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앨범 '스페이스센터' 9월 4일 발매
밴드 문없는집(효진, 민식, 힘)은 팀명처럼 경계 없는 음악을 추구한다. 펑크와 인디팝, 드림팝 등을 기반으로, 그 위에 문없는집 만의 상상력을 끼얹어 매번 앨범을 만들어낸다. 지난 4일 발매된 새 앨범 ‘스페이스센터’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현재 밴드의 위치를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탐색하는 단계”라고 말한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를 보고 ‘재미’로 만들었다던 ‘스페이스센터’가, 이들의 정식 앨범으로 탄생하는 것처럼 문없는집의 기발한 상상력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문없는집’이라는 이름의 뜻이 정말 좋아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게 된 이름인가요?
효진: 팀명에 대해 소개 할 때마다 ‘경계없이 모두가 오갈 수 있다’는 뜻으로 소개드리기는 하지만, 의미에 비해 사실 꽤나 급박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저희는 학교 축제에 나가기 위해 결성된 밴드였는데, 그러다 보니 축제 신청 마감 기한에 맞추어 이름을 급하게 정해야 했습니다. 어느 여름밤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서 시집을 뒤적거리다가 사다리타기를 한 기억이 납니다. 다른 후보들을 생각하면 문없는집이 우승해서 다행이에요.
민식: 쟁쟁한 후보들로는 ‘선인장에 물을 주지 말자’ ‘말린 무화과’ 등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멤버들은 어떻게 모이게 됐나요?
민식: 저는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에 재학 중인데 중앙 작곡 동아리에서 효진이를 알게 되었어요. 동아리 안에서 팀을 꾸려 커버곡 공연을 준비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 같은 팀이 된 계기로 친해졌습니다. 힘이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축제가 끝난 이후 연말 공연을 준비하던 중 원래 드러머였던 후배의 급작스러운 사정으로 대타를 부탁했다가 이후 정식 멤버가 되었어요.
힘: 그렇습니다. 저는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민식이와 고등학교 친구여서 우연히 연락을 받고 함께 하게 되었어요.
-각자 자라온 환경이 천차만별일 것 같은데요.
효진: 종종 이야기하던 일화는 저의 어둠의(?) 중학생 시절입니다. 저는 성실하고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즈음부터 한국 인디 음악에 빠져서 눈을 감고 노래를 들으면서 가보지도 않은 오래된 골목을 거니는 상상을 자주 했어요. 학교가 끝나고 집에서 긴 오후를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심심풀이로 그림을 그리거나, 일기나 소설을 쓰거나, 어설픈 기타실력으로 작곡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쓴 곡은 들려주지도 못할 정도이고, 악보도 엉터리입니다. 당시 일기장에는 ‘아무도 듣지 않더라도 매주 금요일 조명아래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섬뜩한 말이 적혀있네요. 하하.
민식: 음악의 길을 걷는다는 말이 주는 이미지처럼 뭔가 멋진 계기나 각오가 있지는 않았지만, 저는 중학교 때 밴드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같이 거의 매일 점심시간이나 방과후마다 합주를 한다거나 서로 만든 습작들을 들려주면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놀았던 것 같아요. 그 재미에 맛이 들려서 계속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악 활동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힘: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음악과 악기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초등학교 음악 교사이다 보니 집에 정말 다양한 약기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과 합주하고, 또 가족과 함께 합주를 하고 음악을 듣는 것이 저에겐 어색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정말 언제나 음악이 함께 했던 삶이라고 할까요(웃음).
-팀에서 멤버들 각각의 역할은 어떻게 될까요? 악기 포지션 외적으로요.
효진: 그런 역할에 대해 생각해본 건 저희도 지금이 처음이네요! 저는 팀에서 민식이와 함께 수뇌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고, 앨범커버 등 약간의 비주얼적인 부분을 담당합니다. 어쩐지 사무적이네요.
민식: 저는 문없는집에서 가끔 비실한 몸을 무기로 한 슬랩스틱으로 웃음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 상황 때문에 대면으로 만날 기회가 적어져서 아쉽네요. 일적으로는 오디오 엔지니어링 전반과 연락 업무 등을 맡고 있습니다.
힘: 저는 운전을 잘 합니다. 베스트 드라이버죠. 정작 잘 해야 할 드럼보다는 운전에 더 자신 있는 편이에요.
-각자 멤버들에 대한 생각도 들려주세요. 멤버들은 나에게 있어 어떤 존재다!
효진: 각별한 존재는 아니고 그저 그런 친구들입니다. 하하. 이렇게 말하면 서운해 하겠죠? 사실 젊은 날의 소중한 경험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그리고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정말 고마운 존재들이에요.
