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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is프리①] ‘배신자’ 낙인은 옛말…‘프리’한 그들의 세계


입력 2021.12.09 14:36 수정 2021.12.10 09:51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수입·방송 환경 급변·인식 변화 등 복합적 작용

방송사 아나운서 관리 시스템 변화 필요

SBS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전·현직 아나운서들로 이뤄진 FC아나콘다의 멤버로 합류한 주시은 아나운서는 지난달 3일 방송에서 상대 팀에 패배해 눈물을 흘렸다. 그를 달래던 선배 아나운서들은 “내일 새벽 4시 50분에 출근해야 하는데 울지마”라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SBS

방송 이후 주시은 아나운서가 과중한 업무에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스스로가 바랐던 출연이라 하더라도 주시은 아나운서에게 주어진 업무 강도는 매우 높았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조만간 프리 선언할 듯”이란 반응이 잇따라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현재 그는 ‘SBS 8 뉴스’의 주말 앵커이면서, 매주 화요일 오전 1시 방송하는 스포츠 프로그램 '스포츠 투나잇' 진행도 맡고 있다. 또한 팟캐스트 ‘축구쑥덕 SBS’와 라디오 ‘김영철의 파워FM’ 수요일 코너에도 고정 출연 중이다. 여기에 ‘골 때리는 그녀’ 출연과 방송엔 나오지 않는 축구연습 시간도 내야 한다.


혹자는 아나운서가 많은 월급과 복지를 받고 있는 ‘꿀직장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직 아나운서 A씨는 “일반 직장인들보다는 월급이 많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우리 역시 방송사의 직원이기 때문에 같은 방송에 출연해도 다른 출연진과는 비교하기 힘든 출연료를 받게 된다. 업무의 강도에 견주었을 때 결코 많은 월급이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JTBC 아나운서로 활동했던 장성규가 프리랜서로 전향한 이유로 “부모님의 빚을 갚기 위함”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방송국 아나운서로 있으면 월급밖에 받지 못해 빚을 갚는 것이 힘들어서 조금이라도 젊고 힘이 남아있을 때 바짝 벌자는 마음으로 프리 선언을 했다”고 밝혔다.


실제 장성규는 프리로 전향한 시기인 2019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직장 생활을 8년간 해온 자신의 통장 잔고를 밝힌 바 있다. 그는 “8년간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도 모은 돈이 1억5000만 원 밖에 되지 않았다”면서 “이 돈으로는 아파트 3평짜리도 겨우 살까 말까 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프리 선언 이후 출연했던 JTBC ‘한끼줍쇼’에서 그는 수입이 15배 이상 늘었다고 밝히며 놀라움을 자아냈다.


물론 시청자로부터 높은 대중성과 인기를 얻고 있는 스타 아나운서들의 ‘프리랜서 바람’은 금전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수입과 함께 방송환경의 급변, 방송사내 아나운서의 역할 축소와 정체성 혼란, 연예기획사의 아나운서 MC 영입 급증, 조직생활보다 자유스러운 활동 등 아나운서를 둘러싼 인식과 환경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다.


ⓒMBC

스타 아나운서들의 프리랜서 선언은 1997년 정은아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이뤄졌고, 2000년대 들어 스타 아나운서를 중심으로 탈방송사행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그 속도가 더 가속화되고 있는 추세다. 짧게는 1년 만에 프리 선언을 하는 아나운서들도 있다. 과거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던 것과 달리, 최근엔 아나운서들의 프리랜서 선언을 ‘새로운 도전’에 초점을 맞추면서 긍정적인 시선이 우세하다.


특히 이런 최근의 움직임에는 유튜브 등 플랫폼의 다양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그만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무궁무진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아나운서 지망생들은 애초에 유튜브나 틱톡 등을 통해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미리 팬덤을 구축하면서 다방면으로 활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놓기도 한다.


때문에 방송사에서는 기존 방송사의 정직원이 아닌, 프리랜서나 비정규직 형태의 아나운서를 고용하기도 한다. 대체로 지역 지상파나 케이블 등이 주로 80~90%가량 넘게 프리랜서와 계약직 등의 형태로 아나운서를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정규직 아닌 형태로 채용해 놓고 회사는 아나운서들을 종속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매체 다변화에 따른 트렌드에 맞춘 채용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아나운서와 시청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방송사의 잇속을 챙기기 위함이다. 결국 이들은 회사의 시스템에 반발하며 퇴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수많은 아나운서들이 탈방송사행이 이어지면서 방송사의 아나운서 관리 시스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송 관계자 A씨는 “방송 환경이나 대중의 인식은 계속해서 변화하는데 방송사의 관리 시스템은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 수준”이라며 “아나운서들에게도 취향과 적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영리하게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로 예능 프로그램을 원하는 아나운서들이 많이 있고, 예능에서도 현재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들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곧 아나운서들이 예능에서 할 수 있는 롤이 있다는 것이 아니겠나”라며 “무작정 혹사를 시키는 것이 아닌, 성과급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등 합리적 보상체계만 마련하더라도 고급인력들이 프리선언을 하지 않고 내부에서 ‘프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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