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원자력 안전·안보 강화 韓 추진해야
'풀리지 않는 매듭' 북핵 풀 실마리 역할과
쿼드 플러스 내 견고한 입지 구축 효과 기대
강력한 동북아 원자력 안전 관리체제 韓 주도로 구축해야
동북아시아에 강력한 원자력 안전 관리체제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역내 원자력 안전관리 체계는 그럴듯하게 갖췄지만 실상은 유명무실하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크고 작은 갈등을 겪어온 한중일 3국의 관계가 미묘한데다 러-우크라 전쟁이 신냉전 진영화를 가속화시키고 있어 원자력 안전 협력은 더욱 경색되고 있다.
한국은 원자력안전위원회(NSSC), 중국은 국가원자력안전국(NNSA), 일본은 원자력규제위원회(NRA) 등 3국엔 원자력 규제기관이 각각 설치돼있다. 3개국 규제기관 간 협의체인 원자력안전 고위규제자회의(TRM, Top Regulator’s Meeting)도 설치돼있어 원자력안전 관련 주요 이슈를 공유하고 협력하고는 있다.
하지만 정작 각국마다 주요한 원자력 안전 이슈가 발생했을 때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고 있고, 각국이 서로 간 원전 운영을 감시하거나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은 부재하다는 지적이 크다. 원자력 안전 현안에 긴밀하고 능동적인 대처를 해나가기엔 역부족이라는 이야기다. 일개 규제기관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좀 더 투명하고 실행력 있는 강력한 공동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한·중·일 3국이 묘한 관계라 협력하려고 하면 시쿤둥한 반응을 보이고 특히 중국과 일본은 잘 협력을 안 하려 한다"며 "리드해나갈 나라가 한국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원자력 안전은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문제이기 때문에 세계 원전의 5분의 1이 밀집된 동북아 지역에 원자력 안전 협의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풀리지 않는 매듭' 북핵 풀어갈 실마리
동북아 원자력 안전 협의체를 발족하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중심의 핵 비확산 체제가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탄력적이고 강화된 대응체계를 갖출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북한이 연초부터 미사일을 몇 차례 발사하더니 지난 3월 24일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4년 4개월 만이다. 북한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연이어 하며 핵 개발 잠정 중단하겠다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지만 이번 ICBM 발사로 파기됐다. 북한의 핵 위협도 위협이지만 핵을 다루는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우리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안길 수 있다.
북한은 새로 발사한 ICBM이 새로 개발한 화성-17형이라고 밝혔지만, 한·미 당국은 북한이 기존 화성-15형을 개조해 발사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북한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와 같은 장거리 목표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미 정보당국은 잠정 결론 내린 바 있다.
한 원자력계 전문가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동북아 원자력 안전 협의체가 한국을 주체로 발족돼야 한다"며 "핵 관련 기술, 물질들이 테러분자들에게 넘어가는 것을 예방하자는 취지의 핵안보(Nuclear security)와 핵 관련 안전사고를 예방하자는 취지의 핵안전(Nuclear safety) 2가지 테마 모두 협의체에서 다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동북아 원자력 안전 협의체가 발족된다고 해도 북핵문제 관련 당장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안보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현재 미·중 경쟁이 심화되고 중국과 러시아가 결속을 다지면서 신냉전이 구냉전과 유사하게 진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자유주의 진영의 국가 연합과 러시아, 중국, 북한 등 수정주의 진영의 국가 연합 간에 협의체를 공동으로 설립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 미사일 실험을 가속하며 독재국가 연대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한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을 둘러싸고 동북아에서 외교력을 발휘한다면 충분히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국제정치학자들은 설명한다.
김재천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사실상 동북아에서 핵사고가 날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가 북한"이라며 "북한이 핵을 수단으로 가하는 위협도 문제이지만 핵에 대한 안전관리 부실로 불가항력적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발생할 것이다. 북한의 핵 안전을 다룰 수 있는 협의체가 발족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책임 있는 중견국가인 한국이 핵 안전 협의체를 결성하자고 먼저 제안한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국격을 높이는 일"이라며 "국제사회의 공통된 우려인 핵 안전을 위한 협의체 결성을 통해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며 모니터링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쿼드 플러스 내 입지 강화 효과도 기대
현재 한국의 쿼드(Quad) 가입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동북아 원자력 안전을 리드하게 되면 쿼드 내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갖출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쿼드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당사자인 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 안보회의체로, 2007년 이들 4개국이 처음 개최한 '4자 안보 대화(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의 앞글자를 땄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2020년 8월 한국·베트남·뉴질랜드 3개국을 더한 '쿼드 플러스'로 확대할 의도를 내비치면서 주목을 받았다.
커트 캠벨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지난 4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 한·미 정책협의 대표단을 만나 한국의 쿼드 협력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윤 당선인은 대선 기간에 쿼드 산하 워킹그룹에 우선 참여한 뒤 정식 가입을 모색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이 원자력의 안전과 안보에 대한 아젠다를 주도하고 관련 논의를 진전시킬 경우 쿼드 플러스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재천 교수는 "북핵 문제와 원자력 안보 논의가 쿼드 내에서도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며 유관 국가들이 협조한다면 동북아원자력안전협의체를 만드는 작업에 탄력이 붙을 수 있다"며 "한국의 외교력과 국격의 향상 관점에서도 충분히 제안을 해볼 수 있는 사안"이라고 내다봤다.
[원전최강국 청사진⑥]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