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디케의 눈물 ㊷] "쉽게 돈 버는 법 없어" 보이스피싱 모르고 계좌 대여도 '방조죄'


입력 2022.11.17 05:01 수정 2022.11.17 05:01        정채영 기자 (chaezero@dailian.co.kr)

'성명불상자'에게서 돈 전달해주는 일 제안 받아…검찰, 비실명 금융거래 지원한 것

1·2심, 성명불상자의 목적이 탈법행위라고 인식했는지 불분명 '무죄'…대법, 방조죄 성립 '유죄'

법조계 "'그밖에 탈법행위'에 불법환전 포함된다고 본 것…불법환전 자체가 금융실명법 위반"

"파기환송심도 유죄될 듯…쉽게 돈 벌 수 있다? 무조건 의심해야, 계좌·명의 절대 빌려주지 말길"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 ⓒ데일리안 DB

미등록 환전이라고 속아 계좌를 빌려줬는데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에 자신의 계좌가 사용됐다. 그런데 범죄 사실을 몰랐다고 해도 '방조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법조계는 금융실명거래법의 인정 범위가 넓어진 것이라며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범죄에 현혹되면 징역형의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것 자체를 항상 의심해봐야 한다는 조언이다.


15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위반 방조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2019년 1월 A 씨는 '성명불상자'로부터 카카오톡 보이스톡을 한 통 받았다. 성명불상자는 자신이 마카오에서 환전 사업을 한다며 고객이 입금한 돈을 인출해 환전소 직원에게 전달해주는 일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또 하루 6시간을 일하면 월 400만원에서 최대 600만원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제안을 받아들인 A 씨는 일주일 뒤 피해자 B 씨로부터 940만원을 송금받은 뒤 수수료 15만원을 뺀 925만원을 넘겼다가 수사당국에 적발돼 기소됐다. 이 사건의 주범은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의 성명불상자이지만 A 씨가 이 조직의 비실명 금융거래를 지원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A 씨는 수사기관에서 '환전 방식이 이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은행을 이용하면 수수료가 비싸 개인 환전소를 이용한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과 2심은 A 씨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금융실명법 위반 방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A 씨가 자신의 계좌를 빌린 성명불상자의 목적이 금융실명법이 규정한 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는데, 성명불상자의 목적이 탈법행위라고 인식했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법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 씨가 인식한 주범의 고의와 실제 주범의 고의가 불일치하는 것은 방조범 성립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A 씨는 정범인 성명불상자가 탈법행위를 하기 위해 타인(A 씨 자신)의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려고 한다고 인식했음에도 이 범행을 돕기 위해 자기 금융계좌 정보를 제공했다"며 "A 씨가 정범이 목적으로 삼은 탈법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방조 범죄는 성립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제3조 3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불법재산의 은닉 ▲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 ▲강제집행의 면탈 ▲그 밖에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되어 있다.


법원 모습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법조계는 대법원이 이 가운데 '그 밖에 탈법행위'에 불법환전이 포함된다는 것을 확인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 변호사는 "불법환전도 금융실명법에서 말하는 '그 밖에 탈법 행위' 안에 포함된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1·2심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봤지만, 대법원이 탈법 행위 안에 들어간다고 판단한 것은 '그 밖에 탈법행위'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이어 "보이스피싱 조직이 불법환전이라고 속였으나 이 자체가 금융실명법 위반"이라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에이앤랩 신상민 변호사는 "방조범이 방조의 고의가 인정되려면 정범(보이스피싱 조직)이 이런 행동으로 범죄행위를 한다는 것까지 방조범 스스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며 "정범은 고의라고 보는데 방조범에게 인식이 있었나 없었나에 따라 방조범에 대한 결론이 나뉘는 것이다. 그 기준을 더 엄격하게 본 판례"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주의를 기울이면 (불법 행위인지) 알 수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이지 못하고, 최근에는 이러한 수법이 많이 알려졌다"며 "피고인이 (불법행위인지) 의심해봤어야 했다는 측면에서 판단해 보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 대법원이 좀 더 엄격하게 고의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법조계는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의 판단처럼 유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쉽게 돈 벌 수 있는 일'과 '계좌를 빌려줘야 하는 일'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 변호사는 "1·2심이 무죄로 판단했지만, 대법원에서는 유죄로 인정했기 때문에 파기환송심에서는 유죄 판결이 날 가능성이 크다"며 "최근에는 형량이 높아져서 금액이 크거나 피해자 합의가 되지 않으면 2~3년의 징역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식의 수법에 현혹될 수는 있지만,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것 자체를 항상 의심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탈법행위의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불법적 요소가 있는 경우에는 방조범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라며 "계좌나 명의를 빌려주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디케의 눈물'을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정채영 기자 (chaezero@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정채영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