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부터 9년간 보호 받고도 시장정화노력 없어…소비자 피해 '여전'
신뢰성 뒷받침된다면 현대차‧기아 인증중고차 대비 가격경쟁력 우위
대기업 진입 저지 집착 버리고 유예기간 경쟁력 강화, 시장정화에 힘써야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 들어와도 하나도 안 무섭다.”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가 현대차‧기아의 중고차사업 진출을 1년 유예토록 하는 권고안을 확정하기 전날인 27일, 국내 최대 온라인 중고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현직 중고차 딜러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현대차‧기아의 중고차 시장 진입이 기존 성실한 중고차 매매업자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요한 건 결국 자체적인 정화노력이라고 강조했다.
글쓴이는 “(현대차‧기아가 시장에 진입하면) 의심 많고 불안해하는 손님들은 그쪽으로 가겠지만, 그동안 경험으로 볼 때 돈을 더 주더라도 안심할 수 있는 차를 고르기 보다는 단돈 10만원이라도 싼 차를 고르는 손님이 90%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에 20%의 시장을 내준다 해도 능력 있는 딜러들은 살아남고, 하위 딜러 20%만 낙오될 것이라면서 “저는 대기업 오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고 자신했다.
현대차‧기아의 시장 진출 여부와 무관하게 성실히 정상적인 영업을 한다면 자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그는 기존 중고차 시장의 후진적 구조를 바로잡을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제가 한 달 내내 열심히 해서 30대씩 팔아서 번 돈이 일부 지역 사기꾼들 두어 대 팔고 버는 돈이랑 비슷하다”면서 “후진적인 구조가 바뀌어야 하는 건 맞다”고 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중고차 알선판매 금지’와 ‘중고차 딜러 자격화’를 제시하면서 “물론 모든 딜러들이 찬성하진 못하겠지만 이게 해답”이라고도 했다.
중고차 업계가 시장 보호에만 매몰돼 허위매물, 사기판매를 방치하면서 소비자 뿐 아니라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딜러들까지 피해를 보게 된 데 대해 내부적인 불만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글쓴이의 말대로 현대차와 기아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다고 해도 가격을 앞세워 기존 중고차 매매업자들과 경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트레이드 인(중고차 매입 연계 신차 보상판매) 방식으로 중고차를 매입한 뒤 매집점검, 정밀진단, 인증검사로 신뢰성을 높이고, 차량 정비는 물론, 판금‧도장‧광택 등의 작업으로 상품성을 신차 수준으로 끌어올린 인증중고차를 판매한다는 사업 모델을 제시한 상태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만큼 기존 시장에서 거래되는 중고차보다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당분간 타고 다닐 ‘저렴한 중고차’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상당수인 시장 특성상 현대차‧기아가 설령 점유율 제한을 걸지 않는다고 해도 시장을 ‘싹쓸이’할 수는 없는 구조다.
이같은 점 때문에 업계에서는 완성차 제조사의 인증중고차가 가격이나 품질, 신뢰성 측면에서 기존 중고차와 신차 중간에 위치해 별도의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존 중고차 사업자들도 경쟁력 강화와 시장 정화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대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단 의미다.
사실 그런 노력을 할 시간은 충분했다. 중고차 업계에는 그동안 무려 9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2013년 3월 중고차 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3년간 대기업 진입이 불허됐고, 기한 연장으로 3년의 시간이 추가됐다.
법적 한도 기한이 모두 종료된 2019년 2월에는 중고차 매매업계가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했고,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정 여부를 놓고 시간을 끌면서 올해까지 3년간 비공식적으로 보호 기간이 연장됐다.
하지만 2013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허위매물에 낚이고 사기와 강매로 피해를 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고차 사이트에는 작년 출고된 주행거리 100km도 안된 제네시스 GV80 매물이 신차 가격의 10분의 1인 700여만원의 가격을 달고 올라왔다. 신차도 없어서 못 산다는 현대차 그랜저 중고차에는 600여만원의 가격표가 달렸다. 당연히 허위 매물이다.
중고차 업계는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미지정 결론이 난 뒤에도 3년의 유예기간을 요구했다.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는 이 요구를 일부 수용해 현대차‧기아에 사업 개시를 1년 유예할 것을 권고했다.
지난 9년의 시간동안 뭘 하고 이제 와서 더 시간을 달란 말인가. 유예기간을 요구한 것도 좀 더 시간을 끌며 원래 하던 대로 장사를 하겠다는 심산은 아닌지 의심케 한다.
기존 중고차 업계에서 믿을 수 있는 중고차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면 굳이 신차가격에 육박하는 인증중고차로 눈을 돌리는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현대차‧기아의 시장 진입 저지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다시 주어진 1년의 시간 동안 그들이 두렵지 않을 경쟁력과 신뢰로 무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