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체결 단계부터 '헐값' 논란
쌍용·대우조선·아시아나도 '답보'
KDB산업은행의 기업 구조조정을 둘러싼 책임론이 확산되고 있다. KDB생명 매각이 끝내 무산되면서 인수자 물색 당시 검증이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우조선해양, 쌍용자동차, 아시아나 등 산은 주도 매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이동걸식 구조조정에 대한 회의론도 피어오른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은 지난주 사모펀드 운용사 JC파트너스와 체결했던 KDB생명 매각에 대한 주식매매계약을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KDB생명의 예비인수자인 JC파트너스가 보험사의 대주주 요건에 충족시키지 못하면서다.
앞서 금융당국은 JC파트너스가 보유한 또 다른 보험사인 MG손해보험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했는데,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등에 따르면 부실금융기관 대주주는 KDB생명 대주주가 될 수 없다.
산은이 애초 여러 논란이 있던 JC파트너스에게 매각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JC파트너스와 계약 체결 당시부터 매각액이 2000억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다. 산은은 칸서스자산운용과 공동으로 6500억원 규모의 KDB칸서스밸류사모투자전문회사를 만들어 KDB생명을 인수했고, 이후에도 유상증자 등으로 8500억원 가량을 투입했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JC파트너스에게 거듭 기회를 주기도 했다. JC파트너스는 KDB생명 인수에 필요한 2000억원의 자금 마련과 1500억원의 자본 확충에 난항을 겪었다. 관련 계획에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지연되는 와중에도 산은은 인수 마감 기한을 늘려줬다.
매각 불발에 따라 산은은 다른 인수자를 찾겠다는 방침이지만, KDB생명의 악화된 수익성과 자본건전성, 불투명한 생명보험업 전망 등 이유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산은이 2010년 KDB생명을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투입된 공적자금만 1조원이 넘는다.
KDB생명뿐 아니라 산은이 추진한 굵직한 매각들은 잇따라 무산되거나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쌍용차의 경우 최근 매각 계약이 무산됐다. 쌍용차를 인수하겠다던 에디슨모터스가 투자계약 인수 대금을 미납했고, 쌍용차가 지난달 28일 인수·합병 계약을 해지하면서다.
산은이 2019년부터 추진했던 대우조선해양 매각도 끝내 불발됐다. 업계 1위였던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자로 나섰으나,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은 독과점이 우려된다고 보고 이 둘의 기업결합을 불허했다.
같은 이유로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의 합병도 불안해지는 모양새다. 국내 1, 2위 항공의 합병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건부승인을 받았으나 EU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 회장이 2017년 취임 후 과감하게 진행해 온 사후 구조조정이 달라진 산업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주도로 지난 20일 열린 '정책금융의 문제점과 혁신과제 : 산업은행의 역할 재편을 중심으로' 토론회에서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채권은행 중심 사후적 구조조정이 어려워진 이유로 제도적 변화, 기업구조조정 형태 변화, 대손비용 부담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구 연구위원은 "기존산업에 대한 사후적 구조조정 기능을 축소하고 컨트롤타워를 세워 선제적 사업재편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