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윤석열, 지키는 야구 하려다가는 진다


입력 2022.02.03 07:01 수정 2022.02.03 07:34        데스크 (desk@dailian.co.kr)

양자토론 집착과 메모 사용 주장은 윤석열답지 않은 패착

안철수 버티더라도 편안한 승리, 정권교체 위해 손 먼저 내밀어야

국민들 이미 알 건 다 알아…4자토론에선 맏형 이미지에 역점 둘 필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정치 분야 공약을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윤석열이 대세론을 굳혀가는 길목에서 쓸데없는 돌부리를 하나 걷어찼다.


2월 전반은 공식 선거 운동이 시작되기 1~2주 전, 보수 제1야당 대통령 후보인 그가 여기서 앞으로 더 치고 나가면 결승선까지 선두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2위와의 폭이 약간이라도 좁혀지기 시작하면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돌부리에 또 걸리면 엎어진다.


설 전날 저녁으로 예정됐던 집권당 후보 이재명과 양자토론을 지엽적인 문제로 날려버린 건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그걸 받았다면 李 측에서 또 다른 조건을 내세워 유리할 게 없는 양자토론을 끝내 결렬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자료 지참에 관한 한, 윤석열답지 않은 사소한 조건에 집착한 패착(敗着)이었다.


법원이 불법이라고 판결한 여론조사 지지율 1, 2위 두 후보만의 토론을 고집한 것부터 명쾌하게 납득이 되지 않은 일이었다. 방송 중계 없는 양자토론을 역제안한 윤석열은 그 이유를 ‘국민들의 관심이 가장 큰 후보들이니까’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대다수 유권자들은 명절 밥상에 반찬들이 거하게 차려지는 걸 바라지 좋아하는 고기와 찌개 딱 두 가지만 나오는 걸 더 원하진 않는다. 여론조사 지지율 하위 후보들을 제외시켜버리는 공정성 위반도 그렇고 편식 상차림도 마땅치 않은 것이다.


윤석열 측은 시청자들의 이런 입맛을 제대로 못 알아본 데 그치지 않고 소모적인 협상 결렬로 구경거리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기초 자료까지 지참을 막는 건 과거 대선 토론회 관례와 선거법 규정에도 반하는 민주당 측의 생떼임이 분명했다. 또 ‘객관적인 검증과 수준 높은 토론’을 위해 메모는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尹 측에게 ‘커닝 페이퍼 사용’이라고 비난한 것도 이재명다운 유치하면서도 야비한 책임 떠넘기기였다. 그러나.……. 그것 포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문제였던가?


이재명은 메모 없이도, 특수부 검사 출신 윤석열이 추궁하고 ‘취조’할만한 의혹과 과거 및 현재 문제들이 천문학적으로 많은 후보다. 일일이 숫자와 시기를 열거할 필요도 없다. 그 자료 읽다간 주어진 시간 다 쓰게 된다. 대장동 사태만 해도 1시간은 족히 지나갈 텐데, 대장동 판박이인 성남 FC 후원금 관련 제3자 뇌물 의혹 사건은 대장동의 최소 7배 시간이 필요하다. 관련 사업체가 6개인 데다 성남지청과 대검의 수사 무마 의혹까지 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李 후보 부인 ‘혜경궁 김씨’ 김혜경이 경기도청 7급 남성 공무원을 속옷 정리 포함 본인과 집안일 심부름꾼으로 부리고, 그 쇼핑 비용을 도청 카드로 썼다는 특급 메뉴도 따끈따끈하게 올라와 있다. 여기에 전과4범, 형수 쌍욕, 아버지 직업이 그때그때 다른 거짓말, 공약과 중요 발언 하루 전 말 바꾸기 등등 시청자들이 이재명의 대응을 보고 싶어 하는 기존 메뉴들 또한 무궁무진하다.


윤석열은 이 엄청난 황금 어장에서, 어구(漁具)를 제한하면 고기를 안 잡겠다는 식으로 철수해버린 셈이다. 언론에 보도된 협상 결렬 이유가 맞는다면, 윤석열은 메모가 있어야만 상대에게 제대로 질문할 수 있는 후보란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그는 서울법대를 나온 암기력 뛰어난 사람이다. 다툴 필요가 없는 문제로 다툰 이 협상의 이면에는 분명히 다른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법원이 지상파 방송 양자 토론회를 금지하고, 안철수와 심상정 측에서 텐트까지 치며 반발하는 가운데 중계도 안하는 행사를 추진하려다 제 풀에 지친 상황이었지 않았나 한다.


윤석열이 이 실수를 지나서 대선 레이스 마지막 고개를 잘 넘어가려면 야권 후보 단일화와 4자토론에서 만회를 해야 한다. 단일화가 필수는 아니고, 사실은 민주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 정치공학적 야합(野合)이긴 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무도한 정권의 교체라는 절대 명분이 그 가책(呵責)을 없애준다.


尹이 안철수와 단일화를 하지 않더라도 당선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충분하다. 정권교체 여론이 1년 이상 일관되게 55%선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안철수의 실제 득표는 현재 여론조사 지지율 7~10%보다 밑돌게 될 것이라고 봐야 한다. 정권교체와 사표(死票) 방지 심리 때문이다.


‘단일화는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는 安은 언제나 본전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수백억원대 선거 비용 전액을 날리게 될 10% 이하 득표율이 확정적일 때, 이 실리와 정권교체 연대라는 명분을 다 잃게 되는 무모한 완주를 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도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의 구원(舊怨)에 의한 집요한 안철수 조롱은 주제를 모르는 철없는 짓이다. 안철수와 단일화는 후보 윤석열의 몫이다. 그가 편안한 승리(Comfortable Win), 즉 낙승(樂勝)을 위해, 그리고 불가역적(不可逆的, 대선 불복 엄두를 못 내는)인 정권교체와 대선 승리 후 보다 더 힘 있는 국정 운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安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그를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 남은 관문은 3일부터 시작되는 다자토론이다. 윤석열은 이 자리를 자신에 대한 비호감 감축, 대통령감 이미지 부각을 위해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대장동 몸통 공격은 부차적이다. 국민들은 이미 알 건 다 알고 있다. 네 후보 중 가장 통이 큰 맏형 같고, 가장 듬직한 대통령 모습을 보이기 위한 말과 행동을 하느냐 못 하느냐에서 이 토론의 승부가 갈린다.


윤석열은 윤석열다워야 득점이 올라가는 후보다. 이번 양자토론 협상은 대표단을 잘못 보냈다. 작디작은 문제로 옥신각신했다. 어느 시점에서 尹이 직접 나와 “좋다. 원하는 대로 메모 없이 토론하자”라고 판을 정리했어야만 했다.


(리드하고 있는 점수를) 지키는 야구는 지는 야구로 가는 길이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다. 지난 양자토론 협상은 소리(小利)에 집착한, 지지율 우위를 지키려고 한 야구였다.


윤석열은 이제 한 달여 남은 선거전에서, 상대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 전방위 공격과 인기 급상승 중인 부인 김건희와도 종종 부드러운 유세 동행을 하는, 양동(陽動)작전으로 벌린 점수 차를 최대한 더 벌리는 야구를 해야 한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정기수 칼럼'을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