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노조 10년 연속 파업…현대차·한국GM·르노삼성도 연례행사
교섭시 사측 압박 수단…"파업으로 손실 입느니 돈 내놔라" 협박도
“한국공장은 또 파업인가!”
지난해 1월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을 찾은, 당시 르노그룹 2인자였던 호세 비센테 데 로스 모소스 제조·공급 담당 부회장이 전한 르노그룹 본사의 반응이다.
르노삼성의 노사 갈등이 한창인 상황에서 당시 미확정 상태였던 XM3 유럽 수출물량을 배정받으려면 노사 갈등부터 해소해야 된다며 “르노 본사에선 또 파업이냐는 말이 나온다”고 말한 것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는 한국 자동차 업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듯하다. 르노삼성 노조는 그 전년도까지 2년 연속 파업을 벌였었다. 그의 입장에선 당해까지 3년 연속 파업이 심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나라에서 그 정도면 ‘양호’한 수준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완성차 5사 중 쌍용자동차를 제외한 나머지 4사 노조는 지난 10년간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무분규로 타결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줄파업을 벌여왔다.
쌍용차의 경우 지난 2009년 옥쇄파업과 대량해고사태를 겪은 이후 실리 성향의 기업노조가 대표노조로 자리 잡으며 매년 무분규 교섭 타결을 이어온 ‘특이 케이스’로 꼽힌다.
기아 노조는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무려 10년 연속 파업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대외 악재가 있었던 지난해도 기아 노조는 파업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같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자동차 노조도 만만치 않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 연속 파업했다. 지난해 중도·실리 성향의 노조 집행부가 들어서며 무분규 행진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올해 교섭 초기부터 파업 카드를 내밀었다.
한국GM 노조도 지난 10년 사이 2014년과 2015년, 2018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파업을 벌였다. 2018년의 경우 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한국 철수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대량실직 위기에 내몰린 노조가 울며 겨자 먹기로 자구안을 포함한 합의서에 서명한 케이스다. 국민 혈세를 지원받아 위기를 넘기자 노조는 이듬해부터 다시 파업을 시작했다.
르노삼성 노조는 회사가 경영난에 빠진 2015년부터 3년 연속 무분규 교섭 타결로 위기 극복에 일조하며 한때 협력적 노사관계의 모범사례로 불렸었다. 하지만 강성 집행부가 들어선 2018년 이래 다시 줄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2019년에는 무려 412시간, 2020년에는 195시간이라는 업계 최장 파업 행진으로 회사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올해도 각사 노조는 당연하다는 듯 교섭 초기부터 파업 카드를 내밀고 있다. 한국GM 노조는 노사가 노조측 요구안을 놓고 한 차례 검토(1회독)를 한 상태에서 사측이 제시안을 내놓기도 전에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지난 1~5일 진행한 투표에서 76.5%의 찬성률로 쟁의행위가 가결됐다.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할 예정으로, 중노위가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면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게 된다.
현대차 노조 역시 파업권 확보를 위한 사전절차에 나섰다. 지난달 30일 사측이 기본급 월 5만원 인상, 성과급 100%+300만원, 격려금 200만원 등 인당 평균 1114만원에 달하는 파격적 임금인상안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거부하고 즉각 결렬을 선언한 뒤 중노위에 조정신청을 했다.
조합원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7일로 예정돼 있으며, 노조 집행부는 가결을 자신하고 있다.
현대차와 한국GM 노조는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 지침에 따라 기본급 월 9만9000원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현대차 노조는 영업이익의 30%에 해당하는 성과급 지급과 정년 연장(64세) 등을, 한국GM 노조는 기본급 월 9만9000원 인상, 통상임금의 150% 성과급 지급, 코로나19 격려금 400만원 등 1000만원 이상의 일시금을 요구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요구라는 평가다. 특히 전기차 전환으로 조립인력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연 연장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아 노조는 아직 파업과 관련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진 않고 있으나, 현대차 노조와 비슷한 수준의 임금 인상과 정년 연장을 요구안으로 내놓아 사측과의 입장차가 크다. 통상 기아 사측의 제시안은 현대차 노사 타결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었다. 기아 노조가 올해도 파업을 벌일 경우 연속 파업 기록은 11년으로 연장된다.
르노삼성 노사는 지난해 임단협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올해까지 끌어오고 있다. 이미 상반기 여러 차례 파업을 벌인 교섭대표노조는 소수노조의 재교섭 요구로 쟁의권과 교섭권을 잃었지만, 다시 기존 다수노조가 교섭대표로 확정돼 조만간 사측과 줄다리기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교섭권을 다시 확보한 만큼 조만간 쟁의행위 찬반투표 등 파업 준비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다. 노조는 지난달 28~29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교섭대표 확정 이후 쟁의행위 찬반투표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결국 올해도 완성차 4사가 노조의 파업 공세를 피하긴 힘들어 보인다. 노사 상견례 이후 연말까지, 심지어는 해를 넘겨가며 반 년 이상씩 노조 리스크에 시달리는 상황이 또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올 하반기는 코로나19로 경직됐던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점차 풀리고 수요가 확대되고 있어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은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특히 한국GM과 르노삼성의 경우 트레일블레이저와 XM3 등 수출 차종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완성차 업체 한 관계자는 “교섭이라는 게 서로간의 입장차를 줄이는 과정이 돼야 하는데 노조는 시작 단계부터 쟁의권을 확보하고 보겠다는 식이니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면서 “회사의 경영환경과 지불능력 등은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파업을 무기로 회사를 압박해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겠다는 태도가 매년 이어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교섭 테이블에서 노조가 ‘어차피 파업을 벌이면 회사가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니 그 금액만큼 임금을 올려 달라’는 얘기까지 대놓고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매년 한 해의 절반 이상을 그런 협박에 시달리며 피로도가 심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