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인권위 결정문, 피해자 여성 측 주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법조계 "기자가 결정문 진실이라고 믿었으면 위법 아냐…공적사안 전달한 것"
"자칫 박원순 성범죄 행위만 법적으로 재확인하고 명예만 실추 시킬 수도"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이 피해자 여성 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객관적으로 확정된 사실처럼 표현했다며 기자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죄 소송을 예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유족 측이 법적 다툼을 벌일 여지는 있으나, 실제 박 시장의 성범죄 의혹을 씻어 내거나 기자의 사자명예훼손죄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전 시장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정철승 변호사는 29일 자신의 SNS를 통해 모 일간지 소속 A기자를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A기자가 쓴 박 전 시장 관련 보도 중 '박 전 시장은 비서실 직원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렀다. 가해자가 명백하게 밝혀졌고, 어떤 행위가 있었는지 알려진 상황'이라고 쓴 표현을 문제 삼았다.
정 변호사는 "(해당 표현의)근거는 어이없게도 사법기관도 아닌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 권고 결정문이었다"며 "그 인권위 결정문은 대부분 피해자 여성 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받아들여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기자는 피해자 여성 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마치 객관적으로 확정된 사실처럼 표현했다"며 "이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사자명예훼손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기자가 박 전 시장에 대해 악의를 갖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는 어려운 만큼 사자명예훼손죄 성립 가능성은 비교적 적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법률사무소 파운더스 하진규 변호사는 "기자가 성희롱 행위를 단언적으로 언급한데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다툼을 벌일 여지는 있다"면서도 "기자가 개인의 사견이나 추측이 아닌 인권위 해석을 인용해 보도했다면,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공적 사안을 전달한 것이기 때문에 위법성이 없어진다는 법원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법조계의 또 다른 전문가도 "A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인권위의 결정문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그럴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위법성 조각(배제) 사유가 된다"며 "보도한 내용이 결과적으로 허위라 할지라도 취재를 통해 진실한 사실이라 믿고 보도했다면 명예훼손죄가 안 된다는 게 대법원의 판례"라고 주장했다.
김소연 변호사는 "인권위가 피해자 주장만으로 판단한 것은 맞다. 진정이 들어가면 당사자에게 해명 기회를 주지만, 박 전 시장은 고인이 되면서 해명을 하지 못했다"며 "인권위 조사 결과를 그대로 발표한 것은 절차상 하자가 있는 것이 맞고, 법리적 차원에서 명예훼손을 주장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다만, 기자는 법정에서 자신이 의도적으로 허위 보도를 한 것이 아니라고 치열하게 입증하려 할 것"이라며 "판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다수 불러 사건을 다시 살필 텐데 이 과정에서 피해자 여성은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소송이 자칫 박 전 시장의 명예만 실추시키는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박 전 시장이 사망하면서 성범죄 의혹 사건은 정식 수사 없이 '공소권 없음'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유족 측의 소송으로 검찰이 사건에 대해서 정식 수사를 벌일 길이 열렸고, 이는 역으로 박 전 시장의 성범죄 사실을 법적으로 재확인하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조계의 한 전문가는 "기자의 보도가 허위라는 점을 입증하려면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사실 여부 심리를 다시 열고 실체적 진실 파악을 위해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며 "성범죄 의혹이 허위임이 밝혀지면 유족 측에는 좋은 일이겠지만, 박 전 시장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허위'임을 증명할 방법이 거의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자의 보도가 허위가 아니라는 취지의 결론이 나오면 결국 박 전 시장의 성범죄 행위만 법적으로 재확인한 것과 다름없다"며 "설령 허위라는 판결이 나와도 별개로 기자가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여전히 적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소송인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한편,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부인 강난희씨가 인권위의 '박 전 시장의 행위는 성희롱에 해당한다'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정 변호사는 29일 자신의 SNS에서 소송 제기 사실을 전하며 "인권위가 왜 그렇게 황당한 일을 무리하게 강행했는지를 행정소송 진행 과정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