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주주환원정책으로 주가 부양·배당 확대 기대감
자사주 전량 소각 배경은 '이재용 체제 굳건' 자신감 발로
사업포트폴리오 확대로 '뉴삼성물산' 드라이브 본격화
삼성물산이 3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기로 했다. 자사주가 대주주 경영권 방어를 위한 '방패'로 주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결정이다. 앞으로 5년간 연평균 6000억원의 삼성물산의 주식을 태워도 이재용 체제가 굳건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은 이번 결정을 통해 고강도 주주환원정책 마련, 기존 사업 강화 및 신사업 발굴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주가 부양과 배당 확대에 따른 총수 일가의 상속세 재원 마련도 한층 수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15일 이사회를 열고 보통주 2471만8099주(13.2%), 우선주 15만9835주(9.8%)의 자사 주식 전량을 5년 내 분할 소각하기로 결의했다. 시가 3조원 규모다.
삼성물산은 "안정적 주주환원 기조를 유지하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보유 자사주 전량을 분할 소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은 그간 삼성물산이 자사주 처분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던 점에서 파격적이라는 평가다. 삼성 지배구조의 정점에 자리한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지주사 역할을 수행해왔다.
삼성 지배구조는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삼성물산 지분 31.31%를 보유하고 삼성물산을 통해 다른계열사를 지배하는 '총수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구조로 이뤄져있다.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를 직접 지배하지 않고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통해 간접 지배하는 형태다.
지배구조의 핵심에 있다보니 주주들의 주주가치 제고 요구에도 삼성물산은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자사주는 그 자체로 의결권은 없지만, 경영권 분쟁 발생시 우호 세력에 넘겨 우호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기업들은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카드 중 하나인 자사주 소각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삼성은 글로벌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엘리엇으로부터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반대, 2016년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 등의 요구를 받으며 여러 차례 위기에 휩쓸렸다. 이같은 리스크를 감내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던 삼성물산이 3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모두 처분키로 한 것은 그만큼 경영환경이 우호적으로 바뀌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10월 이재용 회장 시대가 열리면서 대내외적으로 안정적인 경영체제를 구축하게 됐다는 자신감이 이런 판단을 가능케 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겨냥한 외부 공격에도 충분한 방어가 가능하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주주가치 제고·사업포트폴리오 확대…'뉴삼성물산' 드라이브
삼성물산은 오랜 기간 요청된 주주가치 제고와 더불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계기도 마련하게 됐다.
자사주를 소각하게 되면 유통주식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주당순이익(EPS)이 증가한다. 자사주 매입, 배당 보다 강력한 주주환원정책으로 꼽힌다.
배당정책은 유지한다. 삼성물산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 3년간 관계사 배당수익의 60~70% 수준을 주주들에게 배당하기로 했다. 최소 주당 배당금은 2000원이다.
강력한 주주환원정책을 통해 소액주주와 기관투자자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과 동시에 사업 포트폴리오도 확대한다. 삼성물산은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기반으로 재원 대부분을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사업구조 고도화에 쓰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태양광, 수소, 소형모듈원전(SMR), 배터리 리사이클링 등 친환경 에너지 분야 사업을 확대한다. 바이오 프로세싱, 의약품 개발/연구 수탁, 차세대 치료제 분야에 투자한다. 바이오/헬스케어 분야도 검토 대상이다. 이같은 차세대 유망 분야 발굴에 최대 2조원을 투입한다.
기존사업 경쟁력 강화에도 2조원을 투자한다. 삼성물산은 건설, 상사, 패션 중심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사업 고도화를 위해 차세대 건설 기술/ENG 역량을 확보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지배주주일가 지분율 38.9%로 상승…상속세 재원 마련 도움될 듯
주주환원정책은 '뉴삼성물산'으로의 탈바꿈을 의미하는 것 뿐 아니라 총수 일가의 상속세 재원 마련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이재용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매년 수 천억원의 상속세를 납부하고 있다. 상속세 부담이 많게는 3조원에 달해 삼성 일가는 지분 매각, 신용대출, 배당소득 등을 활용하고 있다. 다만 이 회장은 아직까지 보유주식을 매각하거나 주식담보대출을 실행한 적이 없다.
삼성물산의 주주환원정책 골자인 주가 부양·배당 확대가 이뤄지면 최대주주인 이재용 회장으로서는 앞으로 보유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거나 늘어난 배당금으로 현금 유동성을 더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이재용 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18.3%다. NH투자증권은 "지배주주일가 지분은 기존 33.8%에서 38.9%로 5.1%p 상승한다"고 설명했다.
강력한 주주환원정책 약속으로 삼성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시선도 개선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생명법'이라고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다. 결과적으로 이 회장 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낮아 지배력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로 꼽혀왔다.
이번 주주환원정책은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를 훼손하지 않는 방향에서 주주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삼성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 확대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