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양궁부 주장 장하리 역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는 ‘부산행’ ‘킹덤’에 잇는 ‘K-좀비’의 매력에 대한 호평도 잇따른다. 그러나 이 작품의 인기는 단순히 ‘K-좀비물’의 신드롬이라는 업적에만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조연 할 것 없이 주목을 받는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캐릭터 하나하나가 모두 나름의 개성과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양궁 누나’로 불리는 효산고등학교 3학년 장하리 역은, 단조로울 수 있는 학교 내에서의 인물관계에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캐릭터다. 한국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운동선수로서 가진 고충과 고민, 그리고 한 학교에 재학 중인 동생과의 애틋한 남매애까지 보여주면서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들어졌다.
"원작과는 다른 장하리, 오히려 만들어가는 재미있었죠"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지우학’이지만, 장하리 역은 원작의 설정과는 매우 다른 캐릭터다. 나이와 성격, 다른 등장인물들과의 관계 등 원작과는 다르게 설정된 부분들을, 새로운 장하리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시청자들에게 몰입시키는 건 배우 하승리의 몫이었다.
“사실 대본이 4화까지 밖에 나오지 않아서 걱정했어요.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하리는 4화까진 거의 비중이 없잖아요. 계속 이런 식이면 어쩌지 싶더라고요.(웃음) 다행히 그건 감독님과의 미팅으로 해결됐어요. 하하. 오히려 전 원작의 캐릭터와 결이 달라서 장하리 캐릭터가 더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거니까요. 작품에선 하리의 서사가 담기진 않지만, 제 나름대로 장하리 캐릭터에 전사를 입혔어요. 예를 들어 부모님은 해외에 계시고, 양궁 선수인 누나를 위해 동생이 덩달아 양궁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왔다고요. 그래서 동생에 대한 마음이 더 애틋한 거죠.”
하승리는 양궁선수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현대모비스 여자양궁단에서 약 3개월에 걸친 양궁 훈련도 받았다. 2020 하계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강채영 선수가 그의 스승이 되어줬다.
“양궁 선수라는 캐릭터가 너무 좋았어요. 새로운 걸 배우는 것 자체가 즐겁잖아요. 처음엔 선수들이 쉽게 하길래, 저도 쉽게 활시위를 당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도 안되는 일이었죠. 거기서 일차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꾸준히 연습하니까 되긴 되더라고요. 집중력도 강해야 하고, 멘탈도 좋아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생각보다 저랑 잘 맞더라고요.(웃음) 코치님이 더 열심히 하면 아마추어 대회 나가도 될 정도라고 하셨어요. 제가 나이만 조금 어렸다면…하하.”
‘지우학’ 촬영 당시 26세였던 하승리는 실제 고등학생 나이 또래 친구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그 역시 또래 친구들에 비해 작은 체구에 어려 보이는 외모를 가졌지만 막연히 나이라는 ‘숫자’ 차이에서 오는 부담감이었다.
“조심스러웠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어린 배우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괜히 꼰대 같고, 세대 차이 난다고 할까봐 지레 겁먹은 거죠. 다행히 동생들이 먼저 말을 걸어주고, 장난도 걸어주더라고요. 덕분에 부담을 내려놓고 함께 어울려서 촬영할 수 있게 됐죠. 극중에서 뒤늦게 2학년 5반 친구들을 만나잖아요. 그때부터 더 마음이 편해졌고, 의지를 많이 했어요. 거기에 3명 정도가 오빠들이었거든요.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웃음)”
‘베스트 커플상’을 줘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하승리와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던 배우는 이은샘이다. 좀비를 피해 화장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성격으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에게 의지하고, 돈독한 우정을 쌓아나간다.
“그 좁은 화장실 세트에 갇혀서 몇 시간을 함께 있다 보니 더 돈독해진 것 같아요. 사실 촬영 당시엔 어떻게 연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 그 공간에 갇혀 있었거든요. 하하. 저는 오히려 학교에서 탈출한 이후 산에서 미진이와 대화를 나누는 씬이 가장 좋았어요. 진짜 친구가 됐구나 싶은 대화였는데 편집이 됐더라고요. 하하. 방송된 씬 중에선 창고에 갇혀 있을 때 제 동생에게 ‘국가대표 직행했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해줬던 씬이 가장 좋았고요.”
