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정부 압박에도 가격 인상 줄이어
공공요금 등 생활물가 전반 인상…“유독 식품업계만 압박” 불만도
정부의 연이은 가격 인상 자제 요청에 식품업계가 곤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그간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식품업계에 동참을 요청하는 사례는 많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른 탓이다. 워낙 원재료 상승 속도가 빠르다보니 도미노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하다는 하소연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정부는 잇따라 식품업계에 가격 인상을 최소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달 19일 진행된 민생물가 점검회의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한데 이어 8일 후인 27일에는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 주재로 식품업체 6곳과 물가안정 간담회를 진행했다.
추 부총리의 가격 인상 자제 요구에 비해 두 번째 물가안정 간담회에서는 한층 압박 강도가 높아졌다.
당시 권재한 식품산업정책실장은 “고물가로 어려운 시기에 많은 경제주체들이 물가상승 부담을 참고 견디는 상황이라고 전제하고, 이러한 상황에서도 식품업계는 대체적으로 전년 대비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증가하고 있는 만큼, 물가안정을 위한 업계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권 실장의 이 발언을 두고 사실상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최후통첩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정부 주무부처 실장이 주요 식품기업들을 직접 불러 모은 자리에서 매출액과 영업이익 증가를 언급하면서 가격 인상 자제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정부의 잇단 경고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라면, 스낵, 김치 등 주요 가공식품 가격 인상이 잇따르면서 식품업계의 분위기가 예년과 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전까지는 정부의 가격 인상 압박에 동참해 인상 시기를 미루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다면 이번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인상에 나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누적된 원재료 탓에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한계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요구에 부응할 여력이 없다는 의미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나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가격 인상을 단행했지만 원재료 가격 상승분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원재료 가격은 계속 상승하다 보니 가격을 올리는 순간에도 기업 마진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물가 관리 실패 책임을 식품업계에 전가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소비자 물가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을 비롯해 유가, 택시비 등 생활 물가 전반이 다 오르고 있는데 유독 식품업계에만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이달부터 원유 가격 상승 가능성이 높은 데다 사료 가격 상승에 따른 육류 가격 인상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유와 육류의 경우 빵, 아이스크림, 햄 등 다른 가공식품 재료로 활용되는 비중이 높다 보니 연쇄적인 가격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
아울러 달러 강세가 40여년 만에 최악의 수준인 고환율 상황이 지속되면서 장기적인 수익성 감소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경우 일정 부분 상쇄가 가능하지만 대부분 식품기업의 경우 내수 비중이 크다 보니 달러 강세에 따른 추가적인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가격 인상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일단은 내부적으로 비용 절감을 하며 버티는 상황”이라며 “아무래도 마케팅 비용에 대한 축소가 가장 먼저 이뤄지고 있다. 당장은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마케팅 활동이 줄면 매출도 떨어질 수 있어 고민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