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권고에 '눈치'…관치 지적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 지 영업일 기준으로 이틀이 지났지만, 시중은행들의 예·적금 이자율 경쟁은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지난 10월까지만 해도 한은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하자 마자 곧바로 이를 반영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온도차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으로의 과도한 자금 쏠림에 경고음을 내자 서로 눈치싸움만 벌이는 분위기다.
28일 은행권에 따르면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 이번주 수신금리 인상 계획에 대해 검토 중이거나 예정이 없다는 입장이다.
통상적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시중은행도 빠른 시일내 예・적금 금리 인상분에 이를 반영한다. 그러나 케이뱅크가 '코드K정기예금' 금리를 최대 0.5%p 인상한다고 공표한 것 외에는 다른 은행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이날 기준 5대 시중은행의 대표 정기예금 상품들의 1년 만기 상품 금리는 연 4.8~5.1%로 집계됐다. 각각 ▲KB스타정기예금 4.82% ▲신한 쏠편한 정기예금 4.95% ▲하나의 정기예금 5.00% ▲우리WON플러스예금 4.98% ▲NH올원e예금 5.1%이다. 적금은 하나은행의 '급여하나 월복리 적금' 금리가 1년 만기 최고 5.65%로 높은 수준이다.
은행권의 이같은 행보는 역머니무브 현상을 우려한 금융당국의 메시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금융사들에 수신상품의 과도한 금리인상을 자제하라는 경고를 거듭하고 있다. 자금 변동성이 큰 연말에 금융사들이 앞다퉈 수신금리를 올리면, 각종 시장 혼란이 발생하고 대출금리도 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시장 현황 점검회의’에서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확보 경쟁은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업권 내 과당경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전날에는 이복현 금감원장이 수신금리 과당 경쟁에 따른 자금쏠림 최소화를 주문했다.
시장에서는 역머니무브가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한은에 따르면 10월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한 달 동안 56조2000억원이 유입돼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10월까지 은행 수신잔액은 187조5000억원이 늘어나며 지난해 같은 기간(33조원)보다 5배 이상 급증했다.
그러나 금융당국 수장들의 발언을 두고 은행 금리 제도에 직접 개입이 아니냐는 비난도 나온다. 은행권은 ‘이자장사’를 지양하라는 금융당국의 주문으로 지난 8월 은행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를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공시하는 비교공시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금리경쟁에 불을 지핀 후 채 3개월만에 인상 자제로 금융당국의 기조가 바뀌면서 개입이 과도한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조달환경 악화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가계대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높은 금리로 인해 유입되는 과도한 자금은 은행으로써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비용관리 측면에서도 숨통이 트였다는 설명이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금리인상을 자제하라는 메시지가 있었고, 금리를 꼭 올려야 하는 당위성도 없기 때문에 다들 조달상황을 더 보고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금리인상 정점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미국이 내년에도 금리인상을 예고했기 때문에 한은 대응이 불가피한만큼, 은행 금리인상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