화장실에 갇혀 있었던 것보다 더 힘든 부분도 있었다. 좀비들과의 액션씬이었다. “달팽이관이 고장 난 친구”라는 매니저의 말에 하승리 역시 “몸 컨트롤을 못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었어요. 저혈압이 올 정도로 정말 많이 뛰었거든요. 특히 액션은 합이 중요한데, 제 몸을 컨트롤 하지 못해서 상대 배우분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긴장을 많이 했어요. 액션스쿨에서도 제가 열등생이었거든요. 하하. 다행히 좀비 역할을 해주시는 분들이 프로들이라서 저에게 잘 맞춰주셨던 것 같아요. 사실 액션씬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많았을 텐데, 만약 시즌2에도 함께 하게 된다면 제대로 된 액션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장하리는 좀비가 바로 코앞까지 달려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승리는 “(장하리는) 책임감이 강하고, 말보단 행동에 앞선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동시에 “내면은 누구보다 여리디여린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런 모습이 처음 보여진 건, 동생 우진(손상연 분)이 좀비에게 물렸을 때다.
“처음으로 하리가 감정을 표출하는 씬이었죠. 진짜 슬펐어요.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우진이 눈빛이 정말 슬퍼서 단번에 몰입이 되더라고요. 사실 좀비라는 상황이 현실적이진 않잖아요. 평소에 잔인한 것도 잘 보는 성격이라 별로 무섭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장난치고 대화를 나누던 친구들이 갑자기 좀비에게 물리고, 변하는 걸 실감나게 보여주니까 몰입이 되더라고요.”
"아역 출신 꼬리표 떼고, 새로운 출발선에 선 기분"
하승리는 연기 호평의 결과를 모두 동료들의 덕으로 돌리는 겸손함을 보여줬지만, 사실 그가 가진 내공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약 3만명이던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순식간에 약 70만명에 가깝게 늘어날 정도로 그에게 큰 관심이 쏟아진 건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연기 경험의 결실이었다.
하승리의 데뷔작은 1999년 당시 시청률 50%를 넘겼던 화제의 드라마 ‘청춘의 덫’이다. 당시 만 4살이던 그는 심은하와 이종원의 딸로 출연해 주목을 받았다. 이후 ‘더 킹: 영원의 군주’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학교 2017’ ‘드라마스페셜 - 노량진 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영화 ‘써니’ ‘밀애’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왔다. 그러면서도 그는 “배우라는 직업과는 맞지 않는 성격”이라고 말한다.
“너무 어릴 때부터 해왔던 일이라서 그저 당연하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성인이 된 이후에야 깊게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른 또래 친구들에 비해 소속감도 없고, 성격도 워낙 내성적이라서 이 일이 제 일이 맞는지, 나에게 즐거운 일인지 고민을 하게 됐죠.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저에게 연기하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주변에서 기대하는 시선이 느껴져서 부담도 됐고요. 뭔가를 보여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에 짓눌려 있었죠.”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었던 건 드라마 ‘학교 2017’에 출연하면서였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연기하게 됐고, 연기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지우학’이 그에게 의미가 컸던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해오던 아역 출신들이 많았다. 하승리는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라고 표현하면서 “또래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제게 큰 위로가 된 것처럼 그들에게도 저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위로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래 친구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되잖아요. 저 역시 아직은 제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고 싶어요. 실제로 작품을 했을 때 팬분들이 SNS 다이렉트메시지로 ‘위로가 됐다’ ‘큰 응원이 됐다’는 말씀들을 해주세요.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감사하고, 더 좋은 작품으로 위로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경력으로만 따지면 무려 23년차 배우지만, 하승리는 이제 막 배우로서의 사춘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이번 ‘지우학’으로 ‘아역 출신’의 꼬리표를 떼게 된 것도 그에겐 큰 수확이다. ‘심은하 딸 하승리’가 아닌 ‘배우 하승리’로 이름을 알리게 된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관심이다.
“아직은 한 가지 이미지로 굳혀지고 싶지 않아요.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보고 싶고, 확고한 저만의 신념을 가지고 주변에 휘둘리지 않도록 저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그 신념 안에는 연기적인 부분도 있지만, 인성도 포함될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 ‘좋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