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우선 가족 신변안전조치 강제조항 아냐…피해자들, 가족들 널리 알려지는 것 원치 않아"
"이번 가해자, 임의동행 응하고 조사 협조해 다가올 위험 예측·긴급성 인지 못했고 인권침해도 우려"
"피해자가 주의하는 방어 아닌 가해자 추적·감시해야…현장충실 인력 위한 동기부여 필요"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서 20대 이모씨가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의 집에 침입해 어머니를 살해하고 13살 남동생을 중태에 빠뜨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변보호 제도의 무기력함을 비판하는 여론이 거센 가운데 전문가들은 다가올 위험을 예측 못한 경찰의 무능한 현장 판단 및 대응을 비판하면서, 제도의 변화는 수동적인 피해자 보호가 아닌 가해자 감시 체제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 6월 제정된 경찰청 훈령 '성폭력범죄의 수사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의 12조 (신변안전조치) 항목 1항에는 보복 우려 등이 있는 경우 신변보호 당사자의 가족이나 주변인들도 관리 대상이 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신변안전조치의 종류로는 일정 기간 특정시설에서의 보호, 일정 기간의 신변경호, 참고인 또는 증인으로 출석·귀가 시 동행 등이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아버지가 경찰에 “딸이 감금된 것 같다”고 신고했었다. 하지만 출동했던 경찰은 당시 이씨가 임의동행에 응하고 휴대전화도 임의제출한 점 등을 이유로 이씨를 체포하지 않았고, 첫 신고 접수 당시 신병조차 확보하지 않았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우선 경찰이 가족에 대한 보호를 요청하는 신변안전조치가 강제조항이 아니고 성폭력 범죄자들이 피해자의 신변을 찾아낼 때가 많기 때문에 가족들이 널리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점 등에서 신변보호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아울러 잘못하면 2차 가해가 될 수 있기에 성폭력범죄 피해자 보호에 있서서는 신중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교수는 "경찰관이 현장에서 판단할 때 긴급성이 중요한데 현행범도 아니기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수 있다"며 "임의동행에 응하고 조사도 협조해 다가올 위험을 예측하지 못했고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내는 등 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긴급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자칫 지나친 대응으로 인권침해 등의 소지를 남기는 부분도 고려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매뉴얼은 상당히 잘 돼있지만 현장 판단 따로, 매뉴얼 따로가 비극을 불러왔다"며 "강력하게 24시간 신변보호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닌 단순 스마트워치 제공, 순찰 몇 번 돌기로 신변보호에 대한 허구가 드러난 셈"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신변보호제도의 전반적인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며 "피해자가 주의하는 신변보호가 아닌 가해자를 추적관리하고 감시감독해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시키는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윤호 교수는 "현재의 신변보호제도는 스마트워치를 부착하는 등 피해자가 주의하는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수동적인 방법으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얼마든지 접근할 위험이 있다"며 "접근했을 때 스마트워치를 사용해도 상황은 끝났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웅혁 교수는 "현재 발생하는 사안과 관련해 경찰 지휘부가 분석을 하고 교육 시스템부터 인사관리, 현장에 대한 대대적인 개조가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현장에 충실한 인력을 위한 동기부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13일 김창룡 경찰청장은 이번 사건으로 피살된 피해자 가족에게 안타까움을 표하며 법 제도와 인력, 예산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검토되고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찰인력을 늘려 배가 된다 해도 모든 피해자와 그 가족들 신변보호를 24시간 365일 할 수 있는 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인력충원으로 쉽게 해결될 방안이 아니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