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당선인 4월 추경 편성 요청
신-구 정부 갈등 속 기재부 ‘난감’
추경 편성 시점·재원 등 눈치 보기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놓고 첨예한 갈등을 빚으면서 기획재정부는 자칫 불똥이 자신들에게 번질까 걱정하고 있다. 윤 당선인이 내달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요청한 상황에 이러한 갈등이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윤 당선인 첫 공약 이행이란 점에서 현재 국민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윤 당선인은 5월 10일 대통령 취임 전에 집무실 이전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지만 현 청와대와 이전 예정지인 국방부 등은 촉박한 시간과 예산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
집무실 이전 갈등이 여야 정치권으로 번지는 상황에 윤 당선인은 2차 추경을 공식화했다. 윤 당선인은 22일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보상을 위한 2차 추경 편성 방침을 밝혔다.
윤 당선인은 이날 서울 종로구 통의동 사무실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간사단 회의를 열고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면 빠르면 현 정부에 추경 요청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2차 추경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같은 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힘이 4월 추경을 실현할 의지가 있으면 신속히 재원 마련 방안과 추경 규모 등을 논의해야 한다”며 “국회에서 온전한 손실보상과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추경 논의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소상공인 지원의 시급성을 강조하는 만큼 추경 편성 자체에는 걸림돌이 없어 보인다. 다만 실제 추경 편성 시점과 규모, 재원 조달 방법 등에서 여야 간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윤 당선인 공약대로 4월에 추경을 편성하려면 현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집행은 윤 당선인 취임 이후가 되더라도 예산 편성은 현 정부 몫이다. 그런데 집무실 이전 갈등이 깊어지면서 현 정부가 4월 추경 편성에 협조할지 의문이다.
집무실 이전에 필요한 예산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윤 당선인은 2차 추경 규모를 50조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재원은 올해 본예산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다는 게 원칙이다. 현실적으로 50조원 전부를 구조조정에서 마련할 수는 없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산 조정은 불가피하다. 기존에 편성한 예산마저 아껴야 하는 상황에 집무실 이전 비용은 추경 심의 과정에서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예산 실무를 담당해야 하는 기재부는 난처하기만 하다. 현 정부에서 추경을 편성하고 다음 정부에서 집행해야 하는데, 자칫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 꼴이 될까 걱정이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현 정부와 차기 정부가 갈등이 이렇게 심했던 경우가 없어서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고, 정권 교체기에 추경을 편성하는 경우도 거의 없어서 솔직히 예산 부서에서는 좀 난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경안 편성이 윤 당선인 취임 이후로 미뤄지더라도 문제다. 민주당 협조 없이 추경안 국회 통과가 불가능한 현실 때문이다.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상태라면 민주당이 추경 재원 마련 방법을 물고 늘어질 게 분명하다. 기재부로선 추경 편성부터 집행까지 전 과정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당선인께서 이번 정부에서 추경을 안 해주면 본인 집권 후 곧바로 추진하겠다고 하셨는데, 우리 입장은 최대한 갈등을 없애고 새 정부가 출범하길 바랄 수밖에 없다”며 “예산을 편성할 때는 이쪽(문 대통령) 눈치를 보고, 집행할 때는 저쪽(윤 당선인)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 아닌가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