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희망의 정치' 연속기획 초대석
"정치불안에 '남미의 함정' 빠질까 우려
한동훈, 민생 메시지를 먼저 좀 냈으면
특정 정당 독주로 국회 운영돼선 안돼"
계묘년(癸卯年) 한 해가 저물고 청룡의 해,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정치로 보면 경자·신축·임인·계묘 4년간 이어졌던 21대 국회가 막내리고 22대 국회를 새로 구성하는 총선의 해가 열린다. 2020년 경자년에 치러졌던 총선은 경자화변(庚子禍變)이라 불러야할 정도로 '역대 최악의 국회'를 만들어내 국민들에게 깊은 실망을 줬다. 과연 갑진년 새 국회에서는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가 이뤄질 수 있을까.
정우택 국회부의장은 데일리안과 가진 '갑진년 희망의 정치' 특별인터뷰에서 "국운을 위해서라도 내년에 치러지는 총선으로 보다 민생에 다가가는 국회, 탄핵이 남발되지 않는 국회가 구성되기를 바란다"며 "싸움의 전당이 아니라 민의의 전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는 22대 국회가 되기를 진정으로 기대해본다"고 밝혔다.
정 부의장은 21대 국회에 네 명 뿐인 15대 국회 등원 멤버다. 1996년 총선에서 첫 등원한 의원은 국민의힘 정우택·김영선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설훈·김민석 의원 넷 뿐이다. 오래 국회에 몸담으며 정치문화의 변천을 지켜본 정 부의장도 이번 21대 국회를 향한 평가를 묻자 주저없이 "낙제점"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정우택 부의장은 "내가 본 국회 중에 가장 대화와 소통이 되지 않았던 국회"라며 "입법폭주와 탄핵남발, 당대표 1인만을 위한 방탄국회로 점철됐기 때문에, 가장 민생과 거리가 멀었던 국회라고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특히 정 부의장은 21대 국회 들어 본격화된 탄핵의 남발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역대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진 사례를 보면 △12대 국회 1건 △13대 국회 0건 △14대 국회 1건 △15대 국회 1건 △16대 국회 1건 △17대 국회 0건 △18대 국회 0건 △19대 국회 0건 △20대 국회 1건으로, 국회 4년 임기마다 0건이 보통이고 많아야 1건이었다.
그런데 21대 국회 4년 동안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 탄핵만 6건이다. 35년간 탄핵을 표결에 부친 횟수(5건)보다 많다. 정 부의장은 정치의 총체적 붕괴를 통해 나라 전체가 나락으로 굴러떨어진 남미의 전철을 우리나라가 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부의장은 "아르헨티나가 1980년 이후에 80차례가 넘는 탄핵 사태로 정국이 점철됐고, 페루도 최근 6년간 6번의 탄핵이 있었으며, 콜롬비아도 비슷한 상황"이라며 "정치불안이 사회불안으로 연결되면 경제나 모든 것들이 어려워진다. 우리도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단계인데 여기서 정치불안을 겪어 '남미의 함정'에 빠질까 우려된다"고 개탄했다.
5선 중진인데도 본연 의정활동에도 열심
행안위서 선관위 잘못 송곳질의로 귀감
"잘못된 것 눈감고 지나가는건 맞지 않아
불이익 의식? 중진 자격 없는 것 아니냐"
21대 국회가 국민께 실망을 준 지점 중의 하나가 초선 의원들의 형편없는 역량이다. 꼼수탈당·코인투기·연판장·홍위병 등의 행태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목격됐다. 반면 정 부의장은 5선 중진인데도 '큰 정치' 뿐만 아니라 본연의 의정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아 동료 의원들의 귀감이 됐다는 평을 받았다. 행안위에서 중앙선관위의 잘못된 행태를 질타했던 질의는 올해 국정감사의 백미로 회자됐다.
이와 관련, 정우택 부의장은 "상임위에서도 얘기를 했지만 선관위가 썩어가고 있는 조직처럼 보이더라"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선거를 관장하는 기관인데, 아무데서도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 기구가 되면서 자녀 채용 비리 의혹이 나타나고 정작 제대로 된 선거관리는 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노출되는 모습에서 국감을 통해 선관위의 제 기능 찾기에 주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중앙선관위는 헌법기관인데도 그 장을 대법관이 겸직하고 있다. 대법관 업무도 격무인데 중앙선관위원장까지 겸직하는 것은 잘못된 제도"라며 "비상임으로 기관장을 하니 선거관리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집중하지 못하고, 사무총장에게 모든 업무를 일임할 수밖에 없는 행태는 고쳐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을 했고, 선관위원장으로부터도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시인하는 답변을 얻어냈다"고 전했다.
주기적으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선출직 공직자로서 선관위와 척을 지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선관위의 잘못을 송곳처럼 질의할 때 부담스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5선 중진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정 부의장은 "정치를 충분히 해온 내가 그런 잘못된 것을 보고서도 눈감고 지나가는 것은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정신에 맞지 않겠다"며 "할 일을 했다고 해서 불이익이 올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지만, 설령 온다고 하더라도 5선 중진의원으로서 그런 것에 어떤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면 자격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朴탄핵' 정통 보수정당 간판 내릴 위기에
비대위 긴급 조직해 당 살려냈던 경험자
"한동훈, 우리 당의 지지율 하락 원인이
파악되면 과감히 개혁적 조치 실행해야"
국민의힘은 총선을 앞두고 오는 29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다. 지금도 위기라고 하지만 정 부의장은 당이 문을 닫느냐 마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비대위를 조직해 당을 살려낸 경험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던 2016년말, 바른정당이 분당하는 등 토붕와해의 국면에서 원내대표를 맡게 된 정 부의장은 인명진 목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초빙해 당을 살려냈다.
