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완화하면 대유행 발생
지난 3차례 대유행도 같은 양상
반나절 만에 정책 내용 뒤집기도
지나친 자신감이 빈틈 만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1300명대를 넘어서면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고 있다. 방역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이 섣부른 거리두기 완화를 불렀고 결과적으로 4차 대유행 우려를 키웠다는 비판이다.
정부는 그동안 백신 접종률 제고에 집중하면서 방역 완화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 4.2%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수 회복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선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경직된 경제를 풀어줘야 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정부 방역 신호는 성급했고 서툴렀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는 오랫동안 피로감이 쌓인 국민에게 코로나19 위험성이 줄어든 것으로 오해하게 했다.
실외 ‘노 마스크’ 선언…예고된 위기
정부는 본격적인 백신 접종 시작 두 달 뒤인 지난 4월부터 방역 완화 신호를 내놓기 시작했다. 4월 30일에는 7월부터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 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65세 이상 고령자 등을 포함해 상반기에 1200만 명에게 1차 접종을 마치고 6월까지 주간 하루 평균 확진자가 1000명 이내로 관리되는 것을 전제로 내놓은 방안이다. 실제 이후 확진자 수는 400∼700명대에 머물렀고, 접종 목표도 조기 달성해 6월 중순 1차 접종 인구가 1400만 명을 넘어섰다.
자신감이 붙은 정부는 5월 26일 각종 백신 접종 인센티브를 담은 ‘예방접종 완료자 일상회복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6월부터 백신 1차 이상 접종자에게 직계가족 모임 제한을 풀어주기로 했다. 7월부터는 사적 모임과 시설 인원 제한에서도 제외하기로 했다. 더불어 7월부터 1차 백신 접종자는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본부장은 “전 국민의 25% 이상에 접종을 마치는 동시에 현재와 같은 방역수칙을 유지하는 경우, 7월 중순 이후부터는 확진자 발생이 더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정부 방역 완화 대책에 힘을 실었다.
결과적으로 7월부터 시행한 방역 완화 조치는 일일 확진자 1300명 돌파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졌다. 방역 완화 조치 시행 일주일 만인 지난 6일 1212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7일에는 1275명으로 늘었고 8일에도 1316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등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오락가락했다. 6월 2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델타 변이가 통제 가능하다며 거리두기 개편이 필요 없다고 했다. 반면 방대본은 변이 확산을 우려하고 지역별 통제가 필요하다며 정반대 입장을 밝혔다.
3일 뒤인 6월 27일에 중대본은 7월부터 수도권 지역도 6인 이상 모임이 가능하고 14일 이후부터는 8인까지 가능하다고 지침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발표 내용을 뒤집었다. 확산세가 심각한 조짐을 보이자 수도권에 한해 현행 거리두기를 1주일 연장하기로 했다.
결국 지난 4일에는 수도권 경우 백신접종자도 실외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했다. 밤 10시 이후 공원과 강변 음주까지 금지했다. 백신 접종자에 대한 인센티브 계획을 발표한 지 한 달 만에 전부 없던 일로 되돌린 것이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는 정책이 거리두기 개편 등 방역의 느슨함과 결합해 이러한 확산이 일어났다”며 “마스크 완화 정책은 당연히 철회해야 하고 모임에서 접종자를 예외로 적용하는 것도 다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훈 가천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6월 변이 바이러스 등으로 확진자가 증가하는데 정부가 지속해서 방역 완화의 시그널을 보냈다”며 “7월이면 (코로나19 이전) 과거로 돌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줬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지적에도 정부는 실외 마스크 해제가 코로나19 재확산에 영향을 줬다고 판단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지난달 24일 브리핑에서 “국내 유행 통제 상태는 안정적”이라고 자신감을 표했고 이상원 방대본 역학조사분석단장은 “실외에서는 집회 등을 제외하면 위험이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자신감이 낳은 확진자 증가
방역에 대한 자신감은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근래 백신 접종률이 속도를 높이자 남아 있는 위험 가능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신년 기자회견에서 방역에 대한 상당한 자신감을 표현했다. 기자들로부터 방역 관련 질문을 받는 시간에 다른 이슈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방역을 너무 잘하니까 질문을 안 하는 건가?”라고 농담까지 했다.
