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 참패 이후 지지율 10%p 올린
'맞수 없는 정무감각' 우상호 퇴장
팬덤 가졌지만 비토층도 두터운
이재명 등판…'비호감 대결' 재연?
선거 연패로 나락에 빠졌던 더불어민주당의 숨을 돌려놓은 우상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내려가고 대권주자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의 전면에 나선다. 이 대표는 과연 '표미새' 본능을 발휘해 민주당 지지율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이 대표가 과감한 외연 확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 발목을 잡을 '걸림돌'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민주당은 28일 전당대회를 열어 임기 2년의 새 당대표로 이재명 의원을 선출했다. 새 당대표는 2024년 총선을 지휘한다. 민주당은 올해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에서 각각 대통령 권력과 지방 권력을 상실했지만, 원내 다수 의석을 기반으로 정치적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만큼 후년 총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판한 당대표가 정작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의 당사자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 때는 후보로, 지방선거 때는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뛰었지만 양대 선거에서 모두 패배했다. 대선 패배 이후 수립된 '윤호중·박지현 비대위'마저 지방선거 패배로 또 붕괴되면서 '비대위의 비대위' 격으로 등판한 게 우상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우상호 전 위원장은 여의도에서는 '맞수가 없는 정무감각의 달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의원조차 최근 사석에서 "얄밉기로는 여의도에 우상호만한 사람이 없다"고 토로했다. '얄밉다'는 것은 상대 진영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한국갤럽이 6·1 지방선거 참패 직후인 지난 6월 7~9일 설문한 조사에서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29%였다. 이것을 우 전 위원장은 본격적인 당권 레이스 돌입을 앞둔 시점인 이달 2~4일 설문에서 39%로 만들었다. 두 달만에 10%p를 올려놓은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경우에는 대선후보로 선출돼 당의 전면에 나서기 직전인 지난해 10월 5~7일 설문에서 35%였던 민주당 지지율을 6개월 간의 선거운동 끝에 대선 직후인 올해 3월 15~17일 36%로 만들었다. 유의미한 지지율 상승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5월 3~4일에 민주당 지지율은 41%였다. 직후인 6일 이재명 대표가 지방선거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수락하고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직접 뛰어든 뒤, 한 달간 선거운동을 이끈 끝에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6월 7~9일에 29%가 됐다. 12%p를 깎아먹은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날 이재명 대표를 선출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이 대표도 기자들 앞에서 득의양양하게 "40만 명 중 80%가 소수팬덤이냐"고 물었다. 40만 명 중 80%라면 32만 명이다. 지난 3·9 대선의 유권자 수는 4420만 명이었다. 1%도 되지 않는 소수 중의 '극소수팬덤'이다.
극소수 열렬 팬덤을 가진 정치인에게는 그만큼 강한 비호감과 거부 심리를 가진 비토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정치권 관계자는 "빛이 밝은 곳에 그림자가 짙은 법"이라며 "우상호 전 위원장의 퇴장과 이재명 대표의 등판을 계기로 집권 세력과 제1야당은 지난 3·9 대선처럼 '비호감 대결' 관계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비호감 대결'은 각자의 지지층 결집을 촉진한다. 지금 각자의 지지층이 결집된다면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집권 세력에게 '남는 장사'가 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용산 대통령실도 이재명 대표의 등판을 내심 기다려왔다는 것은 여의도 안팎의 정설"이라며 "위기의 윤석열 대통령을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이재명 대표 아니면 기적 둘 뿐이라는 말이 전부터 파다했다"고 전했다.
'표미새' 이재명, 외연 확장 시동 거나
"적극 지지층만 보고 정치 할 순 없다
가끔 전투 지더라도 외연 넓히는 과정"
지난 대선 패인 복기해본 결과일 수도
다만 이재명 대표가 지난 대선 때와 똑같은 모습을 보이리라는 것은 단견일 수 있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 대표의 별명 중의 하나가 '표미새'"라며 "'표에 미친 XX'라는 뜻인데, 표를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는 일종의 애칭"이라고 귀띔했다. 이 대표의 '표미새' 본능은 정권교체 여론이 과반을 넘는 상황에서 지난 3·9 대선을 0.7%p차 초접전으로 몰고갔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런 이 대표가 오로지 지지율만 바라보고 외연 확장의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스스로의 내홍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은 코너에 몰릴 수 있다.
