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변경은 큰 모험…'SUV 대명사' 쌍용차 브랜드파워 포기
KG모빌리티 연착륙시 KG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도 긍정 효과
"관건은 후속조치…적극적 신차 투자로 단일 모델 의존 한계 벗어나야"
쌍용자동차의 새 수장이 된 곽재선 KG그룹 회장이 사명에서 ‘쌍용’을 떼고 ‘KG모빌리티’로 전환할 것을 선언한 가운데, 그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곽재선 KG그룹 회장은 지난 21일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서울에서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2022 자동차인 시상식’에서 “사명 변경 여부를 놓고 엄청난 고민을 한 끝에 쌍용차의 장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시에 새로운 이름으로 가기로 결정했다”면서 “올해 주주총회를 통해 사명을 ‘KG모빌리티’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KG그룹이 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과의 통일성을 갖추기 위해 사명에 KG를 붙이면서도 30년 넘게 다져온 쌍용차의 브랜드 파워와 팬덤층을 감안해 ‘쌍용’도 유지하는 ‘KG쌍용모빌리티’라는 절충적 사명을 택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곽 회장은 쌍용을 과감하게 떼고 KG모빌리티라는 새 사명을 택하면서 그룹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쪽을 택했다.
이같은 결정에는 쌍용차 회장으로서가 아니라 KG그룹 회장으로서의 시각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34년 쌓아온 브랜드 파워 포기…생소한 KG모빌리티 브랜드로 바닥부터 다져야
쌍용차 자체만 놓고 보면 사명 변경은 큰 모험이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B2C(기업 대 소비자) 기업에게 있어 브랜드 인지도는 매우 중요하다.
쌍용차에 붙은 여러 애증의 꼬리표가 있지만, 1988년 출범 이후 34년간 쌓아온 브랜드 파워는 큰 자산이다. SUV 시장에서 다져온 팬덤층도 무시할 수 없다. 곽 회장 스스로도 쌍용차라는 이름에 팬덤층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우리나라에서 쌍용차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면 KG모빌리티라는 브랜드는 밑바닥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심지어 그룹의 상징인 KG조차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물론 사명을 바꾼 사례가 없진 않다. 곽 회장은 이날 시상식에서 “송호성 사장이 기아자동차에서 기아로 사명을 변경한 게 혁신이라고 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기아는 자동차 외에 PBV(목적기반모빌리티)나 UAM(도심항공모빌리티), 로보틱스 등 다른 모빌리티 분야로의 확장성을 위해 사명에서 ‘자동차’를 뗐을 뿐 1952년 탄생해 70년간 이어온 ‘기아’라는 브랜드를 버리진 않았다. 34년 된 ‘쌍용’이란 이름을 버리고 생소한 ‘KG’를 붙인 KG모빌리티와는 상황이 다르다.
LG와 같은 대기업도 지난 1995년 럭키금성에서 이니셜로 사명을 바꾼 뒤 브랜드를 안착시키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 비용을 투입했다. 당장 경영정상화가 시급한 쌍용차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그동안 ‘쌍용차’라는 이름으로 진행해 온 각종 브랜드 마케팅부터 원점에서 새로 시작해야 함은 물론, 앞으로 생산‧판매되는 자동차에서 새로운 로고를 붙여 판매하면서 소비자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오랜 시간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쏟아낸 노력도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유럽과 남미 등에서 이제 겨우 ‘쌍용차’라는 브랜드를 알리며 수출이 살아나고 있는 와중에 KG모빌리티라는 생소한 이름을 달게 된다면 수출에도 차질이 커진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사명에서 ‘자동차’를 떼고 모빌리티를 붙이는 것은 모빌리티의 범위가 확장되는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감안하면 순리에 맞다”면서도 ‘쌍용’을 버리고 KG라는 사명을 내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불확실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쌍용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SUV의 대명사라는 이미지도 있고, 타원형으로 S자를 형상화한 엠블럼도 평가가 좋다”면서 “사명을 바꾸면 이런 것들을 다 버려야 하는데, KG라는 이름을 넣어서 부각시키는 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KG모빌리티 중심축으로 KG그룹 전체 브랜드 파워 상승 견인 전략
이처럼 사명 변경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KG모빌리티가 이런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경영정상화를 넘어 완성차 업체로 국내외에서 높은 위상을 구축한다면 KG그룹 전체가 수혜를 입을 수 있다.
KG그룹은 곽재선 회장이 경기화학(현 KG케미칼)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의 M&A(인수합병)를 통해 성장시킨 기업집단이다. 웅진패스원(현 KG에듀원), 동부제철(현 KG스틸), KFC코리아, 할리스커피(현 KG 할리스 F&B), HJF(현 KG프레시) 등 M&A로 합류한 다양한 업종 기업들과 이데일리, 이데일리M 등 언론사까지 포진해 있다.
단일 계열사들만 놓고 보면 기업 규모 면에서 딱히 그룹의 중심축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고, 계열사간 사업 연계성도 느슨하다.
하지만 KG모빌리티가 완성차 업계에서 제대로 된 입지를 확보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KG 로고를 단 자동차가 연간 10만대 이상씩 팔리고, 그렇게 매년 판매된 수십만 대의 차가 도로를 달린다면 KG그룹 전체에 가져올 브랜드 마케팅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KG모빌리티라는 사명을 택한 것은 쌍용차 자체의 득실보다는 KG그룹의 브랜드 통합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완성차 기업에 KG라는 브랜드가 붙으면서 KG그룹 전체의 브랜드이미지와 인지도가 높아지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KG모빌리티가 KG그룹의 중심축이 됨과 동시에 KG 브랜드를 달고 있는 다른 계열사들의 브랜드파워까지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KG그룹 전체를 이끌고 모든 계열사들을 성장시켜야 하는 곽재선 회장으로서는 다소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결과가 성공적이라면 얻을 게 많은, 이른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고위험 고수익)의 도전인 셈이다.
결국 곽 회장은 앞으로 KG그룹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 위해서라도 KG모빌리티의 경영정상화와 재도약에 사활을 걸어야 할 상황이다. 그만큼 적극적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
김필수 교수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쌍용이라는 이름을 버린 KG모빌리티의 성공 여부는 후속조치가 어느 정도 되느냐, 신차 개발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투자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한 개의 단일 모델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는 구조를 벗어날 수 있도록 과감한 신차 투자가 이뤄져야 이번 변화가 성공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