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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정책 액땜은 공무원 몫?…세종청사 절전 강행 사태


입력 2021.07.23 07:02 수정 2021.07.23 11:50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르포] 정부세종청사 가보니

햇볕 내리쬐는 오후 실내온도 28도 강제

선풍기서 열 바람 나와 불쾌한 업무환경

정부 내부서도 "탈원전 정책 수정" 불만

정부세종청사. ⓒ데일리안 유준상 기자

"가장 더운 오후 시간대에 실내 온도를 28도로 강제해놔 죽겠습니다. 특히 제 자리는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창가여서 온몸에 땀이 흥건해 속옷 위 아래까지 축축이 다 젖습니다. 청와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정책적 오판으로 전력수요에 대처하지 못한 피해를 왜 다른 부처 공무원들까지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고기온이 33도까지 오른 '대서(大暑)' 22일, 정부세종청사 입주 부처 한 남성 공무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이같이 속내를 털어놨다. 폭염으로 전력수급에 위기가 도래하자 정부가 공공기관 에어컨 자제령을 내린 탓이다. 공공기관 냉방 사용자제를 권고한 건 2013년 이후 8년 만이다.


공공기관은 여름철 실내 온도 26~27도를 준수해야 한다. 올해는 더 강화된 기준인 '냉방기 순차 운휴'가 내려졌다. 954개 공공기관을 전국 6개 권역으로 나눠 7월 넷째 주부터 8월 둘째 주까지 최대 전력 사용 시간인 오후 2시~오후 5시에는 30분간 돌아가면서 냉방기를 끄거나 설정온도를 28도에 맞춰야 한다.


세종청사가 '찜통청사'가 되자 공무원들 원성이 자자하다. 아무리 국가 방침에 따라야 하는 공무원이지만 이번엔 해도 너무하다는 것이다. 한 20대 여성 공무원은 "실내온도 28도가 넘으면 선풍기에서도 열이 나와 불쾌감마저 듭니다"라며 "청사를 찜질방으로 만들어놓고 대체 무슨 일을 하라는지 모르겠네요"라고 볼멘소리 했다.


또 다른 여성 공무원도 "업무 특성상 오후 시간 문서 발송을 위해 자전거로 우체국을 다녀와야 하는데 하필 그 시간이 냉방기 순차 운휴 시간이네요"이라며 "땀이 범벅이 된 채 돌아와 근무 자리에 앉으면 찝찝함이 커서 다시 업무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라고 토로했다.


냉방 사용자제 이외에도 전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업무용 건물 복도 조명을 50% 이상 소등하고, 회의실이나 화장실 등 간헐적 공간은 미사용 시간에 소등해야 한다. 옥외 광고물도 심야에 소등해야 한다. 이같이 공공기관에 적용되는 각종 절전 명령이 일상에 차질을 줄 정도가 되자 일부 청사 공무원들은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부메랑처럼 돌아온 탈원전 정책…"더 큰 제재 가해질 수도"

문제는 더 극심한 폭염이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장마가 지난 19일을 기점으로 종료되며 앞으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폭염이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최고 기온이 36도를 넘어서고 지역에 따라서는 38도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7월 넷째 주 예비력을 400만~790만㎾(예비율 4.2∼8.8%)로 예상했다. 2011년 9월 블랙아웃(대정전) 이후 최저 예상치다.


폭염으로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릴 경우 지금보다 더 큰 제재가 가해진다. 행안부에 따르면, 전력수급 비상경보는 공급예비력에 따라 '준비(550만㎾ 미만)' '관심(450만㎾ 미만)' '주의(350만㎾ 미만)' '경계(250만㎾ 미만)' '심각(150만㎾ 미만)' 등 5단계로 나눠 발령된다. 과거 대정전 상황을 고려할 때 전력수급 비상경보 단계에 접어들면 냉방기 전면 중단, 업무 공간 소등, 온수 사용 금지 등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8년 만에 최초 공공기관 냉방 사용자제령이 내려진 건 탈원전 정책과 관련이 깊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까지 계획예방정비를 명목으로 무려 원전 8기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140만㎾급 신형원전 4기(APR1400)만 가동하면 전력수급 비상경보 '준비(550만㎾ 미만)'를 예방할 수 있다. 탈원전 정책이 전력수급 위기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전력수급에 위기감이 감돌자 다급하게 원전에 'SOS'를 쳤다. 계획예방정비로 정지 중이었던 신월성 1호기, 신고리 4호기, 월성 3호기 등 원전 3기를 이달 순차적으로 재가동한다.


정부세종청사 입주부처 공무원은 "언론에서 끊임없이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이 나왔지만 사실상 무감각했는데 현재 사태로 그 피해가 피부로 체감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지난날 과오를 인정하고 탈원전 정책 궤도를 수정해 전력수급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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