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권성동 대행 체제로 빠르게 재편
'이준석만 빼고' 현 지도부 유지 가닥
李 불복했으나, 정치권 안팎 "게임 끝"
동시다발적 투쟁하며 고립무원 자초
사상 초유의 당대표 징계 이후 국민의힘의 '이준석 지우기'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직무대행' 체제를 선포하고,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과의 회동, 비공개 최고위원 간담회를 숨 돌릴틈 없이 이어가며 당권을 접수해갔다. 오는 11일에는 당대표가 주재하는 최고위원회도 직접 개최한다.
당내 반발은 아직까지 크지 않은 분위기다. 권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당원권이 정지되는 6개월 동안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지도부를 새로 구성하는 대신 이 대표를 제외한 최고위원 등 현 지도부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이 대표를 향해서는 "윤리위 징계를 수용하고 6개월 후 대표로 복귀하라"고 했다.
물론 이 대표는 승복하지 않았다. 윤리위 징계 심의의 '형평성' 문제를 따지는 한편, '징계 결과 처분권은 당대표에 있다'는 당규를 근거로 징계 효력의 법적 다툼도 예고했다. 하지만 권 원내대표는 "최고위원들과 논의를 거쳐서 당이 결정하면 그대로 가는 것"이라며 이 대표의 주장을 일축했다. 여의도 정가에선 "게임은 끝났다"는 말이 나온다.
이 대표의 고립무원 처지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박성중 의원은 "(지난 대선 기간) 이 대표에게 여러 문제가 있었을 때 내부에서 탄핵 이야기가 나왔다"며 "내부적으로 확인했을 때 80%(109명 중 87명)가 동의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대선 포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까지 불사할 정도로 이 대표 비토론이 컸다는 얘기다. 윤석열 당시 후보의 중재로 넘어갔지만 "이 대표를 따르는 의원들은 많지 않다"는 게 박 의원의 전언이다.
이 대표가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게 다수의 분석이다. 이 대표가 당내 기반이 약하다고 하지만, 지난 전당대회 당시 당원 득표율은 37%로 그리 낮지 않았다. 과거사 사죄, 호남 공략 등 새로운 바람도 일으켰다. 하지만 당대표로서 대통령 후보와 갈등을 공론화하는 등 내부 공격에 치중했다는 인상을 주면서, 긍정적 측면을 덮어버렸다.
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비토론이 다소 줄어드는 듯했지만, 안철수 의원과의 오랜 갈등이 다시 노정되며 반감을 키웠다. 무엇보다 '자기 정치' 선언과 함께 혁신위를 띄우고 공천룰까지 거론하며 소속의원들을 자극했다. 싸움을 피하지 않는 특유의 스타일로 다수의 당내 인사들과 동시다발적인 논쟁도 피하지 않았다. 심지어 '윤핵관 배후설'을 제기하며 윤리위도 정치투쟁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나아가 막판 이 대표는 대선과 지선 승리 공헌을 강조하는 한편, 성 상납 폭로 배후설을 띄우며 여론 뒤집기를 시도했다. 울먹이며 억울함도 호소했다. 하지만 여론이 움직여줄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대선과 지선 기여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기정치'를 희생으로 포장하면 그 성과마저 퇴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불복 후 정개개편?…당내 '절치부심하라' 조언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대표에게 남은 카드는 크게 두 가지로 예측한다. 징계에 불복하고 법적·정치적 투쟁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대표직을 회복하는 길이 첫 번째다. 이 대표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저같이 여론 선동 잘하는 사람이 흑화해서 다니면 어떻게 될지 기대해도 될 것"이라며 "흑화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실패할 경우, 최종적으로는 탈당하고 새로운 깃발을 세우는 선택지로 연결된다. 여의도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이재명 체제에 반발한 더불어민주당 인사들과 함께 이 대표가 '정계개편'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다만 탈당 혹은 정계개편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제3당의 한계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했고, 탈당에 동참해 줄 당내 세력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 진행 중인 경찰 수사를 대비하며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길이다. 다수의 당내 인사들은 후자의 길을 조언하고 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대표가 억울하고 징계가 과도하다면 노무현·윤석열·한동훈처럼 결국은 제자리로 복귀하고 이길 수 있다"며 "그러려면 세 명의 공통점 한 가지를 배워야 한다. 입을 닫고 굵고 강한 원칙적 대응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6개월간 직무대행 체제를 지켜보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라"며 "나도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엮여 당원권이 1년 6개월 정지된 일이 있었고, 항소심 무죄 판결이 나오자 당에서 당원권 정지의 정지라는 괴이한 결정으로 당원권이 회복돼 대선 후보 및 당대표를 한 일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누명을 벗고 나면 전혀 새로운 이준석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복귀할 수 있을 거다. 지금은 나라를 먼저 생각해야 할 때다. 당내 투쟁을 할 때가 아니다"고 당부했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도 "이 대표가 억울한 점이 있다면 당원권 정지기간에 이를 풀어내는 것에 집중하고 일단 윤리위 결정을 존중해주는 것이 본인의 미래를 지키는 길일 것"이라며 "하루빨리 권성동 당대표 대행을 중심으로 당이 믿을 수 있는 집권여당의 모습을 갖추어 윤석열 정부와 함께 갈수록 어려워지는 국민의 삶을 챙기길 소망한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