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 전반 신뢰가 관건
심리적 공포 확산 제어 필수
금융위기론과 함께 뱅크런이란 유령이 다시 맴돌기 시작했다. 내 돈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은행을 향할 때 자본주의는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물리학 운동법칙을 정립한 아이작 뉴턴도 투자 실패를 맛본 뒤 "별들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쌓아 온 아픈 경험은 앞으로의 위기를 이겨낼 원동력이다. 이제는 더 이상 불확실성이 뱅크런으로 번지도록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팬데믹 이후 금융 불안의 현주소를 점검해보고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백신을 찾아본다.<편집자주>
뱅크런이 결국은 금융시장의 불안에 더해 경제·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이 더해질 때 불거진다는 세계 석학의 지적은 최근 실제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이른바 카카오 먹통 사태가 일자 뱅크런이란 단어가 튀어 나왔고, 베트남에서는 부패와 연루된 대형 은행이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에 직면했다.
금융권에서는 뱅크런을 막기 위해선 시장의 안정적 관리를 기본으로 하되, 외부의 심리적 공포가 금융권에 퍼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전 사회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달 15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SK 판교캠퍼스에서 발생한 화재로 카카오톡 등 카카오 계열사 서비스가 먹통이 된 가운데 카카오뱅크에서도 한 시간 정도 지연 현상이 나타났다. 계좌 이체 등 핵심 서비스는 정상 가동됐지만 간편 이체나 모임 통장 친구 초대 등 카카오톡과 관련한 서비스 등에 오류가 생겼다.
이를 계기로 금융소비자들 사이에서 즉각 뱅크런이라는 말이 나온 현실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온라인 상에는 '불안해서 카카오뱅크에 예치했던 돈을 다른 은행으로 이체했다', '뱅크런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등의 내용을 담은 글들이 올라왔다.
문제는 실상 카카오뱅크 서비스에 별다른 장애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뱅크런이란 극단적 상황까지 거론됐다는 점이다. 뱅크런이 실제 상황보다는 불안 심리에 크게 좌우될 수 있다는 측면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카카오뱅크는 전국 3곳에 데이터센터를 분리 운영하고 있어 사고 당일에도 자체 시스템은 이상 없이 돌아갔다.
최근 뱅크런이란 표현이 등장한 또 다른 케이스는 베트남에서 나왔다. 이번 달 중순부터 베트남 5대 은행 중 하나인 사이공상업은행(SCB)의 전국 각 지점에 수많은 고객이 예금을 인출을 위해 몰려든 것이다.
이는 지난 8일 베트남 공안이 회사채 불법 발행으로 거액을 챙긴 사기 혐의로 부동산 재벌인 쯔엉 미 란 반팃팟그룹 회장 등을 체포하면서 촉발됐다. 이를 두고 반팃팟그룹과 SCB 사이에 확인되지 않은 연관성 루머가 돌았고, 끝내 뱅크런까지 이어진 실정이다.
베트남에서의 뱅크런 역시 시장 신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영국 컨설팅회사인 팬시언 매크로이코노믹스의 미겔 찬코 아시아 신흥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대다수 베트남 국영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이 특히 낮고, 최근 10년 새 가계부채가 급증했다"며 "이 분야에 대한 신뢰가 여전히 취약한 것은 놀랍지 않다"고 평가했다.
반대로 정부가 뱅크런을 우려한 나머지 무리한 행보를 벌이다 사회적 저항에 부딪히게 된 곳도 있다.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레바논에서는 은행의 예금 인출 제한을 풀어달라는 시위와 함께 폭력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베이루트 중앙은행 앞에선 분노한 시위대가 도로를 막고 건물에 화염병을 던지며 정부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레바논 정부는 최악의 경제 위기로 뱅크런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자, 은행이 예금을 함부로 인출 못하도록 막고 있다. 분노의 대상이 된 은행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레바논은행연합은 지난 4일 성명에서 "금융위기의 근본적 책임은 정부에 있는데 은행이 부당하게 표적이 됐다"며 정부에 국제통화기금과의 협상을 마무리하라고 촉구했다.
이처럼 뱅크런을 둘러싼 일련의 흐름에 깔려 있는 공통점은 대중의 공포 심리다. 금융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는 것과 별개로 사회적 안정이 동반돼야 뱅크런을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금에 넣어 둔 내 돈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은행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불안"이라며 "금융위기와 뱅크런이란 극단적 상황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뱅크런 백신 설명서③]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