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주민 반발에 공급계획 변경…정책 신뢰도↓
"정부정책 얼마든 변경 가능하단 '시그널' 준 셈"
정부의 과천청사부지 주택공급 계획이 지역주민과 지자체 반대에 부딪혀 10개월여 만에 결국 무산됐다. 개발 반대 목소리가 거센 다른 지역의 공급계획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국토교통부와 과천시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8·4대책에서 발표한 청사부지 개발계획을 지자체 의견을 수렴해 변경하기로 했다. 지역 주민들이 김종천 과천시장 주민소환까지 밟으며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에 돌입하자 이에 대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김종천 과천시장은 지난 4일 브리핑에서 "정부가 과천시 대안에 대해 합리적이라 평가하면서도 다른 개발사업지에 미칠 영향 때문에 선뜻 수용하지 못했다"라며 "이번 결정은 과천시 대안에 대한 대답이며 간접적으론 주민소환이 정부정책에 대한 강한 항의 의사표시로 받아들여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청사부지를 개발하지 않고 과천과천지구 등에서 자족용지 용도전환(→주택) 등을 통해 3000여가구를 공급하고 그 외 과천시가 제시한 대체지에서 1300가구 등을 마련해 당초 목표한 4000가구보다 300가구 이상 많은 물량을 공급할 예정이다.
차질 없는 주택공급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양호한 입지에 기존 정부 계획물량을 초과하는 대체물량 제시, 향후 지자체의 적극적 협조 등 3가지 원칙에 따라 과천시 의견을 수용했다는 설명이다. 타 사업지에 대해서도 이 같은 원칙에 따라 동일하게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8·4대책 당시 계획한 것보다 더 많은 물량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게 됐지만, 이번 결정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당장 주택공급 일정을 맞추기 어려워졌다. 과천시에 따르면 아직 시가화 예정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장소는 정해지지 않아 대체부지 선정 및 지구지정에 대한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청사부지와 과천과천지구 입지가 달라지는 만큼 기존 공급계획 수정도 필요하다.
주택공급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다른 지역의 사업 추진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현재 용산정비창, 태릉골프장, 상암 DMC 미매각부지 등 지난 8·4대책, 5·6대책에서 공공택지로 지정된 지역 곳곳에서는 환경파괴 및 교통난, 지역발전 저해 등의 반대 목소리가 새 나오고 있다.
그나마 과천청사의 경우 정부가 계획한 공급물량을 그대로 흡수할 대체지가 있어 이러한 정책 변경이 가능했다. 반면 나머지 부지들은 서울 도심 내 위치한 탓에 대체부지를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무엇보다 지자체 반발로 정부 정책이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게 됐다. 전문가들은 애초 공급방안을 마련할 때 지자체와 주민들의 의견수렴 과정 없이 급하게 정책을 결정한 데 따른 후폭풍이라는 평가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정부가 발표한 계획이 어떤 사정에 의해 변경되면 정책에 대한 일관성이 없고 신뢰도를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며 "대체방안이 있다면 얼마든지 정책 방향을 틀 수 있다는 시그널을 정부가 시장에 준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유지는 국가 차원에서 활용방안을 고민해 국민 전체 이익을 위해 개발해야 하는데 사전에 의견수렴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이렇게 지역주민의 손에 끌려가게 되는 것"이라며 "대체방안을 마련하기 어려운 도심 내 택지의 경우 주민 반대로 개발계획이 더 미뤄지거나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