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부모 상대 폭행·상해 범죄 잇따라…피해자들은 법정서 애끓는 선처 호소
연간 존속범죄 피의자 증가세…가족간 유대 약화 및 경기침체 따른 불화 등이 원인
전문가 "엄벌만이 피해회복 목적 부합하는 지 고민…가족공동체 회복 노력 필요"
최근 자식이 고령의 부모를 상대로 폭행을 가하고 상해를 입히는 등 존속 범죄가 사례 잇따르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도리에 어긋난 범죄로 이른바 '패륜범죄'로 불리기도 하지만, 정작 피해를 본 부모들은 법정에서 자식의 선처를 간절히 호소하는 장면이 펼쳐져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서울고법은 지난 26일 변호사인 아버지의 명의로 111억 원을 끌어 썼다가 수십억 원을 갚지 못할 상황에 내몰리자 아버지를 살해하려 한 30대 아들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아들은 차량을 운전해 아버지와 저녁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척하다가 미리 준비한 둔기로 아버지의 머리를 내리쳤다.
아들은 범행 전에 인터넷에서 '후두부 가격', '방망이로 죽이는 법' 등까지 검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법정에서 아들의 선처를 거듭 호소했고 결국 법원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검찰의 항소를 물리치고 원심과 같은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지난 6월에는 60대 아버지를 상습 폭행한 30대 변호사 아들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던 아버지의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치고, 그 다음 달에는 'X발' 등 욕설을 퍼부으며 아버지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배를 걷어차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나무라고 가르치려고만 했지, 생각을 들어주고 사랑으로 감싸주지는 못했다"며 재판부에 여러 차례 선처를 탄원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아버지의 처벌 불원과 더불어 "아들도 이 사건을 계기로 정신과 전문병원에 입원해 집중 치료를 받겠다고 다짐한 점을 참작했다"며 선처 이유를 밝혔다.
지난 4월에는 어머니에게 가혹행위를 1년 이상 가한 아들이 상습특수존속상해와 존속학대 혐의로 서울북부지법에서 재판을 받았다. 아들은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등 각종 이유를 트집 잡아 고령의 어머니에게 앉았다 일어서기, 기마자세, 머리 박기 등을 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법정에서 "아들의 행위에 어머니로서 책임이 있다"며 간절하게 선처를 호소했다. 아버지 역시 "아들의 범행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아들이 가정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법원은 부모의 처벌불원과 아들의 반성하는 태도를 참작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또 대구고법은 지난 6월 술에 취해 불을 질러 70대 노모를 살해하려 한 아들에게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어머니는 1심 재판부터 아들을 용서했다고 호소하고 항소심 재판에서도 처벌불원 의사를 재차 표시하며 석방을 탄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연간 존속 대상 범죄 피의자는 2015년 1911명에서 해마다 꾸준히 증가해 2019년에는 2385명으로 늘어났다. 4년 만에 24.8%나 급증한 것으로,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인한 가족 간 불화 심화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특히 존속 범죄 피해자 중에는 자식 등 가해자가 처벌받을 것을 우려해 피해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적지 않아 알려지지 않은 범죄 사례는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가정폭력이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외부기관이 개입하기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라며 "유교적인 가부장제 등의 영향으로 사법적인 개입을 가능하면 피하려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인륜을 저버린 패륜 범죄들은 가중처벌 하더라도 평등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게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존속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해 일률적인 엄벌 보다는 사건 별로 신중한 양형 검토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부산지법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거나 피고인이 피해 회복에 기여할 때는 형을 줄여주는 것이 양형 원칙"이라며 "피고인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앞으로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경우에도 엄벌을 가하는 것이 과연 피해자 피해 회복 목적에 부합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족 간 유대감이 희미해지는 사회적 분위기와 장기적인 불황이 겹치는 탓에 안타까운 존속 범죄 사례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와 사법기관이 가정 문제에 일일이 개입하는 덴 한계가 있는 만큼, 궁극적으로 가족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