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 지정생존자’ 이후 장르물 두각
멜로 이미지 벗고 넓어진 가능성
멜로 장인으로만 지진희를 알고 있던 시청자들에게는 그의 최근 행보가 낯설 수도 있다. 거친 액션으로 반전 매력을 뽐내는가 하면, 예능프로그램에서는 그간 숨겨 온 엉뚱함을 드러내며 대중들과 한층 가까워졌다.
지진희는 폭우가 쏟아지던 밤 참혹하고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침묵과 회피, 실타래처럼 얽힌 비밀들이 이어지면서 또 다른 비극을 낳는 미스터리 드라마 ‘더 로드: 1의 비극’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특종 보도를 앞두고 아들이 유괴를 당하게 된 앵커 백수현 역을 맡아 사건의 뒤를 쫓으며 드라마의 중심을 잡고 있다. 제작발표회 당시 “앵커 역할이라 편할 줄 알았는데 안에 있는 시간은 거의 없고, 밖을 뛰어다닌다. 비 맞으면서 산까지 뛰어다니고 있다”고 설명한 대로 얽히고설킨 비밀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미스터리 장르를 표방하는 드라마지만, 지진희가 주인공으로 나선 만큼 숨겨진 멜로 감성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첫 회 만에 깨진다. 동료 아나운서인 서영(김혜은 분)과의 사이에 숨겨둔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 앵커 백수현의 숨겨진 이면을 경험하게 한다.
지진희만의 섬세한 감정 연기는 장르물인 ‘더 로드: 1의 비극’에서도 빛을 발한다. 범인 쫓기라는 서사가 중심인 드라마지만, 이 사건에 얽힌 인물들의 심리전이 핵심인 작품이다. 지진희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아픔을 절절하게 표현하면서도 백수현의 이중적인 면모를 놓치지 않고 그려낸다. 캐릭터의 비밀스럽고, 의뭉스러운 면을 그만의 디테일한 연기로 포착해내면서 긴장감을 유발하는 것이다.
사실 지진희가 지난 2019년 방송된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특정 장르에 한정된 배우라는 이미지도 있었다. 그동안에는 ‘줄리엣의 남자’, ‘애인 있어요’, ‘미스티’를 거치며 쌓은 멜로나 ‘대장금’, ‘동이’로 보여준 무게감 있는 사극 이미지가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60일, 지정생존자’에서 보여준 선 굵은 연기는 그 편견을 단번에 깼다. 갑작스러운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로 대통령을 잃은 대한민국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에서 지진희는 60일 동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정된 환경부 장관 박무진 역을 맡아 극을 훌륭하게 이끌었다. 테러의 배후를 찾아내며 진짜 리더로 거듭나는 과정을 때로는 무게감 있는 연기로, 때로는 섬세한 감정 연기로 그려나가는 완벽한 완급조절로 드라마의 긴장감을 책임졌었다.
이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온 한 남자가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은 JTBC 드라마 ‘언더커버’에서 멜로와 액션 연기 모두를 소화하며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멜로의 애틋함부터 거대 세력과의 암투에서 나오는 긴장감 모두를 전달하며 한층 넓어진 스펙트럼을 증명한 것이다.
지진희는 공백기 없이 ‘더 로드: 1의 비극’에 출연한 것에 대해 “힘도 들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컸는데 대본을 보는 순간 끌림이 있었다”며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저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좋은 작품이라면 두려움 없이 뛰어드는 과감함이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계기가 된 셈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가 또 어떤 새로운 캐릭터로 대중들을 놀라게 할지, 다음이 기대되는 배우 지진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