그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난 지금 정부는 수도권 지역에 거리두기 4단계를 명령했다. 수도권은 12일부터 2주 동안 오후 6시 이후 사적 모임은 2명까지만 허용된다. 오후 6시 이전에도 4명까지만 모일 수 있다. 1인시위 이외 모든 집회와 행사는 금지된다. 결혼식과 장례식마저 친족만 참여할 수 있다. 유흥시설 집함금지도 유지된다. 백신 접종자에 적용하던 방역 완화조치도 전면 유보하기로 했다.
비슷한 상황이 1년 넘게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일부 종교시설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한 1차 대유행 때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확산세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정부는 방역 성공을 자찬했다.
1차 유행이 잦아들 무렵 경기 활성화를 이유로 정부는 농수산물과 외식, 공연, 전시, 영화 등 8개 분야에 소비쿠폰을 지급했다. 그러다 8월에 2차 대유행이 닥쳤다. 부랴부랴 소비쿠폰 발행을 중단했다. 그해 10월 다시 소비쿠폰을 발급했지만 11월 3차 대유행으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방역에 대한 정부 자신감이 높아질 때 대유행은 반복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번 수도권 4단계 격상에 대해 “서울에서만 사흘째 50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5명 중 4명이 수도권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과감한 결단과 신속한 실행만이 답”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거리두기 격상에 대해 김동현 한림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완화 시그널을 보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며 “당국이 틈만 보이면 방역 완화에 손을 댄다”고 비판했다.
정재훈 교수도 “거리두기 단계 연장이나 유지 정책은 메시지 관리 면에서 굉장히 실수하는 것”이라며 “얼마 동안 더 버텨달라는 메시지가 지난 1년 반 동안 너무 많이 되풀이됐다”고 지적했다.
선택 접종 등 ‘전략’ 필요한 때
정부 전략 자체가 모호하다는 비판도 있다. 정부가 방역을 강화하면서도 급증하는 확진자 수에 비해 사망률이나 중증 악화 비율이 매우 낮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부 주장은 자칫 사망률이 낮은 만큼 확진자 수 급증이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는 오해로 이어질 수 있다.
김동현 교수는 “사망률이 1%로 떨어졌다고 해도 확진자 몇백 명의 1%와 2000명의 1%는 상당히 다르다”며 “중환자실의 부담이 커지면 견디기 어려운 만큼 새로운 거리두기 단계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4차 대유행을 조기 차단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전국적으로 격상시키고 백신 물량을 확보해 접종률을 끌어올리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뻔한 방법이지만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더불어 국민에게 또다시 방역 완화 신호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방접종 순서 조정도 거론된다. 그동안 의료인과 고령층, 취약계층 등 사망자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펼쳤지만 앞으로는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한 방향으로 백신 접종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방접종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가장 활동이 많은 20~30세대를 먼저 접종해야 한다는 의견과 반대로 면역력이 떨어진 50대 이상의 접종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견이다. 다만 우선 접종 대상은 달라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보유한 백신 수량이 충분하지 않아 전면 확대가 힘들다면, 차선책으로 확보 가능한 백신의 접종 우선순위라도 바꿔야 한다”며 “감염전파 위험성이 높은 다중이용시설, 학원, 단체 직장을 이용하는 20대와 30대에 우선 접종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정부는 12일부터 55~59세를 대상으로 백신 접종 사전예약을 시작하기로 했다. 실제 접종은 오는 26일부터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20∼30대 접종은 예정대로 8월 중순 이후에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정재훈 교수는 “지금은 거리두기를 강화해서 백신 접종률이 오를 때까지 사람과 사람 간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수밖에 없다”며 “4차 대유행을 진화한다고 해도 또 다른 유행이 다시 반복될 것이고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바이러스의 특성을 고려해 사람 간 접촉을 줄이면서도 사회적인 반발을 줄일 수 있는 지침, 예를 들어 실외와 실내 활동을 구분하는 방법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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