이재명 대표는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움직일 생각도 없지 않은 듯 하다. 이 대표는 사실상 당대표를 확정지은 지난 24일 '안방' 경기도에서 열린 당원간담회에서 "나는 좌파가 아니다. 진보라고 말하기도 쑥쓰러운 사람"이라며 "나는 진보라기보다는 사실상 보수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토로했다.
당원간담회에 참석할 정도면 강성 당원인데, 이 대표는 이들을 향해 "적극 지지층만 보고 정치를 할 수는 없다"며 "소위 말하는 집토끼를 잡으려고 하다보면 산토끼를 놓친다"고도 했다.
21대 후반기 국회에서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내준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한 당원을 향해서는 "모든 전투에서 이겨야 전쟁을 이기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은 전략적으로 전투를 져주기도 한다"며 "이제 앞으로 우리가, 특히 내가 이런 일을 많이 겪을 것이다. 적극 지지자 입장에서는 '왜 저것도 못해' 할 수 있지만 그게 외연을 넓히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제1야당을 이끌게 된 이재명 대표는 집권 세력을 코너로 몰아갈 '표미새' 본능을 과연 순조롭게 발휘할 수 있을까. 이재명 대표 본인의 한계, 그리고 주변의 한계, 두 가지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해 10월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 중도층을 겨냥한 본선 전략을 묻는 질문에 "사람들이 나를 지지하는 이유가 있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 오히려 의심받는다"며 "정체성을 포기하고 갑자기 이승만 참배를 하고 그러면 오히려 휘청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선후보 선출 직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가지 않고 굳이 국립대전현충원을 간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올해 2월 14일에 돌연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전격 참배했다. 실기(失期)한 것이다.
야권 관계자는 "유리할 때 갔더라면 과감한 중도 행보가 됐을텐데, 불리해지고나서 가니 마치 떠밀려간 것처럼 돼서 진의를 의심받게 됐다"며 "대선이 결국 0.7%p로 승패가 갈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대표에게는 통한"이라고 지적했다.
李 본인, 또는 주변이 걸림돌 될 수도
文, 2015년 과감한 중도 확장 원했지만
'文 지키겠다'던 최고위원들이 '발목'
"李 지도부서 재연되지 말란 법 없다"
이재명 대표 본인은 이러한 통한을 상기하며 과감하게 외연 확장 행보를 해보려고 해도 주변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바로 친(親)이재명 일색 지도부다.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재편하기 위해 이 대표는 패권주의·계파 논란을 무릅쓰고 이번 전당대회 내내 친명계 최고위원 후보들을 거점 도시마다 데리고 다니면서 경선운동을 해줬다. 그 결과, 뜻은 이뤘지만 향후 외연 확장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게 됐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최고위원들도 각자에게 독자적인 지지 기반이 있는 독립된 정치인들이다. 이 대표가 과감한 중도 행보를 한다고 '거수기' 노릇만 할 사람들은 아니다"며, 이재명 대표가 '롤 모델'로 하고 있다는 지난 2015년의 문재인 전 대통령 사례를 소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도 거부하는 완고한 모습으로 일관하다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왼쪽으로 이동해온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중도를 내줘 패했다고 패인을 자체 분석했다.
이에 문 전 대통령은 2015년 2·8 전당대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선출된 뒤, 이번에는 자신이 오른쪽으로 이동해 중도층을 빼앗아오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집권 3년차에 들어서면서 우경화로 인해 중도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타이밍은 아주 적절했다.
문제는 문 전 대통령 자신은 오른쪽으로 움직이려 하는데, '문재인을 지키겠다'며 동반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 전 대통령이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이튿날인 2015년 2월 9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이승만·박정희 묘역 참배를 강행하자, 최고위원들은 갑론을박을 벌이다가 한 명도 문 전 대통령을 따라가지 않았다.
현충원까지 왔던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승만·박정희) 묘소 참배에 동의한 적이 없다. 가겠다는 사람만 가는 게 맞다"며 요지부동이었고, 전병헌·유승희 최고위원은 아예 현충원에 오지도 않았다. 유 최고위원은 "당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을 잘 읽고 행보해야 한다"며 "(이승만·박정희 참배는) 당원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고 잘라말했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문재인을 지키겠다'면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던 사람들이 정작 문재인 대표의 중도 확장 의지를 번번이 가로막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었다"며 "이런 일은 선명성·강경투쟁만을 강조하는 최고위원들이 잔뜩 포진한 '이재명 지도부'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