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연계된 사회·경제 정책
집권 초, 시장 역할 용인
일부 사회 서비스까지 시장화
8차 당대회 이후 통제 강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 후 10년간 펼쳐온 사회·경제 정책은 상호 연계된 흐름을 보였다. 집권 초에는 자율성을 상당 부분 인정했지만, 비핵화 협상 결렬 이후로는 통제 강화로 완전히 돌아선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집권 초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 영향력 하에 상대적으로 유연한 사회·경제 정책을 폈다. 북한 정권이 사회적 안전망을 충분히 제공하기 어려운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고 시장의 기능을 묵인했다는 평가다.
정은미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김정일 정권의 선군 노선 영향으로 북한 주민 생활 여건이 피폐해졌다"며 김정은 위원장 집권 당시 북한 사회·경제 구조는 시장에 사실상 모든 것을 맡긴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정 연구위원은 북한의 시장화와 복지 '탈국가화'가 맞물려 진행됐다며 "일부 사회 복지 서비스가 상품화·시장화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도 했다. 실제로 북한에선 △사교육 △부동산 거래 △약품 개별 구매 △가사 도우미 고용 등이 일상화 돼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지난해 평양을 떠나 본국에서 업무를 수행 중인 콜린 크룩스 북한 주재 영국대사는 북한의 시장화를 피부로 느꼈다고도 했다. 크룩스 대사는 지난 2008년 평양에서 부대사로 일한 바 있으며, 지난 2018년부터 현재까지는 대사직을 맡고 있다.
그는 10년 사이 변화한 평양의 모습을 언급하며 "상업 활동이 굉장히 많아졌다. 김정은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北美협상 결렬 후 통제 강화
인민대중제일주의 '방법론' 평가도
김정은 시대 들어 가속화된 시장화 흐름은 북미 핵협상 결렬 이후 통제기조로 완전히 선회한 상황이다.
북한은 올해 초 제8차 노동당대회를 통해 자력갱생·자급자족을 중장기 전략으로 제시하며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 척결을 주요 사업으로 선정했다. 경제 분야에서 △비공식 부문(장마당·특수경제) 철폐 △재자원화(재활용) △수입병 척결을 강조하고 있다면, 사회 분야에선 청년을 대상으로 한 사상·교양 사업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정 연구위원은 "8차 당대회 이후 여러 정치 행사를 통해 청년 세대들의 문제가 굉장히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며 "결국 자력갱생 노선을 위해 내부 자원과 노동력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데 있어 청년들을 최전선에 내세우는 체제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통제 중심의 사회·경제 정책이 김 위원장이 강조해온 '인민대중제일주의'의 '방법론' 성격을 띤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일한 동국대학교 DMZ평화센터 연구위원은 "8차 당대회 이후 북한이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북한 연구자들이 다 동의하는 부분"이라면서도 "북측이 8차 당대회 기본 정신을 '내부의 정리정돈'이라고 했다. (통제의) 최종 목표를 인민대중제일주의라고 이야기하면 논리적인 체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경제 시스템의 중앙 통제를 강화해 재정 확대를 꾀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권 차원의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취지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규율을 책임지는 당 중앙검사위원 전원이 당 중앙위위원회 중앙위원이 됐다는 점 △우리의 장관급 인사에 해당하는 내각 구성원 전원이 당 중앙위 중앙위원 및 후보위원으로 발탁됐다는 점 등을 언급하며 "통제와 내각 권한 강화를 토대로 (중앙)집권화를 이뤄 재정을 확대하고, 확대된 재정을 통해 인민적 시책을 확대하겠다는 게 인민대중제일주의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분명한 의도를 진단할 수 있어야 평가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당성 문제를 떠나 북에서 실제로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특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데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최근 힘을 싣는 통제 중심 경제·사회 정책의 성공 가능성 등을 따지기 전에 어떤 맥락에서 관련 정책이 도입됐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경제 전문가들, 회의적 시각 제기
"위에 정책 있으면 아래엔 대책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통제 정책이 내포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국가 재정에 역효과를 낼 수 있는 데다, 시장화를 맛본 북한 주민들이 온전히 순응할 가능성도 낮다는 관측이다.
이종규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지방 정부 예산 상당 부분은 장마당에서 나오는 장세 등 비공식 부문에서 나온다"며 "재정확충을 위한 (통제)조치들이 역으로 재정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은 "북한 상황이 달라졌다"며 "위에서 정책을 편다고 결코 그대로 실행되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이 항상 하는 말이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들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향후 관찰 포인트"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