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경찰 억울하겠지만 신고자가 신고 철회한 만큼…피신고자 감정 자극할 필요 없어"
"특별히 수상한 점 없다면 불심검문 할 상황 아냐…주민번호 불러줬고 CCTV 있어 신원 확인 가능"
"CCTV 영상에서 폭행 흔적도 보이지 않아…경찰 공권력 집행, 주어진 상황 속에서만 진행돼야"
"신분증 던지고 경찰 밀친 행위? 비상식적이지만…경찰 오해로 발생한 가벼운 다툼이자 정당방위"
폭행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신분증 제시 요구에 불응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40대 남성에게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법조계에서는 신고자가 신고를 철회했고 피신고자가 순순히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줬기에 경찰의 신분증 제시 요구가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다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경찰관이 멀쩡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았을 때 일어난 가벼운 몸싸움에 대해서는 대부분 '정당방위'로 판단돼 무죄가 나온다고 입을 모았다.
8일 울산지법 1-3형사부(재판장 이봉수 부장판사)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A 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A 씨는 2021년 6월 울산 동구의 한 상가 인근에서 "아는 오빠한테 맞았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며 욕설과 함께 가슴 부위를 때리고 밀치는 등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신고자는 울고 있었지만 "아무 일 없으니 돌아가라"며 신고 철회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경찰관은 때마침 현장에 나타난 A 씨를 가해자로 추정해 신분 확인을 요구했다. 이에 A 씨는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줬지만 경찰관은 신분증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신분증을 바닥에 집어던졌으며 또 자신을 압박하듯 신분증을 요구한 경찰관의 신체를 밀쳤다.
법무법인 정향 이승우 변호사는 "재판부는 '경찰이 공무집행 중이 아니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판결한 것 같다. 경찰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부분이 있겠지만 재판부 판단이 타당하다고 본다"며 "신고자가 신고를 철회한 만큼 출동 경찰이 굳이 무리해서 피고인의 감정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 변호사는 "경찰 입장에서는 신고자가 계속 울고 있었다는 점에서 피고인의 신분을 확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는 있다"면서도 "재판부는 경찰관이 지나치게 강압적으로 집행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 공무집행방해죄의 인정은 까다롭게 판단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변호사는 "물론 최근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이런 판결에 따라 경찰의 공무집행이 위축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있다"며 "결국 이번 판결 또한 공권력의 집행과 가해자의 인권 사이에서 기준을 세우기가 쉽지 않은 수사 기관과 사법부의 고민을 보여주는 판결"이라고 부연했다.
법무법인 우면 김한수 변호사는 "경찰관이 출동했을 당시는 범행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112신고도 철회된 상황이었다. 피고인에게 특별히 수상한 점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불심검문을 할 상황은 아니었다"며 "특히 피고인이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줬고 CCTV도 있는 상황이라 신원 확인이 가능했다. 이 점을 고려하면 경찰의 신분증 제시 요구가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다고 판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한일 전문영 변호사는 "CCTV 영상에 폭행 장면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 '무죄' 판결의 핵심 사유로 보인다"면서도 "인권침해가 크지 않은 선에서 경찰의 공권력을 강화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경찰의 집행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만 철저히 진행돼야 한다. 만약 경찰이 아무에게나 신분증 제시 요구를 하고 거부하는 시민을 공무집행방해죄로 엮어버리면 경찰공화국이 돼버린다"며 "신고자가 괜찮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안 괜찮을 수 있으니 확실히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이 경우에는 신고자를 따로 분리해 케어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 곽 변호사는 "피고인이 신분증을 던지거나 경찰관을 밀친 행동은 무례하고 비상식적으로 느껴진다"면서도 "경찰관이 멀쩡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았을 때 일어난 가벼운 몸싸움에 대해서는 대부분 '정당방위'로 무죄가 나온다. 이번 사안뿐만 아니라 대부분 참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