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극의 전개가 재미있어서도 보고 마음 가는 캐릭터를 응원하면서도 본다. 당연히 평소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면 그이를 보는 즐거움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건지 배우를 사랑하게 된 건지 헷갈릴 만큼 캐릭터와 하나 된 배우, 배우의 몸을 빌려 탄생한 캐릭터에 흠뻑 빠져 봤다. “아우, 미치겠다, 정말” “진짜 미치겠다, 너희 때문에”를 연발했다. 캐릭터 김래완과 한은성, 배우 이유영과 김선호가 사랑스러워 미치는 줄 알았다.
지난 2018년 5월 MBC를 통해 방영됐고, 현재 왓챠와 해당 드라마 홈페이지(다시보기 무료)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 ‘미치겠다, 너땜에!’(기획 강대선, 극본 박미령, 연출 현솔잎) 얘기다.
프리랜서 프랑스어 통역사 한은성 역의 이유영. 그가 연기 잘하고 열정이 넘치는 거야 지난 2014년 배우 김서형과 함께한 영화 ‘봄’을 통해 익히 확인됐다. 절제된 연기와 풍부한 감성을 동시에 발산한 연기파 김서형과 절묘하게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고 하모니를 이루며 평단을 놀라게 했다. 배우 이유영은 ‘봄’으로 밀라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김서형은 마드리드국제영화제 외국어영화 부문 여우주연상), 국내에서도 신인여우상을 복수로 거머쥐었다. 이후 다수의 영화에서 신비로운 눈빛과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런데 뭔가 샤프란 향이 흩날리는 베일 뒤에 서 있는 느낌이 있었다. 아련하게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 같은 아우라가 매력이다. 드라마 ‘미치겠어, 너땜에!’로 신비주의를 확 날렸다. 성큼 다가와 우리 곁에 살굿빛 연인으로, 털털한 친구로 섰다. 신비로움을 잃었다는 게 아니라 좀 더 대중 배우로서 힘을 키운 느낌이고, 평범함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확인시켰다.
관람평 중에 어느 시청자분이 드라마에서 한은성이 따던 살구를 상기시키며 “이유영이 살구의 환생인 줄 이번에 알았다”는 내용을 쓰셨는데, 너무나 정확해서 깊이 공감했다. 태양을 닮았지만 은은한 빛깔의 살구, 그리 달지도 엄청 시지도 않지만 아주 적절하게 어우러진 달콤새콤한 맛. 딱 배우 이유영이 보여주는 연기의 빛과 맛이다.
‘미치겠어, 너땜에!’의 한은성, 그를 연기하는 이유영을 보노라면 여자 캐릭터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있는지 극치를 만난다. 별로 꾸미지도 않고 술 먹고 온갖 주사를 부리고 제멋대로여도, 아니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특히 술 취한 연기, 그러다 뜻하지 않게 8년 묵은 남자사람친구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장면의 연기는 압권이다.
ㅈ
바로 그 8년 묵은 남자사람친구로 은성의 모든 ‘만행’을 다 받아주고 불쑥 찾아와도 밥상 차려주는 김래완 역은 배우 김선호가 연기했다. 그가 연기 잘하고 요즘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캐릭터 소화력이 출중해서 카사노바를 연기하든(연극 ‘뉴보잉보잉’), 오만한 재벌이 되든(드라마 ‘최강배달꾼’), 사람 마음을 홀리는 사기꾼을 맡든(드라마 ‘투깝스’) 다 잘했다.
특히나 신생 벤처에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투자회사 수석팀장을 연기한 드라마 ‘스타트업’은 대한민국 여심을 사로잡았다. 투덜거리면서도 음으로 양으로 전부 도와주는, 그러고도 별다른 실속 없는 ‘키다리 아저씨’ 한지평의 마음을 받아주고 싶은 팬들이 넘쳐났다. 곁에 두다가 애인 삼고 남편 삼고 싶은 딱 그런 남자였다.
‘미치겠어, 너땜에!’의 김래완은 한지평이 되기 전, 김선호의 첫 드라마 주연작이다. 16부작 이상의 미니시리즈 주연을 하기에 앞서 일종의 주연 깜냥 테스트를 받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전 과목 A+로 수석 합격하는 매력을 내뿜고 탄탄한 기본기를 확인시켰다. 주연배우의 자질로 연기력은 기본, 매력 지수가 떨어지면 결코 큰 작품을 맡길 수 없는데 바닥을 모르는 ‘화수분’ 같은 매력을 발산했다.
‘래사노바’(래완+카사노바)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썸과 연애 경험 다양한 화가 김래원인 만큼 예쁜 여자만 보면 추파를 던지는 가벼움을 날리면서도. 동시에 은성을 향한 순정을 고백하는 순간 우리 모두 그의 과거를 새까맣게 잊고 ‘지상 최고의 순정남’으로 바로 인정하게 해야 하는 역할이 맡겨졌다. 결코 쉬울 수 없는 역할을 김선호가 해냈다. 요리도 잘해, 말도 예쁘게 해, 막무가내 청도 다 받아줘 ‘스펀지’ 같은 김래완이 김선호에 의해 탄생했다. 그의 별명이 왜 ‘설렘 인간’ ‘보조개 왕자’인지 알 수 있는 연기다.
둘 중 한 캐릭터, 한 명의 배우만 좋아해도 시간이 ‘순삭’(순식간에 삭제) 지나갈 드라마인데 두 배우가 함께 나오고 두 캐릭터가 ‘꽁냥꽁냥’ 사랑을 한다. 내 연애도 아닌데 즐겁고 내 애인도 아닌데 설렌다, 김선호와 이유영 누구를 바라봐도 그렇다.
두 배우의 출중한 연기력만으로도 가능한 일이 아니고, 박미령 작가가 쓰고 현솔잎 감독이 연출로 몰았다고 가능한 결과도 아니다. 두 배우가 지닌, 타고난 것에 더해 오랜 시간 배우로서 갈고닦은 매력이 큰일을 했다. 연기력을 높이는 일보다 어려운 게 매력을 계발하고 내면화 하는 작업이다. 이유영, 김선호 두 배우가 잘해온 덕을 우리가 보는 게 드라마 ‘미치겠다, 너땜에!’이다. 어찌나 깨물어 주고 싶게 매력적인지, 미치겠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