 의정 전횡이 일상화했다. 사법부 수장이 ‘촛불혁명’ 정부의 혁명 과업 수행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을 공언함으로써 국가 권력의 3축, 그러니까 입법‧사법‧행정의 합체화가 이뤄졌다.
이런 거대한 힘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윤석열 검찰총장(당시)이나 최재형 감사원장은 정말 특별한 인물들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인재를 국민이 알아볼 수 있게 한 것은 문 정권의 공이라 하겠다. 장관들의 조폭적 권한 행사 작태를 유감없이 보여줌으로써 국민의 정권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준 것도 공이라면 공일 수 있다.
국민 사이에선 끊임없이 위험신호가 나오는데도 문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귀를 막거나 말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는 데만 열성을 과시했다. 그 오만의 정도를 가늠케 하는 언설은 셀 수도 없이 많지만 대표적으로 두 가지만 들자면 아래와 같다.
“선거 시기라 이해하지만, 그 정도 하시지요. 좀스럽고, 민망한 일입니다.”
지난 18일 문 대통령이 퇴임 후에 살 양산 자택 건축 부지 문제와 관련한 야당의 비판과 관련,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불쾌감만 표출됐을 뿐 자성의 빛은 전혀 없었다.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입니다! 말 하면서 벌써 대통령님과 국무회의에서 정책을 논하던 그 시간이 그립다.”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24일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의 생일 축하 인사와 함께 올린 글이다. 이렇게 낯간지러운 찬사를 말리는 사람도 자제하는 사람도 없는 게 지금의 문 정권 분위기다.
이런 정권과 그 안의 사람들을 민심이 언제까지 참아줄 수 있겠는가. 여론조사 결과는 정권 측에 가혹하다 할 정도로 냉랭해지고 있다.
콘크리트 지지층 40대도 등 돌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55.7%,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 30.3%.”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칸타코리아에 의뢰해 지난 27일 실시, 28일 발표한 서울시장 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다. 부산 시장 후보 지지율도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 48.2%,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후보 26.0%로 큰 격차를 보였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26~27일에 실시해서 28일 공개한 조사 결과도 대동소이하다. 서울 오 후보 50.5%, 박 후보 34.8%였다. 여타 여론조사에서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추세다.
“文 콘크리트 지지층, 40대도 돌아섰다.”
조선일보의 관련 기사 제목이다. 종전엔 유난히 문 정권에 대해 호의적이던 40대에서 정부 견제론이 54.9%로 정부 지원론 42.4%보다 12.5%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콘크리트도 지속적으로 타격을 받으면 깨지게 마련이다. 이건 너무나 분명한 상식인데 자신들의 경우만은 예외라고 민주당은 굳게 믿고 있었다. 최근에 보궐선거를 거들겠다고 나선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20년 집권론‘을 또 꺼내면서 “선거가 아주 어려울 줄 알고 나왔는데 요새 돌아가는 것을 보니 거의 이긴 것 같다”고 말한 맥락도 같다. 교만의 함정에 갇힌 것이다.
선거 결과는 투표함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할 만큼 예측하기가 어렵다. 위험을 무릅쓰고 예상하자면 민주당이 양대 도시의 시장 보궐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게 다 자업자득이라는 것을 민주당 사람들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민주당은 콘크리트 지지층, 콘크리트 지지율이라는 걸 믿고 싶겠지만 진작 뚫려 버렸다. 민심에 관한 한 그런 게 있을 리도 없다. 이를 깨닫고 인정하는 게 패배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길이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것 다 해”라는 말에 너무 우쭐했다. 그 탓에 하산 길이 더 어려워졌다는 반성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은데 정권 실세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