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MLB) 진출의 꿈을 이룬 이정후(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자신감을 보이면서도 겸손을 잃지 않았다.
이정후는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후드티에 모자를 거꾸로 쓴 이정후는 수많은 취재진과 야구팬 등 자신을 보기 위해 공항으로 몰려든 환영 인파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이다. 이정후는 지난 13일 메이저리그(MLB) 전통의 명문구단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약 1478억원)라는 예상을 넘어서는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총액 규모만 놓고 보면 지난해 빅리그에 진출한 일본의 외야수 요시다 마사타카(30·보스턴 레드삭스)의 5년 9000만 달러도 넘어선다.
이정후의 파격적 영입을 주도한 인물인 자이디 사장은 입단식에서 이정후를 직접 소개한 뒤 “우리 팀에는 콘택트 능력을 갖춘 외야수가 필요하다.(이정후가)시즌 개막전부터 매일 중견수로 뛰는 것이 우리 팀의 계획이다"라고 강조했다.
콘텍트 능력을 갖춘 외야수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구장 오라클파크의 구조를 말하며 자신감도 나타냈다.
이정후는 “구장을 직접 가보니 우측은 짧게 느껴졌는데 우중간은 넓더라”며 “내 장점을 잘 살리면 오히려 더 유리할 것 같다. 내가 홈런타자는 아니지만 좌·우중간을 잘 갈라서 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라클 파크는 좌타자에게 유리한 편이다. 외야 좌우 길이가 다른 구조다. 오른쪽 펜스까지 거리가 94.1m로 매우 짧다. MLB 통산 홈런 1위(762개) 기록을 보유한 ‘좌타자’ 배리 본즈도 홈구장의 특징을 살려 오른쪽으로 뻗어나가는 많은 홈런을 터뜨렸다. 그러나 오른쪽 펜스의 높이가 7m가 넘어 다른 타자들이 홈런을 치기는 만만치 않다.
그래도 좌타자에게 유리하다. 이정후 설명대로 우중간이 깊어 우익수와 중견수가 수비하기 까다롭다. 좌타자가 우중간 방향으로 당겨 칠 경우 장타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낯선 미국 현지 적응 과제에 대해서는 “음식은 전혀 문제되지 않을 것 같다. 야구와 관련된 준비만 잘 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 얘기가 나오면 겸손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지구 라이벌 LA 다저스로 이적한 오타니는 2018년 LA 에인절스를 통해 빅리그에 데뷔해 AL 신인상을 수상했고, 이후 두 차례 실버 슬러거와 세 번의 올스타에 선정됐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MLB에서 역대 최초로 두 차례(2021·2023)나 만장일치 MVP로 선정된 특급 중 특급이다. LA 다저스는 지난 10일 오타니에게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대 규모(10년 7억 달러)의 계약을 안겼다.
MLB에서는 같은 지구 팀들끼리 한 시즌에 13경기 맞대결을 펼친다. 샌프란시스코는 김하성 소속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개막 4연전을 치른 뒤 LA 다저스와 3연전(2024년 4월2~4일)을 가진다. ‘투타 겸업’ 오타니와의 타격 맞대결이 가능하다. 오타니가 수술 여파로 인해 2024시즌에는 투수로 활동하지 못하지만, 타자로서는 출전이 가능하다. 이후에도 5월14~16일, 6월29~7월1일, 7월23~26일 일정에서 오타니와 타격 경쟁을 펼칠 수 있다.
오타니와의 맞대결 질문에 대해 이정후는 “오타니와 나를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것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난 아직 오타니와 견줄 수 없다. 오타니는 세계에서 가장 야구 잘하는 선수이고 계약금액도 비교되지 않는다. 그래서 부담도 되지 않는다”면서 “나와 오타니가 라이벌처럼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몸을 낮췄다.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입단식 때도 오타니와의 맞대결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면 “열심히 하겠다”며 말을 아꼈고, KBO리그 시절 가진 인터뷰에서도 “오타니를 WBC 때 가까이서 봤는데 너무 멋졌다. 아시아 사람 같이 않은 피지컬이었다. 야구 선수 중 가장 멋진 선수”라고 평가한 바 있다.
두려움 없는 자신감, 그러면서도 존중과 겸손을 잃지 않는 이정후의 자세를 보면서 야구팬들의 기대는 더욱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