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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민주정


입력 2023.12.11 07:07 수정 2023.12.11 07:07        데스크 (desk@dailian.co.kr)

선동과 선심으로 유권자 유혹

폭민정치의 위험성 여전하다

중앙집권형 정당체제의 악몽

ⓒ데일리안 DB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기록자인 플라톤,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그리스어, “시민에 의한 통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특히 플라톤은 회복된 아테네의 민주정 하에서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고 죽어가던 모습이 뼈에 사무쳤을 법하다. 그는 민중의 통치를 폭민정치(mobocracy)로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상대적으로 민주정에 긍정적이었다. 그는 ‘소수는 다수보다 이익과 호의에 의해 더 부패하기 쉽기 때문’에 민중 통치를 ‘올바른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민주정의 혼란과 부패에 그도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민주정이 타락한 정체를 빈민정치·중우정치(ochlocracy)로 봤다.

선동과 선심으로 유권자 유혹

“페리클레스가 죽자, 시켈리아에서 죽게 되는 니키아스가 저명한 사람들을 대표하였고, 민중의 편에는 클레아이네토스의 아들 클레온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정중하게 말하였으나 클레온은 감정으로 민중을 오도하였으며 처음으로 연단에서 소리 지르고 욕설을 하고 허리띠로 옷을 졸라맨 채 연설을 하였다. 그다음에는 하그논의 아들 테라메네스가 상류층, 리라제조상 클레오폰이 민중의 편에 섰는데, 클레오폰은 처음으로 2오블 수당제를 도입하였다.……클레오폰 이후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을 위하여 큰소리치고 다수에게 선심을 베풀려 하는 사람들이 계속 민중의 지도자가 되었다.”(아리스토텔레스, “아테네 국가제도사”, 최자영‧최혜영 역, “고대 그리스정치사 사료” 재인용).


2천 수백 년 전 사람들의 정치인식과 당시의 정치상황을 핑계 삼아 민주정을 흠집 낼 까닭도 흥미도 없지만, 정치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태도가 어쩌면 이처럼 변화가 없을까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바꿔 말하자면 오늘날 우리가 여기서 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목격하는 상스럽고 무책임한 정치행태가 아득한 옛날 그때의 광장에서도 일상적으로 드러났다.


정치인들이 유권자를 유혹하는 수법도 이미 그때부터 구사되었다. 선동과 선심이다. 사람들은 공직 후보들이 품위 있는 행동과 말, 차원 높은 공약을 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상스럽고 격렬한 언어와 행동에 표를 주는 경향이 뚜렷하다. 선동이 반드시 진실일 필요도 없다. 유권자들은 스트레스를 확 날려주는 말과 행동을 원할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정치쟁이들이 우리 정치언어를 오물의 구덩이로 던져 넣으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배짱이 그 같은 계산에서 나온다.


(아마도) 현직 대통령의 부인을 겨냥해 ‘암컷’이라고 예사로 말하는 전직 의원의 천박한 말버릇이, 배운 게 없어서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변호사에다 대통령 참모를 지낸 사람이다. 계산이 분명하기 때문에 천민적 말투를 오히려 자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인간으로서의 품격 같은 것은 이미 포기된 지 오래다.

폭민정치의 위험성 여전하다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상임위 회의 중임에도 스마트폰에 코를 박듯이 하고 코인 거래에 빠져들었던 의원의 심리 또한 다를 바 없다. 공직자로서의 의무감이 아니라 돈이 말하는 한국 정치판의 생리를 초선이면서 이미 꿰뚫고 있었다는 뜻이다. 설령 윤리의무 위반으로 걸리더라도 비판은 일시적 바람에 불과할 것임도 국회 분위기로 터득했다. 당 차원의 진상조사와 윤리감찰이 진행되는 와중에 잽싸게 탈당해 버렸다. 당의 징계는 자칫 공천 배제로 이어질 수 있지만 국회윤리특위에서 제명 징계는 없을 것임을 내다본 피신이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의원 징계안을 53건이었다. 이 중 1건,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에 대한 징계안은 민주당이 윤리특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회의에 회부해 통과시켰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처리한 국회 법사위 회의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30일 국회 출석정지가 가결됐으나 효력정치 가처분 신청 등으로 흐지부지되었다. 국회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제명의결을 낸 민주당 윤미향·김남국,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을 비롯한 나머지 52건은 국회윤리특위 계류 중이다. 이 징계안들은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다. 이게 국회의 집단이기주의‧보신주의이고 타락한 윤리의식이다.


