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형배, 혁신행동과 '대의원제 폐지' 요구
이재명 만난 원외위원장들도 동감 표명
비명계 중심으로 '강성 팬덤' 영향력 확대
우려 커져…이재명은 "본격 이야기해야"
2021년 5·2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 코인 게이트 등으로 수세에 몰렸던 친이재명(친명)계가 대의원제 폐지 요구를 걸고 전면 반격에 나섰다. 대의원제 철폐로 친명이 주축인 권리당원들의 영향력이 강화된다면 이재명 대표의 당권이 더욱 공고해질 수 있어, 대의원제 폐지 요구는 당권파의 비이재명(비명)계를 겨냥한 본격적인 역공 움직임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22일 민주당 혁신행동과 함께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로 설치될 혁신기구가 당원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고 당원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행동에는 조상호 법률위 부위원장과 김현정 원외위원장협의회장, 남영희·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 박진영 전 상근부대변인 등 원외 친명계가 포함됐다.
이들은 대의원제 폐지와 선출직 중앙위원 컷오프제 폐지 등을 요구했다. 명분상으로는 대의원이 행사하는 1표가 권리당원 60표에 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를 개편해 표의 등가성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가 관철되면 권리당원들의 영향력을 높아지므로, 소위 '당원 중심 정당'을 만들겠다는 주장이다.
또 58명의 민주당 원외위원장들도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이재명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대의원 제도 폐지 요구에 가세했다. 김현정 원외지역위원장협의회장은 이 자리에서 "당 혁신 주체는 원내 의원만이 아니다. 혁신 기준은 국민과 당원이 돼야 한다"며 "지금 민주당의 내부는 어떠한가. 과연 국민과 당원 지지자의 절박한 외침에 부응하고 있나. 낡은 기득권 이미지로는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주장은 새롭지는 않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의원제 폐기 개혁의 길로 가야 한다. 정당 민주화의 핵심"이라며 "당 대표도 한 표, 대의원도 한 표, 당원도 한 표인 민주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또 앞서 민 의원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김용민 의원, 11개 민주당 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대의원제 폐지를 위한 당헌당규 개정을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김용민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아직까지 1인 1표 평등선거의 원칙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는 평등선거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매우 비민주적인 관행"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대의원제의 개편 또는 폐지를 주장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소수인 대의원이 행사하는 표의 반영 비율이 다수인 권리당원과 같지 않아서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 당직자, 지역 핵심당원 등으로 구성된 민주당 대의원은 현재 약 1만6000명으로 추산된다. 6개월간 월 1000원씩 당비를 낸 당원들로 구성된 권리당원(약 120만명)의 1% 수준이다.
하지만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투표 반영 비율은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다. 이에 대의원 1명의 표가 권리당원 60명 표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대의원제 폐지를 경계하는 당내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친명계가 대의원제 개편을 주장하고 있는 속내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전당대회 돈봉투·김남국 코인 사태'로 '이재명 체제'의 구심력이 약해진 이 때 대의원제 폐지 주장을 대대적으로 들고나오는 것은, 친명계 권리당원의 영향력을 강화해 이재명 대표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현 지도체제를 더 길게 유지하려는 의도가 담긴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선 친명계가 이재명 대표의 사당화를 위해 이같은 주장을 내놓는 것이 아니냐고까지 바라본다.
표의 등가성 문제만 놓고 보면 친명계의 대의원제 개편 주장은 일응 타당해보인다. 그러나 속내에는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다. 가장 큰 우려는 대의원제가 개편돼 권리당원의 영향이 확대된다면 이재명 대표 개인의 입김이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대거 유입된 신규 권리당원 중에서는 당이 아닌 이재명 대표 개인 지지자들이 적지 않다. 이재명 대표 팬카페인 '재명이네 마을'에서 대의원제 폐지 요구가 이어지는 것과 맞닿은 맥락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물론 권리당원 모두를 강성이나 친명이라고 볼 순 없지만 갑작스런 영향력 확대로 인해 이재명 대표에게 엄청난 힘이 쏠릴 수도 있다"며 "대의원제 폐지에 우려를 표명하는 이유는 표의 등가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 대표의 사당화를 막기 위한 하나의 조치"라고 말했다.
두 번째 우려 역시 이 대표의 영향력 강화와 맞닿아있다. 민주당은 지난 8일 내년 총선 공천룰을 담은 특별당규 제정안을 확정했다. 해당 당규 제정안엔 '국민 50 대 당원 50'의 기존 국민참여경선 원칙의 시스템 공천 기조가 유지되는 내용이 담겼다. 공천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기대했던 권리당원 입장에선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친명 색채를 띤 권리당원들은 이번 공천에서 '친명' 의원들에게만 표를 몰아줘 원내 구성을 '친명 일색'으로 채우려는 구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미 특별당규 제정안이 확정되면서 기존 비명계 의원들에게 유리한 판이 꾸려진 만큼, 대의원제 폐지를 통해 우선 권리당원의 영향력을 확대해서라도 친명에게 유리한 총선 판도를 만들겠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이에 당내 비명계 의원들은 대의원제 폐지를 우회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친명 색채를 띤 강성 지지자들의 영향력 확대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코인 사태에서 비친 민주당의 모습은 국민들 눈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닮아도 참 많이 닮아 보였다"며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윽박지르고 민주당의 쇄신을 외친 청년 정치인을 '8적' '수박'이라며 좌표찍기와 문자폭탄을 퍼부었다"고 꼬집었다.
이제 당내의 눈길은 이재명 대표 본인에게로 쏠리고 있다.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 올라온 '대의원제 폐지' 요구 청원에 동의한 당원이 5만명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청원글은 게시 후 30일 내에 권리당원 5만명 이상 동의를 받으면 당 차원에서 답변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관계자는 "아직 이 대표와 지도부 차원에서 공식적인 답변이 나온 것은 없다"고만 답했다.
하지만 이날 이재명 대표와 원외지역위원장들과의 만남에서 이 대표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발언이 나오면서 향후 어떤 답변이 나올지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당 원외지역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이제 민주당의 당내 민주주의 확보, 정치개혁, 정치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면서 대의원제 폐지에 힘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