민식: 소중한 친구들이자 동업자죠. 그런데 친구와는 동업을 하지 말라고 하던데…(웃음).
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이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즐겁고 뜨거운 추억들은 없었을 거예요.
-2019년 ‘해피해피해피라이프’는 밴드의 첫 앨범이죠.
효진: (지금은 사라졌지만)당시 네이버 뮤직 뮤지션리그 앨범 발매 프로젝트에서 당선되어 제작한 앨범이니만큼, 주변에 감사한 마음이 제일 컸어요. 발매 당시 저는 공원에 있었는데 막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설레기도 했지만 멤버들이 모두 군대에 있었고 그 기쁨을 메신저로밖에 나눌 수 없어서 안타깝기도 했어요.
민식: 너무 신기한 동시에 ‘이제야 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앨범이었는데 생각보다 반응도 좋아서 흥분됐었고 빨리 저희 EP 전체를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죠.
힘: 유감스럽게 저는 이 첫 앨범은 한 명의 팬으로서 접했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전에 공연에는 참여했지만, 곡 작업과 앨범 제작 당시에는 팀원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이런 멋진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당시 제가 군대에 있던 것 같은데, 제 동기들에게 실컷 자랑을 했던 것 같아요
-음악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나요?
효진: 사실 슬럼프는 최근에 왔어요. 지금은 빠져나오려 노력하는 중이에요. 작년 하반기에 멤버들의 전역 이후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자 속도를 내서 두 번째 EP앨범을 빠르게 작업했거든요. 각자의 개인 스케줄과 문없는집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는데 저와 민식이가 무리해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모두 조금씩 지쳐있었고, 멤버 소윤이는 여러 공연과 활동을 할 만큼의 여력이 되지 않아서 지난 겨울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마무리하기로 했어요. 지금은 열심히 졸업을 향해 달려가는 중입니다.
민식: 요즘은 멤버들 모두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편안한 상태를 찾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잘 이겨낸 덕분에 지난 4일 새 앨범 ‘스페이스센터’도 발매된 거겠죠? 앨범 소개 부탁드려요.
효진: 네! 아주 오래전에 탄생했지만, 방치와 숙성 단계를 거쳐 2년 만에 세상에 나온 싱글이에요. 우주의 한가운데에서 영원의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스페이스센터’라는 곡을 쓰게 된 동기나 모티브가 된 사건이 있었나요?
민식: 이 곡은 2019년에 군인이었던 제가 휴가를 나가서 ‘애드 아스트라’라는 영화를 보고 만들기 시작했는데, 보통 우주영화에서 다루는 우주는 거대하고 불가사의하며 압도적인 힘을 가진 자연으로 묘사되는 반면 이 영화가 바라보는 우주는 고요하고 쓸쓸한 동시에 그리운 장소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 그에게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 영화이고 돌아가는 길이 곧 우주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스펙타클하고 경이로운 동시에 그리운 장소, 우주’라는 심상이 각인이 되었고 이 이미지를 가지고 트랙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문없는집 노래로 생각하고 쓴 것은 아니었고 그냥 재미로 만든 다음 멤버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톡방에 올렸는데 신기하게도 반응이 좋아서 채택이 된 곡입니다.
효진: 민식이가 쓴 곡을 듣고 너무 좋아서 마음속에 저장해두고 있다가, 몇 달 뒤에 가사와 멜로디를 붙였습니다. 가사는 제가 예전에 써 두었던 메모에서 출발했어요. ‘영원의 시간은 없다. 다만 그에 대한 기다림은 있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인데요. 웃기게도 지구의 역사에 대한 과학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머릿속에 남은 한 줄의 문장입니다. ‘내가 만일 수많은 이들을 떠나보내며 영겁의 시간을 지나온다면 결국 모든 것이 멈추어 영원히 지속될 시간을 원할 테지만, 그런 시간은 존재하지 않겠지? 다만 그에 대한 기다림으로 살아갈 거야’라는 생각을 풀었어요. SF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가사에 있어서는 인간으로서의 기다림, 고독에 대한 내용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곡과 함께 애니메이션도 제작했다고요?
민식: 음악적으로는 우주를 연상시키면서도 아련한 느낌이 들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편곡과 믹스 단계에서 이런 느낌을 증폭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노래에는 꼭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친한 친구에게 애니메이션 제작을 부탁했습니다. 뮤직비디오에 저희가 생각한 곡의 심상과 정서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니 아직 안 보신 분들께서는 꼭 확인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효진: 제가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부분 역시 뮤직비디오입니다. 뮤직비디오 작가님께서 장장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애써주신 만큼 정말 뭉클하고 사랑스러운 뮤직비디오가 나온 것 같아요.
-작업 과정에서 특별히 기억이 나는 순간이 있나요?