검수완박 법안을 다룰 때 민주당의 민형배 의원은 꼼수 탈당을 통해 안건조정위의 제1교섭단체(민주당) 몫을 공공연히 늘려 놨다. 최대 90일까지 활동이 가능한 안건조정위가 성립 17분 만에 종료됐다. 차기 국회의장으로 내정돼 있던 김진표 의원이 위원장으로서 폭거를 지휘했다. 민 의원은 ‘꼼수탈당’이라는 비난에 당당하고 강력하게 반발했으나 후에 복당해서 맹렬히 이재명 당 대표의 방패역할을 하고 있다. 남이 뭐라 하든, 국회의 격을 어떻게, 얼마나 떨어뜨리든 당의 보스와 집단에 대한 충성심만 인정받으면 된다는 계산이 이들의 거의 유일한 동인(動因)이라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이 대표를 옹위하면서 소속의원들과 당원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세력이 ‘개딸’이다. 처음엔 ‘개딸’(개혁의 딸), ‘양아들’(양심의 아들)로 나눠 부르더니 언제부터인가 개딸로 통일됐다. 줄여 부르기가 유행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하필이면 ‘개딸’일까 해서 개탄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이 대표와 당사자들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서로 딸, 아빠를 자처하며 찰떡궁합을 과시해 왔다.


TV 드라마에서 착안했든, 처음부터 ‘개혁의 딸’을 줄여 부르기로 했든 “개딸이 뭐 어떤데?”라는 반발심이 읽히는 작명이다. 이 대표와 그 극렬지지 세력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명칭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부정적 의미에서다. 뒤늦게 그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개딸 창시자’ ‘재명이네 마을 개설자’를 자처하는 박 모씨 등 강성지지자들 일부가 ‘개딸’ 명칭 포기를 선언했다. 프레임 선동을 더 이상 참지 못해서라고 한다.

중앙집권형 정당체제의 악몽

자기들이 개딸 포기를 선언했으니 당 소속 의원과 당원들은 물론이고 언론에 대해서도 이렇게 부르지 말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원’ 또는 ‘민주당 지지자’로 부르라며 ‘개딸’의 이름으로 부정적 프레임화를 계속한다면 “허위. 날조, 선동하는 기사와 기자로 확인하고 낙인찍겠다”라는 것이다. ‘개딸’의 프레임이 주던 이미지 그대로가 아닌가.


내년 4월 10일에 실시될 22대 총선을 앞두고 주변정리를 하려는 모양인데, 그쪽 예언자의 말로는 ‘압승’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총감독 혹은 총연출(같은 표현인가?) 행세를 하는 이해찬 전 당 대표가 이번에도 ‘예언’을 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6일 당 행사에서 “1당을 뺏길 것 같지는 않다”며 “단독 과반을 넘기느냐, 아니면 지난 총선처럼 180석을 먹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20년 집권론, 50년 집권론을 설파(?)했다가 실패했으면 창피를 알아야 할 텐데, 다시 예언자로 나섰다. 아마도 민주당 내의 상왕직을 내놓기 싫은 모양이다.


이미 민주당은 대의민주제의 파탄이 어떤 것일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대통령이 독재정치를 한다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실제로는 입법농단에 재미를 붙인 세력이다. 탄핵소추권, 임명 비토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정권을 놓치고 야당이 된 지 1년 7개월여가 지났지만, 오히려 기세는 갈수록 오르고 있다.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이 대표는 거대정당을 한 손에 틀어쥐고 권력자 행세에 취해 있는 모습이다. 그와 그의 당, 그리고 추종세력이 대통령과 정부 및 여당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언어에는 한계가 없다. 그들의 모든 말이 면책특권이나 언론자유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대통령은 비난은커녕 정당한 비판의 말도 극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발언의 감옥에 갇힌 처지다. 장관들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대의민주제는 진지하고 품위 있는 언행을 특성으로 할 것이 기대됐었다. 국민의 대표가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국사를 논의, 결정하는 형식의 정치체제로서 구상되고 실천되었기 때문이다. 그 우애롭고 조화로운 의회정치는 어디로 가고 말았는가.


내년 총선은 의회정치를 정상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어느 정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든 폭민정치 중우정치 행태가 답습되지 않게 제도의 대혁신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 부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등이 운위되고 있지만 정당의 정파적 욕구에 대한 제어장치도 고안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국회의 문제는 의회제 자체에 내재된 것보다는 정당에 의해 초래되는 부분이 훨씬 크다. 거대 권력기관화한 중앙당 중심제의 해체가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다. 민주당에만 해당되는 병폐가 아니다. 국민의힘도 같이 앓고 있는 병이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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