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에일린 구 영웅화, 쓰러져 눈물 흘린 주이에게는 조롱
중국 피 흐르는 귀화 선수 향한 반응도 결과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려
올림픽 성적과 결과에만 매몰된 일부 중국인들이 에일린 구(19·중국명 구아이링)에게는 찬양을, 주이(20)에게는 저주를 퍼붓고 있다.
에일린 구는 지난 8일(한국시각) 중국 베이징 서우강 빅에어 경기장서 펼쳐진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키 프리스타일 여자 빅에어 결선에서 1~3차 시기 합계 188.25점으로 정상에 올랐다.
12명이 겨룬 결선 1차 시기에서 93.75점(2위)으로 메달 가능성을 높였다. 2차시기에서 88.50(4위)으로 주춤했지만, 3차 시기에서 결선 최고점수(94.50점)를 받으며 1위로 뛰어올랐다. 최하점을 제외한 나머지 점수 합계로 순위를 결정하는 결선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한 에일린 구는 금메달을 따냈다.
에일린 구의 짜릿한 역전 금메달에 대륙은 흥분했다. 중국 관영 CCTV는 경기 장면을 수차례 반복해 방영했다. 에일린 구의 금메달 확정 직후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 검색 상위 10개 가운데 7~8개가 에일린 구 관련 키워드로 덮였다. 중국명 구아이링과 비슷한 글자가 들어있는 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할 정도다.
에일린 구는 중국 웨이보에서 300만 명에 가까운 팔로우를 보유한 탑스타다. 중국 최대 이통사인 차이나모바일 등 굴지의 중국 기업들과 광고 계약을 맺었다. 최정상급 실력과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에일린 구는 특급 스포츠 스타로서 갖춰야 할 상업적 요소를 모두 갖췄다는 평가다.
2021-22 국제스키연맹(FIS) 프리스타일 월드컵 여자 하프파이프 4차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할 만큼 정상급 기량을 갖춘 데다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하다. 유명 모델 에이전시인 IMG에 소속된 현역 모델로 루이뷔통 등 글로벌 명품 회사 광고 모델로도 나섰다. 엘르 등 유명 패션매거진의 커버도 장식할 만큼 미모 또한 빼어나다.
중국인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결정적 이유는 미국의 피가 흐르는 선수가 중국을 택해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사실이다. 에일린 구의 아버지가 미국인, 어머니가 중국인이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되는 에일린 구는 중국에 귀화, 베이징동계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돼 2019년부터 중국 국적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중국의 피가 흐르고 귀화한 선수에게 칭송만 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이민가정 출신으로 미국 LA에서 태어난 주이는 미국식 이름(베벌리 주)까지 버리고 중국 대표로 활약하고 있지만 중국 대중으로부터 조롱을 듣고 있다.
중국 피겨 대표팀으로 올림픽에 나선 주이는 8일 피겨 단체전 여자 프리스케이팅에서 잇따른 점프 실수를 저질렀다. 개인 점수 최하위에 그친 주이로 인해 중국은 메달권에서 탈락했다. 주이는 경기 후 “속상하고 당황스럽다. 국가대표로 나서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며 눈물을 흘렸다.
중국 네티즌들은 주이에 대해 “수치스럽다”며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웨이보에서는 ‘주이 넘어지다’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3억 회 조회를 초과했다. 주이의 중국어가 유창하지 못한 점까지 언급하며 “피겨 전에 중국어부터 배워라” 등 조롱 섞인 비난도 했다. 일각에서는 입에 담기 어려운 저주까지 퍼부었다. 웨이보는 주이를 향해 사이버 폭력을 가한 90여개 계정을 차단했고, 게시물도 300여개 삭제했다.
굴절된 애국주의와 올림픽 성적이 국격을 결정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힌 일부 중국팬들 앞에서 성적이 좋으면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반대의 경우 조롱과 저주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은 오성홍기를 달고 경기에 나서는 대표 선수들에게는 힘이 아닌 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