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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 카레 포장지에 달러 밀봉…'007작전' 방불케 한 '쌍방울 대북송금'


입력 2023.02.13 11:09 수정 2023.02.13 11:14        황기현 기자 (kihyun@dailian.co.kr)

검찰, 2019년 北에 800만 달러 전달 과정 상세하게 김성태 공소장에 적시

이재명 '방북비용' 대납 300만 달러, 3주 걸쳐 쌍방울 임직원 수십명 통해 중국 선양 밀반출

화장품 케이스, 책 등에 달러 숨겨…선양공항 화장실서 방용철 쌍방울 부회장에게 전달

방북비용 대납 시점, 경기도지사 직인 찍힌 방북요청 공문일자와 일치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지난달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 검찰 수사관에게 체포돼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 데일리안 김민호 기자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북한에 800만 달러 이상을 송금한 과정이 흡사 '007작전'을 방불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쌍방울 임직원들은 각자 받은 달러를 화장품 케이스는 물론 알루미늄 재질의 즉석 카레 포장지 등에 숨겨 세관의 감시를 피하려고 했다고 김 전 회장 공소장에 적시됐다.


13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소된 김 전 회장 공소장에는 쌍방울이 2019년 한 해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아태위)의 송명철 부실장 등에게 800만 달러를 전달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적시됐다.


이 가운데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방북 초청비용 명목으로 김 전 회장이 대납했다는 300만 달러는 2019년 11월 27일부터 12월 18일까지 약 3주에 걸쳐 그룹 임직원 수십 명을 통해 중국 선양으로 밀반출됐다. 이들은 각자 받은 달러를 화장품 케이스와 책 등에 숨겨 출국한 뒤 선양공항 화장실에서 대기하던 방용철 그룹 부회장이나 직원에게 전달했다. 알루미늄 재질의 즉석 카레 포장지에 달러를 밀봉해 세관 감시를 피하려는 시도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방북비용 대납' 시점은 경기도지사 직인이 찍힌 방북요청 공문일자와 일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도는 2019년 11월 27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직인이 찍힌 '민족협력 사업 협의와 우호증진을 위한 경기도대표단 초청 요청' 공문을 시행했는데, 공문 말미에 "도지사를 대표로 하는 경기도 대표단의 초청을 정중히 요청하는 바이며, 우리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귀 위원회의 헌신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수신처는 조선아태위 위원장, 결재선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전결이었다.


검찰은 공소장에 김 전 회장이 방북비용을 대납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썼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7월 필리핀에서 개최된 제2회 아태평화 국제대회에서 조선아태위 이종혁 부위원장, 송명철 부실장 등을 만나 남북경제협력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이때 "이재명 지사의 방북을 성사시키려면 300만 달러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받고, 이화영 등 경기도 관계자와 상의한 뒤 비용을 전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공소장에는 또 경기도가 2018년 10월 북한과 합의한 남북교류협력사업 중 '농림복합사업' 비용으로 500만 달러를 대납한 경위도 적시됐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1월 23~24일과 같은 해 4월 두 차례에 걸쳐 외화를 북한으로 밀반출했는데, 1월 대북 송금 당시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이 등장한다. 검찰은 안 회장이 1월 북한으로 보냈다는 200만 달러 중 50만 달러에 관여했다고 의심한다. 전직 아태협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안 회장이 50만 달러 중에서 7만 달러는 2018년 12월 말 쌍방울그룹 계열사에서 아태협 후원 계좌로 받은 3억원 중 8000만원(7만 달러)을 인출해 달러로 바꾼 뒤 직접 평양에 들어가 조선아태위에 전달했다"며 "나머지 43만 달러 중 14만 5000달러는 '쪼개기' 환전해서 옮긴 것이고, 환치기로 180만 위안(약 3억 3000만원)을 중국에서 받아 그날 저녁에 바로 송명철에게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방북 비용 대납을 위해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던 칼라스홀딩스 법인에서도 자금을 만들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2019년 4월 경기도 스마트팜 사업 대납 비용으로 300만 달러를 만들 당시 김 전 회장의 전 매제이자 '금고지기'로 불리던 김모 재경총괄본부장이 관여했고, 이 돈을 마카오로 밀반출한 뒤 송명철 부실장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지난 11일 도피 생활 8개월여 만에 태국에서 귀국한 김 전 본부장에 대해 12일 오후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상태다. 김 전 본부장은 오랜 국외 도피에 피로감을 호소하다 최근 김 전 회장이 "국내로 돌아와 사실대로 진술하라"고 지시하자 귀국을 결심했다고 한다.

황기현 기자 (kihyu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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