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 장애…안내 없어 '발 동동'
1금융권 고객 신뢰 책임감 높여야
돈은 신뢰 위에 모여든다. 굳이 외환·금융위기까지 거슬러 가지 않아도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위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급보증을 선 강원도가 '안 갚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도, 시장은 '지방정부조차 돈을 안 갚는다'고 받아들였다. 시장이 마음을 열지 않자 정부가 나서 돈을 풀어야 했다. 이처럼 금융은 신뢰를 먹고 산다.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지난 17일 7시간이 넘도록 '셔터'를 내렸다. 이날 오후 8시20분께 케이뱅크 앱에서 접속 장애가 발생해 그 다음 날 오전 4시께 복구되면서 이용자들이 크게 불편을 겪었다.
인터넷은행의 앱 장애는 시중은행보다 더 치명적이다. 오프라인 지점이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은 앱이 멈추면 은행 전체가 셔터를 내리는 셈이다. 이번 장애는 7시간 넘게 이어지면서 결제와 입출금 거래가 막힌 이용자들이 발이 묶여 피해가 속출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장애가 발생한 시점 이후로 복구가 마무리될 때까지 아무런 공지와 안내도 없었다는 점이다. 앱을 누르면 '접속이 원활하지 않다, 빠른 시간 내 정상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 중이다'라는 문구만 뜰 뿐 원인은 무엇인지, 어떻게 조치 중인지, 어떤 서비스가 이용이 불가한지, 언제쯤 복구가 가능한지 등 상세한 정보 제공이 부족했다.
이용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기사를 검색하며 발만 동동 구르게 됐다. 불안했던 일부 이용자는 직접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케이뱅크 직원이 올린 "해 뜨기 전 복구가 가능하다"는 내용의 댓글을 찾아보며 정보를 자급했다. 고객과 약속을 어기고 문을 닫으면서 일언반구도 없는 일. 시중은행에서는 있을 수 없다. 어엿한 제1금융권 은행이라 부르기엔 황당한 서비스 마인드다.
오히려 케이뱅크와 가상자산거래소 입출금 계좌 제휴를 맺은 업비트가 기민하게 대응했다. 업비트는 사고 시점으로부터 10여 분이 지나자 바로 공지문을 올려 케이뱅크를 통한 계좌 인증과 원화 입출금 서비스, 케이뱅크 실명 입출금 계좌 등록·해지 서비스 등이 일시 중단됐다고 알렸다.
한 달 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 전계열사에 전산장애가 발생했을 때도, 카카오뱅크의 은행업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카카오톡과 연계된 서비스만 장애가 있었을 뿐 자체 앱 에서 이뤄지는 모든 거래는 가능했다. 데이터 백업 시스템을 다중으로 둔 덕분이다.
케이뱅크도 목동 데이터센터와 재해복구센터, 데이터백업센터로 삼중화해 운영하고 있다. 다만 세 곳의 데이터 센터가 있음에도 왜 복구가 늦어졌는지는 아직 '원인 파악 중'이다.
특히 케이뱅크는 최근 4년간 은행권에서 가장 전산 장애가 많았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케이뱅크 전산장애는 총 34건이다.
기술적 결함은 극복할 수 있다. 돈과 시간이 있다면 시스템 능력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객에 대한 마음은 어떤가. 장시간 돈이 묶인 이용자들은 제대로 설명조차 듣지 못해 불안에 떨어야 했다. 온라인커뮤니티에서는 "더이상 인터넷은행을 믿을 수 없어 돈을 모두 뺐다"는 글들도 올라온다. 한 번 떠난 기차는 돌아오지 않는다. 신뢰는 그만큼 무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