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점 이전 반대 시위 122일차
강석훈 회장 소통 의지 잃었나
"회장님, 직원들이 자꾸 나가요. 왜일까요? (중략) 아침에 한번 1층 로비로 내려와 주세요! 소통해요, 우리. 기다릴게요!"
"'소통' 강조하던 회장은 왜 단 한번도 1층에 안나오세요?"
"타운홀미팅! 1층으로 오십시오"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점 1층 로비에 붙어있는 쪽지들의 내용이다. 산은 노동조합과 직원들은 이번 달 7일 기준 122일차 출근길 시위를 열고 있다. 목적은 하나다. 본점 부산 이전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도 100일 넘는 시위에 한번도 나오지 않은 강 회장에 대한 아쉬움이 나온다. 한 산은 직원은 "회장이 우리와 대화를 완전히 포기한 거 같다"며 "100일간 어떻게 한번을 안 나올 수 있냐"고 토로했다.
산은 부산 이전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다. 최근 윤 대통령이 부산 이전에 대해 추진 의지를 밝히면서 금융위원회와 산은도 계획서를 만들고 내부 전담조직을 꾸리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직원들은 ▲네트워크 효과 및 경쟁력 약화 ▲정책지원 규모 축소 ▲업무 비효율 ▲인력 유출 등 이유를 들어 부산 이전을 반대해왔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송두리째 바뀌는 데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결혼해 자녀를 낳거나 거처를 수도권으로 마련한 이들에게 부산 이전은 갑작스럽고 납득이 어려운 조치일 테다. 걱정과 불안에 매일 시위에 나서는 직원들의 마음을 강 회장도 이전 추진단장을 맡은 최대현 수석부행장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강 회장도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했다. 그는 지난달 14일 기자간담회에서 본점 부산 이전 사안과 관련해 "아무리 제가 회장이라도 국가 최고 책임자들이 정한 것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강 회장이 직원과 대화 시도를 안한 것이 아니다. 강 회장과 최 부행장이 지난달 각각 소통 자리를 마련하려 했지만 직원 반발로 무산됐다. '답이 정해진' 소통 자리의 한계였다.
그렇다 해도 결국 숙제를 풀어갈 몫은 산은의 최고책임자인 강 회장에게 있다. 최근 이전추진단을 출범시키는 등 강행 드라이브를 걸면서 노사는 물론 직원들 간 관계도 파탄나고 있다. 내부에서는 이전추진단에 발령된 직원들을 을사오적에 빗대 '임인10적'이라 부르며 비난 목소리를 키우기도 했다.
혼란을 바로잡을 사람은 강 회장 뿐이다. 그런 와중에 강 회장은 지난 4일 임원회의에서 부산 이전과 관련한 준비 사안에 대해 수석부행장을 믿고 간다는 식으로 발언했다고 한다. 강경한 직원 반발에 소통의지가 꺾인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내부서는 "차라리 '쇼통'이라도 해라"라는 자조도 흘러나온다.
강 회장은 지난달 14일 노조와 어떻게 대화할 것이냐는 기자 질문에 "진정성을 가지고 한분 한분 만나겠다"며 "좋은 대안 없는지 매일밤 밤잠 못이루면서 생각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직원들의 논리적, 정서적 이해 넓히기 위해 최대한 많은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진정성은 행동이 굼뜨면 의미를 잃는다. 어렵더라도 듣고 또 듣는 자리를 마련해 난제를 풀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