최근 출간된 책 '나의 도전 나의 숙명'에서 전격 공개됐지만 사실 정 부의장이 인 목사를 비대위원장으로 발표했던 2016년 12월 23일 오전 9시 30분 기자회견 때에는 아직 인 목사가 수락을 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정 부의장은 먼저 발표를 한 뒤 인 목사의 자택으로 달려가 "당을 제발 살려달라. 수락해주시지 않으시면 내가 여기서 목숨을 끊겠다"고 간청해 간신히 그날 오후 4시에 수락 기자회견을 열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이 화두에 오르자 정우택 부의장은 "그 때는 당이 완전히 망했었다. 그 때와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옅은 미소를 띄웠다. 다만 선험자로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우리 국민들이 답답해하는 여러 민생에 대한 메시지를 먼저 좀 냈으면 좋겠다"며 "그러한 메시지를 통해서 국민들은 정말로 새해에는 다른 모습의 대한민국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우리 당의 지지율이 많이 하락해있는데, 웬만큼 정치하는 사람이면 지금 우리 당이 왜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지 원인은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공천 문제가 눈앞에 있으니까 말을 안하고 있을 뿐"이라며 "의원들은 공천 때문에 말을 못하지만, 비대위원장은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우니 파악된 원인에 대해서 과감하게 개혁적인 이야기를 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화제는 자연스레 총선으로 옮겨갔다. 국민의힘의 2020년 총선 참패는 충청권에서의 참혹한 결과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대전은 7석 전부에서 패배해 원외시당으로 전락했다. 충남의 최대 도시인 천안에서 3석 전패했다. 행정도시 세종에서도 2석 모두를 잃었으며, 충북의 수부 도시인 청주 4석도 모조리 빼앗겼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JP) 이후로 '충청의 맹주'라 불리는 정 부의장의 해법이 궁금했다.
이에 정우택 부의장은 "충청 판세가 녹록지가 않다"며 "지난 총선에서 충청권의 수부 도시, 주요 도시에서 한 명도 당선이 되지 못했던 요인은 왈가왈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공천에서 우리 도민들이 원하는 사람을 제대로 맞춤형 공천하지 못했던 게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이어 "도덕성이 걸러진 사람을 대상으로 본선에서의 당선가능성을 최우선으로 보는 공천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겠다"며 "만약 이번에 1석이라도 더 많은 다수당이 되지 못한다면,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도록 흔들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조기 대선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번에는 당선 가능성을 위주로 각 지역구마다 맞춤형 공천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주민이 원하는 게 아니라 당이 원하고 당이 하고 싶은대로 후보자를 결정해서는 안된다"며 "주민이 원하는 사람이 공천될 수 있도록 공관위가 제대로 기능을 해야 한다"는데 방점을 찍었다.
'총선 승부처' 충청권 판세 "녹록지 않다"
'본선 당선가능성 맞춤형 공천'에 방점
"다수당 못 된다면 민주당은 조기 대선을
도모할 것…당선 가능성 위주 공천해야"
정 부의장은 경제기획원 과장으로 있던 1992년, 만 39세의 나이로 과천 관가를 등지고나와 정치에 뛰어들었다. 당시로서는 정말 보기 드문 '30대 기수'였다. 586 운동권을 청산하겠다는 30대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곳곳에서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청년정치인 1세대'인 정 부의장에게 조언을 물었다.
정우택 부의장은 "기획원 내에 있던 동기들 중에서 제일 먼저 승진을 해서 과장을 달았는데 선거에 나간다니, 차관께서 불러 '당신 잘 나가고 있는데 왜 그만두느냐'고 말렸던 기억이 난다"며 "당시엔 국회의원에 나간다고 하면 장·차관을 지낸 사람들이 출마를 했는데, 과장된지 1년 남짓 된 사람이 출마를 한다니 센세이션이 크게 일었다. 그게 91년 말의 일"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젊음은 큰 장점"이라면서도 "거기에 더해 도덕성과 능력이 갖춰져야 하고, 지역구로 출마하게 되면 지역구에서 '저 사람이 젊으면서도 능력이 있고 우리 지역을 위해 많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기반이 있어야 한다. 출마하기 전에 기반을 닦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나아가 "일부를 보면 기반을 닦는 노력이나 지역구민들로부터 소위 '깜냥이 된다'는 인식을 얻지 못한 채, 중앙당에서 지도부를 쫓아다니다보면 공천을 받을 수 있겠거니 하는 '로또 심리'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인다"며 "그런 사람은 설사 그렇게 해서 공천을 받는다고 해도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을 정치경험을 통해 봐왔다. 젊음이라는 큰 자산과 함께 지역구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노력이 같이 이뤄지면 좋을 것"이라고 자문했다.
과연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1석이라도 더 많은 원내 1당이 될 수 있을까. 뜻대로 이뤄진다면 6선이 되는 정 부의장은 아직까지 한 차례도 충북 출신 국회의장이 나오지 못한 것과 맞물려 22대 국회 '국회의장 0순위'로 꼽힌다. 정 부의장은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면서도 '대화와 소통의 국회'를 복원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정우택 부의장은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으로 비쳐질지 몰라 곤란하다"고 웃으면서도 "된다고 하면 여야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정당의 독주에 의해 국회가 운영되도록 하지는 않을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대화와 소통이 여야 간에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그렇게 되도록 의장으로서 매개체 역할을 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