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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발견①] 숨은 고수 등장 ‘인질’의 새 얼굴


입력 2021.08.08 09:45 수정 2021.08.08 09:45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인질' 런칭 포스터 ⓒ㈜NEW 제공

영화 ‘인질’(감독 필감성, 제작 ㈜외유내강, 배급 ㈜NEW)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면 출연 배우가 황정민 단 한 명이다. 공개된 사진을 봐도 모두 황정민 관련이다. 실제로 그럴까.


물론 아니다. ‘황정민이 납치됐다’는 설정 아래 전개되는 리얼 탈출 액션극인 만큼 스타 배우 황정민을 납치해 인질로 삼는 납치범이 존재한다.


납치범들의 역할이 미미하고 카메라가 온통 황정민에만 집중하기에 출연진이나 스틸컷에 다른 배우가 없는 걸까. 더더욱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황정민에 밀리기는커녕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덤비는 무서운 납치범들이 있다. 얼마나 무서운지를 넘어 어떻게 무서운지를 논해야 하는 ‘남다르게 센’ 인물들이다. 첫 등장부터 이색적이고, 일반적이지 않아서 더 강렬하고, 예상 밖의 언행 태도에 공포를 안긴다.


그렇다면 왜, 굉장한 괴물 신인들의 얼굴도 이름도 비공개로 한 걸까. 필감성 감독은 황정민 외에 납치범, 그를 추격하는 경찰 모두 본 적 없는 얼굴이어서 관객이 영화인 줄 알면서도 실제인가 의심하고, 실제상황인가 놀라면서도 연출이겠지 짐작하는 ‘실감 영화’를 원했다. 배우 황정민도 ‘캐릭터 명 황정민’을 연기한 게 아니라 철저히 ‘황정민 자신’으로서 연기했다. 그리고 과감히, 모든 출연진 정보와 현장 사진을 비공개에 부쳤다.


관객도 모르는 상태로 보는 게 훨씬 재미있는 관람이 될 것 같아 얼굴 공개는 참기로 한다. 다만 황정민 1인극 같은 영화로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물론 충분히 볼 가치가 있을 것이나) 꼭 봐둬야만 하는 ‘엄청난’ 배우들이 나온다는 사실은 알리고 싶다.


황정민을 납치한 범인들은 김재범, 류경수, 정재원, 이규원, 이호정 배우가 연기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박새로이(박서준 분)가 운영하는 포차 ‘단밤’의 홀서빙 직원 최승권으로 분해 주방장 마현이(이주영 분)를 살뜰히 챙기는 훈남을 연기했던 배우 류경수가 영상미디어에서 가장 눈에 익은 배우일 정도로 생경한 얼굴들이다.


류경수는 인질범 조직의 2인자 염동훈을 맡아 뜨겁고 거친 숨을 내뱉으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함과 동시에 사제 총을 만드는 샛별(이호정 분)을 아끼는 사내의 모습을 드러낸다. 정재원은 황정민의 출연작을 모두 본 팬으로 인질들을 지키는 문지기 용태로 분해 험악한 외모로 위압감을 주는 동시에 작은 입술과 가지런한 잇속, 해맑은 표정으로 귀여움을 발산한다.


리더를 흔들림 없는 충성심으로 보좌하는 거구의 조직원 고영록은 이규원에게 맡겨졌는데 천하장사 같은 괴력으로 공포감을 준다. 이호정이 연기한 샛별은 영화 ‘독전’의 농아동생 주영(마현이 역의 배우와 다른, 이주영 분)을 연상시키는 걸 크러시와 함께 섹시 미를 과시한다.


그리고 위 네 명의 배우들도 장래가 촉망되지만, 반드시 기억해둬야 할 이름이 있다. 4명의 행동대원을 움직이는 ‘기획자’이자 팀의 리더 최기완을 연기한 배우 김재범이다.


최기완은 영화로 치면 ‘구타유발자’, 캐릭터로 치면 영화 ‘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 분), 배우로 치면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박해일을 떠오르게 하는 인물이다. 예측불허의 말과 행동으로 기묘한 긴장을 형성하고, 천진난만한 얼굴과 조용한 어조로 악행을 저지르고, 가녀린 얼굴선과 창백한 피부에 낭창낭창한 몸매가 서늘한 공포감을 준다.


저 배우 어디서 봤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 기억을 더듬고 싶은 충동을 자제할 필요도 없이 배우 김재범은 관객을 영화 안으로, 최기완이라는 캐릭터로 집중시킨다. 딴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곱상한 얼굴에 자분자분한 말투로 사람 환장시키는 말을 어찌 그리 매섭게 내뱉는지 정말이지 오들오들 떨린다. ‘추격자’의 연쇄살인마 지영민 이후 오랜만에 실감 나게 무서운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영화가 끝난 뒤 폭풍 검색해 보니, 무려 18년 차 뮤지컬 배우. 기억에 처음 새겨졌다면 지난 2008년 대학로에서 본 창작뮤지컬 ‘빨래’에서다. 당시 소극장에서 하는 뮤지컬이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재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몽골에서 온 청년 솔롱고, 여자주인공 나영과 따스한 사랑을 나눴던 남자주인공. 세상살이에서 묻은 아픔 같은 때를 툴툴 털어버리는 ‘마음 세탁’을 선물하는 창작뮤지컬이 잘됐으면, 너무나 열심인 젊은 배우들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영상카메라 기자까지 대동해 취재했었다.


그 뒤 몇몇 작품에서 본 듯한데 뚜렷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게 부끄러울 만큼 ‘인질’에서의 최기완을 표현한 김재범 연기는 압권이다. 김재범은 기자보다 팬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뮤지컬과 연극을 넘나들며 뼈가 굵은 배우, 코믹 애드리브에 능해 극의 러닝타임을 늘릴 만큼 천재적 순발력을 지닌 배우, 같은 작품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낮과 밤 공연의 연기선이 다를 만큼 하나의 인물을 다양한 해석으로 접근해 ‘레인보우 연기선’이라는 찬사를 듣는 배우.


숨은 고수가 영화 ‘인질’에 등장한 것이다. 물론 뮤지컬과 연극계에서는 인정받는 실력파이고, 스크린에 등장하는 바를 기준으로 할 때 ‘숨은’ 고수라는 의미다. 코믹 애드리브의 짝꿍 중 한 명인 배우 최재웅이 먼저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해도 별달리 발걸음하지 않던 김재범의 대작 영화 출연을 환영한다. 어디서 빛나도 빛나는 배우이고 어느 하늘에서 빛나도 좋은 것이지만, 좀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보면 좋을 연기이기 때문이다.


우선 ‘인질’에서 힘차게 파닥거리는 연기부터 맛보자. 서늘해서 더 날카로운 눈빛, 무표정이어서 더 겁나는 광기, 짜릿하다. 이마를 가려 가지런히 내린 앞머리가 어찌나 무서운지, 황정민과 똑같은 패턴 셔츠를 입고 머리를 넘겨 이마를 드러내자 사뭇 잘생겨지는 외모는 또 어떤지, 직접 확인해 보는 묘미가 쏠쏠할 것이다.


얼굴 사진을 미리 확인하지 말고 영화를 보기 바란다. 생경해서 더 놀라운, 어디서 이런 패기와 에너지가 튀어나왔는지 감탄할수록 최기완은 더 무섭다. 한 치의 물러섬 없이 황정민과 끝까지 붙어 싸워도 주눅 들기는커녕 펄펄 살아 움직이는 게 김재범이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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