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TSMC·인텔 대규모 장기 투자 실행 핵심 관건...수급 변수
대형 업체들에 높은 의존도...ASML 노광장비 품귀 현상 심화
8인치 웨이퍼 수요 증가에도 중고 장비만...공급난 심화 우려
반도체 공급난이 심화되면서 파운드리(위탁생산) 증설 투자가 잇따라 발표된 가운데 장비 확보가 중요한 미션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심화로 파운드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반도체업체들이 장기적인 투자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관련 장비들이 받쳐주지 못하면 계획대로 이행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6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TSMC·인텔 등이 미국 현지에 대규모 파운드리 생산라인 증설 투자를 발표한 가운데 관련 장비 확보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투자 확정 금액만 봐도 삼성전자 170억달러, TSMC 120억달러, 인텔 200억달러 등 총 490억달러(약 55조37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추가 투자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
◆ 잇따른 파운드리 투자 발표...계획 이행 위한 장비 확보 관건
대규모 투자인 만큼 부지를 확보해 공장 건물을 짓는데만도 2~3년 가량이 걸리고 장비 입고는 그 다음에 이뤄지는 절차이기는 하다.
하지만 첨단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는 한정돼 있고 물량도 제한적이어서 발빠르게 나서지 않으면 나중에 낭패를 볼수가 있다.
파운드리는 팹리스(Fabless·설계전문) 등 기업 고객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수주하는 사업의 성격상 공장 건설에 맞춰 장비가 입고돼야 기업 고객들의 주문 물량을 생산할 수 있다.
만약 공장 건물이 다 지어져도 장비가 입고되지 않으면 생산라인 가동이 차질을 빚으면서 주문 자체를 소화할 수 없게 될 수 있다.
대표적인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로는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램리서치(이상 미국)·ASML(네덜란드)·도쿄일렉트론(TEL·일본) 등이 있다.
이들은 반도체 웨이퍼(원판) 위에 필요한 무기막을 정밀하고 균일하게 형성하는 증착 공정, 웨이퍼 위 회로의 패턴 중 불필요한 부분은 정밀하게 깎아내는 식각 공정, 빛으로 회로를 만들어내는 노광 공정 등에 활용되는 장비를 생산한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 4개사의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 점유율은 64.3%로 절대적인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장비 출하량에 따라 반도체 생산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ASML에서 독점 생산되는 극자외선(EUV·Extreme Ultra Violet) 노광장비는 없어서 못 파는 실정이다.
EUV 노광장비는 첨단 반도체 개발 및 생산에 필요하며 5나노(nm·나노미터, 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 이하의 초미세공정에는 적용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장비 한 대 가격만 2000억원이 넘고 생산량도 한정돼 있어 대형 고객사인 삼성전자와 TSMC도 몇 개월을 대기해야 손에 넣을수 있을 정도다.
장비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장비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제한적이어서 수급이 타이트한 상황”이라며 “특히 EUV 노광장비의 경우, ASML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절대적이어서 생산량에 따라 칩 업체들의 캐파(CAPA·생산력) 증설 계획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 8인치 웨이퍼 중고 장비도 품귀...확보 경쟁 화두
반도체 공정이나 웨이퍼 크기와 관계없이 전 영역에 걸쳐 장비 공급난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최근 8인치(200㎜) 웨이퍼가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이로 인한 전용 장비 쟁탈전이 펼쳐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8인치는 1990년대 주력 웨이퍼였지만 이제는 2000년대 들어 등장한 12인치(300mm)에 메인 자리를 내주고 비중도 상대적으로 작아진 상황으로 관련 장비는 신규 생산이 거의 없고 대부분 중고 장비 거래만 이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나노 미만 공정 기반 칩 수요가 급증하면서 8인치 웨이퍼 수요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8인치로는 차량용 반도체를 비롯, 전력관리칩(PMIC)과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등 낮은 단계의 공정으로도 가능한 제품들이 생산된다. 현재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의 중심에는 대표 제품인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이 있는데 대부분 8인치 웨이퍼에서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장비 부족으로 생산 확대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미 대부분의 장비업체들은 12인치 전용으로 돌아선 상태로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8인치용 장비를 신규 생산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12인치 장비도 주문이 밀려 있어 이에 대응하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서플러스글로벌 등 반도체 중고장비업체들을 통한 거래가 이뤄지는데 높은 수요 대비 물량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중국 업체들이 중고 장비를 싹쓸이 하려는 시도도 감지되고 있어 현재 상승 추세인 8인치용 중고 장비 가격이 폭등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그러나 8인치 웨이퍼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제품 수요가 늘고 있는 터라 DB하이텍 등 파운드리 업체들이 증설을 하려면 관련 장비를 구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최근 SK하이닉스가 파운드리 생산능력 2배 확대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키파운드리 인수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상황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자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IC를 통해 8인치 웨이퍼를 기반으로 파운드리 사업을 전개해 왔는데 추가로 8인치 장비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키파운드리 인수를 통해 자연스레 장비를 확보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공정과 크기에 관계없이 반도체 장비 공급난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증설 투자를 발표한 칩 제조 기업들도 장비 수급 상황에 맞춰 실질적인 캐파 확대 등은 조정해 나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장비 생산 확대가 단기간 내에 이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수급난이 한동안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파운드리 증설 투자와 관련해 장비 확보 경쟁이 화두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