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넘어 산업 진흥론자...생태계 관리 기관으로 '탈바꿈'
'사행성' 족쇄, 정부의 결단 필요...메타버스·블록체인 개방 나서야
"게임 산업 발전 기여할 것…4차산업혁명 게임산업이 주도해야"
"블록체인과 메타버스 성장 동력이 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게임은 모든 산업과 연결되게 될 것이다. 지금이 정부가 규제 완화를 향한 큰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2018년 제3대 위원장으로 취임했던 이재홍 전 게임물관리위원장(이하 게임위원장)이 지난달을 끝으로 임기를 마치고 다시 학계로 돌아왔다. 3년간 ‘규제 기관’ 이미지 탈피를 위해 게임산업 진흥과 발전을 위해 매진한 그는 “퇴임 즈음 안팎에서 들리는 반응을 보면 기관장 역할을 잘 한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재홍 전 게임위원장은 숭실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에서 종합문화연구학과 숭실대 국어국문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서강대 게임교육원 디지털스토리텔링학과 교수, 숭실대 문예창작학부 교수, 게임물등급위원회 등급재분류자문위원, 제7~8대 한국게임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게임통’이다
2018년 8월 취임 당시 “건강한 게임생태계 마련 및 산업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 합리적인 사고로 열심히 업무에 매진하겠다”고 강조한 그는 임기 동안 게임 산업 진흥에 방점을 찍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를 규제 기관을 넘어 생태 관리 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 게임 규제 완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9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학교에서 만난 그는 그 동안 성과와 퇴임 소회를 밝히면서도 정부를 향한 쓴소리도 쏟아냈다. 다음은 이재홍 전 게임위원장(현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과의 일문일답.
규제 기관→'연구·교육 ·사후관리' 생태 관리 기관으로 탈바꿈…정부 규제 아쉬워
-3년의 게임물관리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학계로 돌아온 소감은.
▲홀가분하다. 위원회에서 3년 동안 많이 배웠다. 기관장으로서 역할을 잘 한 것 같다. 최선을 다 했고, 위원회 구성원들이 모두 아쉬워했다. 위원회 가는 것에 대해 주변의 걱정도 많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게임위원장을 맡으면서 조직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보였나.
▲취임 당시 게임위가 사무1국 8팀제로 구성돼 허리 역할이 없었는데 3부를 만들어 1국 3부 9팀제로 정비했다. 또 규제 기관으로 전락한 게임위를 ‘연구’, ‘교육’, ‘사후관리’를 하는 생태계 관리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책 연구소를 발족하고, 전문 교육 양성 등에 힘썼다. ‘가족’이라는 슬로건 아래 3년 동안 노사분규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 자랑스럽다. 이밖에도 지역과 친화감을 쌓기 위해 여러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그 결과 주무부처 경영평가에서 ‘양호’ 등급을 획득했다.
-게임위원장 임기 동안 가장 뿌듯했던 성과는.
▲주무부처와 산업계와의 소통과 협력을 잘했다고 스스로도, 대내외적으로 평가 받았다. 청소년 등 비영리 게임물 수수료 면제 , PC 온라인 성인 50만원 결제 한도 폐지, 아케이드 게임물 전자결제 수단 적용 , 플랫폼의 융복합 관련 등급분류 효력 유지 개정, 아케이드 게임 자동진행장치 금지 관련 등급분류 가이드 공지 등을 타진해서 추진했다.
또 모니터링단을 운영하면서 경력단절 여성, 장애인 등 소외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했고, 체계적 전문강사 양성을 위해 4회에 걸쳐 30여명의 게임전문지도사를 탄생시켰다. 재미있는 청소년 교육을 하기 위해 진정한 축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제주도 국제 전기자동차 엑스포 마지막날에 e스포츠 챌린지와굿 게이머 페스티벌을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국제 협력을 활발히 진행했다. 아시아 최초로 국제등급분류연합(IARC) 영구적인 이사국으로서 자리매김했고, 아시아 협력체를 구성을 목표로 태국과 게임산업 공동연구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반대로 아쉬웠던 점을 꼽는다면.
▲기관장이 되고다니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럽더라. 위원회는 독단적인 기관이 아닌 문화체육관광부 소속된 부속기관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의해 흘러간다. 마치 모든 등급 및 사후관리를 위원회가 독단적으로 규제하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답답했다. 또 게임위 대상의 소송 분쟁이 꽤 많았다. 그만큼 게임위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고, 정부 정책에 불만이 있다는 것으로 느껴졌지만 공무 수행과 사후관리 측면에서 볼 때는 너무 ‘법이 약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스포츠 승부예측, 블록체인, 웹보드, 성인용 아케이드 등도 아쉬움이 많다. 위원회는 정해진 법규 내에서 행동하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다. 공통 분모는 ‘사행성’인데 이거에 대한 정부 제도화가 없다면 새로운 기술은 발전되지 못한다. 위원회의 결단이 아닌, 정부가 해결할 문제라는 점을 꼭 바로 잡고 싶다. 이밖에는 코로나로 동남아 협의체 구성, IARC 등급회의 교류, 교육 차원의 청소년 게임 축제 활동에 지장을 겪은 것이다. 이 부분은 꼭 게임위가 지속 추진해줬으면 한다.
-임기 중에서도 올해는 다사다난한 해가 됐을 것 같다. 확률형 아이템 이슈부터 셧다운제, 메타버스까지. 이에 대한 견해는?
