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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수 캐스터의 헤드셋] "정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입력 2022.04.23 10:40 수정 2022.04.23 10:42        데스크 (desk@dailian.co.kr)

육성 응원 허용된 첫 날인 22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KBO리그 LG트윈스와 두산베어스의 경기에서 야구팬들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뉴시스

세상 살면서 믿지 못할 거짓말 중 하나가 “조만간 밥 한 번 먹자”라고 하는 인사다.


학교 동창, 오랜만에 만나는 군대 동기, 어린 시절 함께 했던 동네 친구들. 죽을 때까지 영원히 함께 하겠노라 다짐했지만 먹고살기 바빠서 잊고 산 지 오래다. 퇴근 후 무심코 길을 걷다 마주친 지인, 친구와 반가움의 인사를 짧게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한다.


조만간 만나서 “밥 한번 먹자” “술 한 잔 하자” “차 한 잔 마시자”는 말을 주고받으며 헤어진다. 조금 전 만났던 지인, 친구와의 추억을 회상한 후 곧 만나리라는 다짐한다.


다음날도 변함없이 일상의 생활을 이어간다. 하루하루가 지나고 친구와 밥 한번 먹자는 기억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거짓말 의도는 없었지만 지키기 쉽지 않으며, 영혼 없고 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다. “나중에 밥 한 번 먹자. 차 한 잔 마시자. 술 한 잔 하자” 참으로 신기한 것은 세 가지 이야기 모두 먹고 마신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음식을 함께 나누고 술이나 차를 한 잔 한다는 것은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고 돈독케 하는데 아주 중요한 행위다.


야구팬들에게 물어보면 야구 자체를 즐기는 목적도 있지만 야구장을 직접 찾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치킨과 맥주, 이것저것 먹는 재미가 가장 크다고 말한다. 자리도 불편하고 테이블석이 아닌 이상 음식을 마땅히 둘 곳도 없는 불편함의 연속이지만, 야구장에서 먹는 치킨을 포함해 다양한 먹을거리와 맥주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딱히 설명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고.


지난 2년간 일상의 당연함 중 하나였던 ‘직관(야구장 방문)’은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선수들은 직업이기에 관중 유무와 관계없이 야구를 해야만 했고, 야구단은 큰 적자의 연속이었지만 야구단을 유지해야만 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했던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야구를 접하기는 했지만 예전만큼 야구와 하나라는 느낌보다는 야구와 내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오늘 일 끝나고 지난번 그 자리에서 만나자!! 맥주는 내가 살게, 치킨은 네가..오케이??”라며 경기가 끝나면 승패의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 이야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나와 함께 야구를 보는 내 친구가, 치맥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나의 지인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다.


분위기 좋은 카페는 아니지만 함께 소리 지르고 맥주 한 잔 나누며 나와의 사랑을 키워 나가는 나의 연인에게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 “언제 밥 한 번 먹자” 믿고 싶지만 믿지 못 할 이야기. 그러나 다음 주 목요일에 야구장 가자. 야구 보면서 맥주 한 잔 하자는 말은 왜 그리 진심으로 느껴지며, 꼭 하고 싶은 일인지.


어수선했던 KBO가 새로운 총재를 선출했다. 프로야구 출범 40년을 맞아 더욱 팬에게 가까이 다가서기로 공언하며(언제나 공허한 외침은 이어졌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는 생각을 조금은 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시즌 전 스토브리그는 리그의 흥행여부와는 큰 상관없이 연일 억억거리며 보는 야구팬들의 호흡을 헉헉거리게 하였다. 특정구단은 특정선수의 복귀를 추진하며 야구팬들의 가슴을 다시 한 번 헉헉거리게 만들었다.


늘 그렇듯 각종 사건, 사고의 연속이지만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야구는 계속 될 것이다. 매 시즌 관중의 많고 적음은 있겠지만 야구장 문은 닫히지 않을 것이다. “이 구역에서 호구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고 할 때 그 호구는 바로 나다(호구: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2일 잠실야구장 찾은 야구팬들. ⓒ 뉴시스

지난 2년간 야구팬들은 야구에 굶었다. 그래서 엄청 야구가 고프다. 그래서 무슨 짓을 해도 야구팬들은 또 호구가 될 것이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집에 유니폼이 널리고 널렸지만 또 새로운 유니폼이 나오면 아낌없이 구매한다. 그리고 또 선수의 이름을 마킹한다. 모자를 사고, 점퍼를 사고, 각종 응원도구를 산다. 구매 후 영수증을 확인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역시 이 구역의 호구는 바로 나다!!”. 늘 그렇지만 난 야구에 큰 욕심 없다. 크게 바라는 것 또한 없다. 그저 내가 응원하는 팀이 매일 내게 승전보를 전해주기 바라지만 절대 그리 될 일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내가 완전히 ‘호구’가 되었다는 것을 크게 느끼지 않기만을 바란다. 늘 그렇지만 적당한 호구라는 것은 깨끗하게 인정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영수증을 한참 들여다보니 학창시절 수업을 빼먹고 야구를 함께 보러 다니던 친구가 생각난다. 오래간만에 그 녀석을 만나야겠다. “친구야!! 날 잡아 야구장 가서 치맥하자!! 오케이??” 2022년 나의 야구는 그럴 것이다. 재미있고 신나게. 치맥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육성응원일지 육두문자가 섞인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무서운 것이 정(情)이라더니 40년 인연을 어찌 단번에 끊을 수 있겠는가.


글/임용수 캐스터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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