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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 물어보니 ⑩] "문재인 공산주의자·간첩" 무죄인데, 대자보는 유죄?


입력 2021.09.24 05:30 수정 2021.09.23 22:05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대학에 文대통령 규탄 대자보 붙인 20대…1심서 '건조물침입' 혐의 벌금형

법조계 "文대통령 직접 고소·고발 못하니 건조물침입죄 편법…표현의 자유 침해"

"전두환 시절에도 대자보 부착 처벌 받지 않아…명백한 자유민주주의 역행"

대법 "대통령, 비판 감수하고 해명으로 극복해야…공적 존재의 검증, 더욱 자유로워야"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대통령을 겨냥한 비판은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사법부 판단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명예훼손 혐의 대신 건조물침입죄 혐의를 적용해 피고인을 처벌한 사례가 등장하면서 집요하고 악의적인 편법으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3단독 홍성욱 부장판사는 지난 6월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대학 건물 내에 붙인 혐의(건조물 침입)로 기소된 김 모(25)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당초 검찰은 벌금 100만원에 약식 기소했으나 김씨는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법원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11월 단국대 천안캠퍼스 건물 내부 등 4곳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당시 김씨가 붙인 대자보에는 '나(시진핑)의 충견 문재앙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연동형 비례제를 통과시키고 총선에서 승리한 후 미군을 철수시켜 완벽한 중국의 식민지가 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칠 것'이라고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씨에게 건조물 침입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단국대 측은 김씨가 학교의 의사에 반해 불법으로 침입한 것이 아닌 만큼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달 했지만, 경찰은 끝내 김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이어진 공판에서도 단국대 관계자는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 "이 사건이 과연 재판까지 와야 할 문제인지 의문이 든다"며 처벌불원 입장을 거듭 밝혔으나, 법원은 벌금형을 선고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대자보.ⓒ전대협

김씨는 "건조물침입죄는 핑계일 뿐, 대통령을 비판한 죄를 끝까지 묻겠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항소의 뜻을 밝혔다. 아울러 김씨의 변호인은 "건조물 침입죄는 주거의 평온을 해칠때 성립하는데 검찰이 피해자로 지목한 단국대 측이 '피해본 것이 없다'고 밝히고 처벌을 불원하는 만큼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법조계 전문가들도 김씨 측 주장이 타당하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지법 부장판사 출신 김태규 변호사는 "누구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인 대학 캠퍼스에 들어간 행위가 '침입'에 해당하는지 기준이 불분명한데다, 지식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교는 비판의 자유가 얼마든지 허용되는 곳"이라면서 "김씨 사건은 기소유예나 선고유예 여지가 충분히 있었는데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도 대자보 부착으로 처벌 받은 사례가 없었고, 현 정부 인사 다수도 과거 학생운동의 일환으로 대자보를 붙였던 자들"이라며 "오늘날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고 건조물침입죄로 처벌하는 것은 명백한 자유민주주의 역행이다"고 덧붙였다.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인 고영주 변호사는 "문 대통령이 직접 고소·고발을 할 수가 없으니 친고죄가 아닌 건조물침입죄가 적용되도록 편법을 쓴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하면서 "특정인을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로 압박하는 행위도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례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른 대자보는 건조물침입죄를 적용해 처벌하지 않으면서 유독 대통령을 비판한 대자보만 콕 집어 건조물침입죄를 적용해 처벌한 것은 헌법상 평등권의 일부인 '형평의 원리'를 심각하게 위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설령 김씨가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더라도 대법원에 가게 되면 무죄를 선고 받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16일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등 발언을 해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고영주 변호사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대통령과 같은 공적 인물의 경우 비판과 의혹 제기를 감수해야 하고, 그에 대한 해명과 재반박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며 판결 이유를 밝혔다.


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는 "문재인 대통령은 간첩" 등의 발언을 해 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에게 지난해 12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검증은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더욱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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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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