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시 중증정신질환자 수 9만4200여 명…제대로 등록되지 않은 환자도 많을 것
의료계 "정신병원 입원규정 까다로워…정신과 의사 2명이 심사했는데도 심판제도까지 밟아야"
"친권자에 의한 입원 폐지돼야, 보호자들에게 부담 떠넘기는 것…국가가 공정 절차 만들어야"
"환자·의료진 법원 출두해 증언하고 입원 결정하는 시스템 개선…외래치료 명령제도 활성화 돼야"
중증정신질환자(CG).ⓒ연합뉴스
중증정신질환을 가진 환자 수가 서울시에서만 9만4000명을 넘어 서울시 전체 주민등록인구의 1% 수준인 것으로 추산됐다. 정신질환자들이 일으키는 흉악 범죄도 빈발하면서 중증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법원이 결정하는 '사법입원제도' 도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사법입원제도가 정착돼야 억지로 가족을 정신병원에 감금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며 "사법입원제도가 입원 당사자의 인권을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1일 서울시 공공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에 등록된 추계중증정신질환자 수는 9만4284명으로 전체 서울시 주민등록인구 942만8372명의 1% 수준이다. 물론 추산 결과인만큼 실제 정신질환자 숫자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증 정신질환자 수가 2021년 기준 65만명이 넘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시에도 제대로 등록되지 않아 실질적인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중증정신질환자는 오히려 9만4284명보다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신질환자의 숫자 못지않게 위험한 것은 '관리되고 있는' 환자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정신병적장애, 분열정동장애, 양극성정동장애, 반복성우울장애 등으로 진단받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된 환자 수는 5477명으로, 전체중증정신질환자수 대비 5.8%에 불과했다.
9만명 가까운 나머지 정신질환자들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되지 않은 상태로, 일반인들 사이에 섞여서 그대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종잡을 수 없는 병세를 보이는 정신질환 특성상 이들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일상 속의 폭탄'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실제로 지난 8월 벌어진 '서현역 칼부림 사건'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정신질환자가 일으킨 범죄였다.
이에 정부는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사법입원제도 도입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사법입원제도는 자신이나 남을 해칠 우려가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법원에서 판사가 결정하는 제도이다. 지금까지는 환자의 자의입원이나 동의입원 이외에 보호의무자에 의해 강제 입원을 할 경우 2명 이상 보호의무자의 신청과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2명 이상 전문의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했다.
중증정신질환자 치료.ⓒ게티이미지뱅크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보호 의무자에 의한 입원 제도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가장 까다로운 입원 규정을 갖고 있다"며 "외국 어느 나라도 정신과 의사 2명이 심사를 했는데도 심사 제도를 뛰어넘은 심판제도까지 있는 나라는 없다. 그러다보니 입원이 필요한 정신질환자들을 입원시키기 어려운 여건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이해국 가톨릭대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친권자 등 보호자에 의한 입원 자체가 폐지돼야 된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생각"이라며 "보호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의미가 아니라 보호자한테 부담을 떠넘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만 행정력을 어떻게 공정하게 운영할 것이냐에 대한 문제이고 그 과정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법입원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공정하게 제대로 된 절차를 국가에서 책임지고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사법입원제도가 정착이 돼야 재산분쟁 등으로 인해 억지로 가족을 정신병자로 몰아 정신병원에 감금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며 "사법입원제도가 입원 당사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태 의료기관 시설이 낙후돼 있거나 인력이 적어 과도한 강제력을 동원하게 되는 경우가 여태까지 많았기 때문에 강제입원이라고 하면 마치 입원 당사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처럼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라며 "환자의 안전은 물론 사회 안전을 위해 시급하게 필요한 경우에도 중증정신질환자들이 사회에 방기된 측면이 있다. 이번에 의료수가 문제도 같이 논의돼 정신질환 치료가 응급질환에 준하는 치료로 인정받아야 의료의 질도 올라갈 수 있고 인권침해 얘기가 안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장은 사법입원 제도가 현실적으로 시행되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제시됐다. 홍 교수는 "사법입원의 장점도 많겠지만 운영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미국의 경우 판사들이 병원에 와서 환자를 만나보고 심사하는데 다른 나라들은 환자와 의료진들이 법원에 출두해 증언을 하고 입원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다"며 "그런 형태로 사법 입원이 결정된다면 많은 의사들은 환자들을 입원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유럽이나 정신보건체계가 잘 돼 있는 호주 등을 보면 외래치료 명령제도 활발하게 돼 있는데,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면 바로 입원시켜 치료한다. 인권을 말하면서 막상 환자들을 방임시켜 버리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며 "지역사회에서 환자들이 같이 살아가기 위해 어떤 것들을 의무화시킬 것인지 공개적인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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