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환경 등 초국경적 사안
'새로운 규칙' 두고 주도권 다툼
"미국이나 중국이 홀로 규칙 만들면
지금보다 더 일방적일 수도"
미국과 중국의 대립각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관련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 대(對) 권위주의 국가'의 블록화 현상이 두드러짐에 따라 신냉전에서 군사적 충돌 시나리오까지 '어두운 미래'와 관련한 담론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다만 경쟁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는 만큼, 미중이 '관리된 경쟁'을 벌이도록 관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미중 경쟁을 양자관계 관점에서 패권 다툼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지만, 양국이 맞부딪힐 수밖에 없는 구조적 여건 역시 간과해선 안 된다는 평가다.
일례로 신기술이나 코로나19처럼 '전례 없는 초국경적 사안'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규칙'의 필요성이 양국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양국이 선을 넘지 않는 경쟁을 벌일 경우, '최선의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잖다는 평가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지난 16일 평화재단 창립 18주년 심포지엄에서 "미중 갈등은 국제정치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갈등"이라면서도 "사실 더 큰 국제정치의 변화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갈등"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여전히 세상은 국가 단위로 나뉘어 있다"면서도 "대부분의 현상은 국가를 넘어선 초국경적인 사안들이 많다. 만약 우리가 앞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국제 시스템을 마련할 수 없다면 굉장히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대국들끼리도 그렇고 국제사회가 모두 협력해야만 (초국경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앞으로 10~20년은 미중 갈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들 또는 국제사회의 도움이 있어야 세계적인 리더십을 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이 향후 10년을 '중대한 시기'로 못 박으며 중국 견제 의지를 밝힌 만큼, 미중 갈등이 상당 기간 심화되겠지만 국제정치가 미중 경쟁 일변도로 흘러가진 않을 거란 관측이다.
전 교수는 "사실 굉장히 많은 영역에서 미중이 합의하고 있는 규칙과 규범들이 있다"며 "향후 리더십 경쟁은 양자 경쟁이기도 하지만, 두 나라가 공히 이끌어가야 할 많은 이슈에서의 규칙을 어떤 식으로 누가 주도하느냐가 핵심"이라고 밝혔다.
비유하자면, 지구라는 정치 공간에서 미중이라는 두 거대 정당이 한국 등 군소 정당을 포섭해 주도권을 쥐려 할 거란 뜻이다.
결국 양국이 세계 각국의 지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군사적 충돌을 삼가는 관리된 경쟁을 벌인다면 '낙관적 미래'도 기대해볼 수 있다 평가다.
실제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대면해 △양국 경쟁이 충돌로 비화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 △양국이 책임감 있게 경쟁을 관리하고 열린 소통 라인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 등을 강조한 바 있다.
전 교수는 미중 경쟁이 "전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고, 또 두 나라가 다른 제3세력 국가들의 희생을 전제로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면, 경쟁의 규칙을 국제사회가 같이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미중이 '더 나은 미래 규칙'이 무엇인지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것은 국제사회에 바람직한 일일 수 있다는 평가다.
전 교수는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만약 지금 미국 혼자 규칙을 제정하고 있다거나 미국이 쇠퇴해서 중국 혼자 규칙을 설정하고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일방적인 규칙이 만들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중 경쟁이 그 자체로 나쁘다기보다 이슈별로 어떤 모습을 띠어야 되는지에 대한 노력을 추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미중 경쟁이 우리 국익과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대외정책을 면밀히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