민식: 처음 효진이가 이 노래에 탑라인 멜로디와 가사를 붙여서 보내줬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제가 트랙을 보내면서 부연설명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닌데 마치 제가 어떤 영화를 보고 와서 무엇을 느끼고 이 곡을 만들었는지 다 꿰뚫어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효진: 이번 앨범은 이미 예전에 곡이 완성되어 있던 만큼 특별히 힘이 들지는 않았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점은 이 곡에서 만큼은 민식이와 저의 의견충돌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신스팝에 도전했는데요. 어땠나요?
민식: 전작인 ‘밝은 미래’에서부터 시작된 사운드에 대한 고민이 크게 반영된 곡입니다. 이 노래의 특징은 진행이 될 수록 요소가 점점 더 많아지다가 후주에서는 거의 노이즈에 가깝게 들릴 정도로 많은 소리가 들어간다는 점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코스믹 슈게이징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어요.
효진: 저도 음악적인 색깔에서 이전과 가장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매번 다른 노래를 들고 오기는 했지만, 신스팝의 색깔을 짙게 풍기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문없는집’이라는 팀명처럼, 경계 없는 음악을 추구한다고 하셨는데 그 시도 중 하나인 것 같네요. 앞으로의 음악도 기대돼요.
효진: 민식이는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저는 앞으로는 완전 이상한 노래도 해보고 싶어요. 클리셰와 장난을 뒤섞은 노래요.
민식: 저는 저희가 아직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적 스타일을 탐색해보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으로는 기존에 보여드린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깊이를 더욱 쌓는 단계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미발매 데모곡들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한동안은 전자에 머물러 있을 것 같아요.
-여러 장르를 시도한다는 것이, 다양성 면에서는 분명 긍정적이지만 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효진: 맞아요. 저희를 소개할 때마다 늘 하는 고민이에요. ‘OO하는 밴드 문없는집입니다’라고 간결하게 소개하고 싶지만, 그리 간결하게 묘사되지 않는 것이요. 그래도 계속 써내려가다 보면 저희만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다는 희미한 믿음이 있습니다.
민식: 저는 일단은 최대한 다양한 음악을 시도해보고, 그러다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저희의 색깔이라고 할지 한계라고 할지 하는 무언가가 묻어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저희의 곧 정체성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번 앨범을 어떤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으신가요?
효진: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져 자신만의 우주를 여행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꼭 들어보아야 할 노래’ 입니다.
민식: 그리운 우주의 향수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힘: 문득 아늑하고 포근한 기분을 느끼고 싶은 분들께서 들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앨범 커버 작업도 손수 제작한 건가요?
효진: 사실 전공이 미술이다 보니 앨범을 처음 준비하던 때에 별 생각 없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면 굳이 다른 곳에 맡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후로도 계속 그렇게 했고요. 이번 앨범 커버는 사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을 따온 것입니다. 뮤직비디오에 큰 감동을 받아서 그 주인공을 떨어지는 작은 별처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인디 밴드로 활동함에 있어서 경제적, 환경적으로 어려움도 있나요?
효진: 저 스스로를 포함해서 주변에서도 정말 많이 들어본 고민이에요. 미술을 전공한 친구들이 많아서요. 그런데 저는 ‘그럼에도, 음악을 한다’라고 비장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음악도 해야지’하고 욕심쟁이처럼 외칩니다. 최근 들어 삶의 모토가 단순해졌어요. ‘뭐가 됐든 재밌는 걸 하고 살자’예요. 사람이 평생 한 가지 직업만 갖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비롯한 모든 재밌는 일들을 하며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민식: 직접 부딪혀가면서, 또는 주변 음악인 분들로부터 도움이나 조언을 받아 가면서 어떻게 하면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감에 있어 돈과 시간이라는 두 가지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계속 모색하고 있어요. 마치 최적화 문제를 풀듯이 공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군요. 결과적으로 확실히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는 점점 더 지속 가능한 순환 구조를 찾아가는 것 같아요. 음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한다면, 거창한 대의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재미가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는 그 재미에 중독됐다고 할 수 있어요.
-문없는집의 최종 목표는요?
효진: 최종 목표라고 하니 끝을 정해두는 것 같아서 쉽게 답하기가 어렵네요. 대신 저의 작은 목표를 말씀 드리자면 일단 가볍게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하는 것 정도입니다. 하하.
민식: 저도 최종 목표를 정하게 되면 그것을 이뤄도, 못 이뤄도 헛헛할 것 같아서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중에 문없는집 활동을 돌아봤을 때 즐겁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지금으로서는 꾸준히, 조금 더 빠른 페이스로 발매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힘: “그래도 즐거웠다”는 말을 남기며 마무리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어떤 상이나, 무대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