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영향 지향하지만, 부작용도 빈번
2017년 개봉한 '브이아이피'(VIP)는 충무로의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박훈정 감독과 장동건, 김명민, 이종석 등 배우들이 의기투합한 기대작이었지만, '여혐'(여성 혐오)에 발목 잡혔다. 북한 로열패밀리의 아들 김광일(이종석 분)의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미성년자 여성이 나체로 여러 명의 남자에게 고문을 당하는 장면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는 곧 여성이 자극적인 장면의 도구를 사용 혹은 피해자로 그려진다면서 여성 혐오, 평점 테러로 확산됐다.
'브이아이피'에서 여성이 범죄의 대상으로 선택된 건, 실제 여성에 대한 범죄율이 높은 이유와 밀접하다. 성적으로 쉽게 대상화되며 하루에도 사회면에 여성들이 피해자가 된 사건 사고가 오르내린다. 현실을 반영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지만, 악행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트리거가 됐다. 결국 박훈정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라며 사과했다.
직장 내 성추행 폭로 미투(MeToo), 강남역 화장실 사건 등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문화 콘텐츠를 바라보는 젠더 감수성의 허들이 높아졌고 논란이 실제 흥행까지 영향을 미치자 업계에서는 'PC주의보'가 떨어졌다.
사전에 정치적 올바름을 거스르는 요소가 있는지 내부적으로 신경 써서 검열하기 시작했고, 성 평등을 요구하는 벡델 테스트는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이후 박훈정 감독이 신인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전면으로 내세운 '마녀' 시리즈를 연출하고, 누아르 영화 '낙원의 밤'의 재연(전여빈 분) 캐릭터를 세심하게 다룬 건 우연만은 아닌 것이다.
한국에서의 조선족 혐오와 외국인 혐오가 드러나 문제가 된 작품도 있었다. '범죄도시'는 조선족을 잔인한 조직폭력배로 묘사했고, '신세계'와 '황해'는 조선족을 청부 살인범으로 등장시켰다.
특히 2017년 개봉한 ‘청년경찰’은 대림동을 강도·납치를 비롯해 장기 밀매, 난자 적출 등 강력 범죄의 소굴로 묘사했다. 특히 대림동을 향해 "이 동네 조선족들만 사는데 밤에 칼부림도 많이 나요. 여권 없는 범죄자들도 많아서 경찰도 잘 안 들어와요. 웬만해선 길거리 다니지 마세요" 등의 대사로 중국 동포들의 분노를 샀고, 상영중지 가처분 신청과 1억 원의 손해배구 청구 소송을 당했다.
3년이 지난 2020년 3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9-2부(정철민 부장판사)는 중국 동포 김 모 씨 외 61명이 영화 청년 경찰 제작사 무비락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제작사는 중국 동포들에게 사과문을 전달하며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예술 작품 속 혐오 표현에 법적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로 재현의 윤리 문제에 대해 다채롭게 고민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됐다.
정치적 올바름(PC)는 평등한 사회와 정의에 근원을 두고 있어 사회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부작용도 존재했다. 젠더 이슈, 소수자 차별 등의 문제를 두고 이를 지적하는 이들을 '프로 불편러'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를 도덕적 우위에서 상대를 짓누르려는 태도와 자기를 과시하는 사람들의 갑론을박이 따라 붙었다.
시행착오와 개선을 반복한 끝에 2022년 정치적 올바름을 세심하고 흘러넘치지 않게 잘 다듬은 작품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등장했다. 작품이다. 자폐스펙트럼을 앓고 있는 여성 변호사 우영우가 사건을 해결해나며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우리 사회는 어떤 가치를 향해 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흥행하자, 유튜브에는 자폐인의 현실과 드라마의 차이를 비교하고 리뷰하는 영상들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장애인들이 받는 실직적인 처우와 한국 사회의 이면들도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오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좌파 드라마’, ‘페미 드라마’라는 별칭을 붙여가며 여론몰이를 시도했다. 사이버렉카 유튜버 뻑가는 우영우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엮기 시작했다. 우영우가 고래에 집착하는 것은 박원순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돌고래를 자연으로 방사했던 것을 연상시키며, 문지원 작가의 학력을 두고 ‘박원순이 만든 대안학교 출신이라는 등 억측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