▲확률형 아이템의 경우, 청소년은 반드시 보호되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의 자율규제 흐름은 맞다고 본다.다만 이제 국내 게임사들이 확률형 아이템 의존에 벗어나 새로운 수익 및 결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자정 능력은 이런걸 의미한다. 셧다운제는 유명무실한 제도다. 이건 국가 간섭이 아닌 학부모의 몫이다. 여성가족부의 셧다운제는 폐지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메타버스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게임사들이 가상과 현실의 소통이 가능한 혼합현실(MR), 가상현실(XR) 쪽으로 많은 노력을 해 차세대 게임의 원천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로블록스, 제페토는 기초적인 단계일뿐이다. 게임의 새로운 방향성을 정립하기 위해 모색해야 하는 시기다.
블록체인은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기도 하다. 4차 산업에서 가장 필요한 기술이며 모든 산업에 정착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기술이다. 문제는 게임에서는 NFT(대체불가능한토큰)으로 연결되는 것이 사행성과 직결돼, 게임위가 허락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은 정부가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게임물 규제 완화에 대한 업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위원장의 역할과 게임 산업 진흥 사이에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다. 나는 취임 당시 일성으로 진흥론자라고 일성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콘텐츠에 대한 보수성이 굉장히 강한 국가다. 국회에서 학부모들의 표를 너무 의식하고 있다. 과도한 교육열, 청소년 보호 정책에 성인들의 자기 결정권마저도 같은 잣대로 통제되고 있다.
4만불 시대에서 성인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해줘야 한다. 하지만 블록체인, 웹보드, 승부예측, 소셜카지노 등 게임물은 모두 다 사행성 때문에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다. 4차 산업의 핵심인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은 규제를 과감히 풀어줘 가능성을 확인한 뒤 철저히 사후관리를 하는 구조로 가야한다. 새 정부에서는 큰 결단을 내려 과감히 개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4차 산업혁명에서 국제 경쟁력이 뒤질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 메타버스 살리기 위한 정부의 큰 결단 필요…업계-정부 창구역할 지속할것"
-게임 콘텐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이게 된 계기는.
▲내 인생은 융합 통섭형이다. 소설가를 꿈꾸던 문학소년에서 경제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공대를 진학했다.다시 일본 동경대 근대문학 석박사 과정을 통해 인문학을 접목했고 숭실대 국문과에서 스토리텔링 석박사를 수료했다.
그러다 2000년대 게임이 시작되던 시점 모든 지위를 내려놓고 게임을 만났다. 게임은 인문학, 예술학, 공학이 어우러진 분야라 가능성을 엿봤다.학원으로 가 최초 게임시나리오학과를 개설했고 서강대 게임교육원에서 최초로 스토리텔링학과를 개설했다.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온 뒤 많은 게임 인력을 배출했다.
이에 20년동안 문화부, 정통부, 서울시, 경기도 등 자문위원, 평가위원, 정책위원, 한국게임학회장 연임 등을 거쳐 공공기관장인 게임물관리위원장까지 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게임분야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하더라.
-앞으로 국내 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게임사의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새로운 지적재산권(IP)이 필요한 시대다. 이를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 ‘와우’(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예로 들면 방대한 스토리를 갖추고 있다. 앵그리버드는 간단한 게임이지만 ‘왜 새가 화가 났는지’ 스토리가 담겨 있다.
반면 한국은 보상에만 집중돼있고 스토리가 없다. 국민 게임 '애니팡'도 큰 역할을 했지만 이 부분이 아쉽다. 리니지 성공 이후 게임사들은 이와 비슷한 한국형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양산에 집중하고 있다. MMORPG라면 기승전결이 내재돼야 하는데 말이다.
게임의 모든 요소를 극대화시키는 작업이 스토리텔링이다. 그 때 제대로된 IP가 나온다. 하지만 국내는 기존 IP 재탕하는데 몰입해있다. 우리가 역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들어놓은 IP에 연연하는게 참 안타깝다. 배틀그라운드처럼 새로운 작품이 나왔을 때 백년대계를 바라볼 수 있고 우리의 경쟁력이 강해진다.
-이제 게임위원장이 아닌 게임 학자로서 쓴소리를 기대해도 되나. 앞으로의 계획은.
▲위원장 끝나고 물의 흐름처럼 조용하게 학교에서 후배 양성하며 살려고 했다.그런데 주위에서 게임 생태계의 큰형님으로 남아 주길 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에 기여할 부분은 해야겠다 결심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새로운 산업, 기술, 서비스가 충돌이 많아지고 있다. 내가 중간에서 창구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숭실대에 콘텐츠정책연구소를 만들었다. 향후에는 게임정책포럼을 구축해서 다양한 현안 문제를 풀어나가며 '사랑방' 역할을 할 것이다.
꼭 우리나라가 4차 산업 강하게 드라이브 걸어 석권을 했음 좋겠다. 한국이 타 산업과 달리 콘텐츠만큼은 인프라를 100%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자꾸 하고 정책이 나오도록 돕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20여년간 언론, 학계, 국가 등 많은 응원과 인정을 받은 만큼 믿고 도와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게임위원장으로 기억되고 싶나.
▲게임을 충분히 좋아하고 아는 전문가, 인간미 있는 사람, 가족 같은 사람으로 남아있었으면 한다. 또 3년 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지만 긴 시간인데, “군림하지 않고 봉사하겠다” 결심하고 갔고 돌아올 때도 이를 지켰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게임위에 대한 조언 부탁드린다.
▲매출 14조원대 게임산업이 앞으로 더 커질텐데, 게임위는 이를 이끄는 유일한 게임 공공기관이다. 앞으로도 진흥과 규제를 밸런싱하는 생태 관리 기관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메타버스 시대에서 모든 산업은 게임과 연계될 것이고, 메타버스가 4차 산업혁명 핵심축으로 자리잡게 되면 게임위는 콘텐츠관리위원회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훌륭한 전문가 집단인만큼 정책적으로 더 키우기 위해 위원회 구성원들과 국가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